심상치 않은 의전 홀대
영토 할양 요구에 침묵
역대 대미외교 본받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외교는 '칭찬'과 '무난'이었다. 미국은 전통적인 동맹이자 우호국이기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 양국관계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미국의 통상·안보 압박에 맞선 절체절명의 시기에 이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적절한지 의문이 남는다. 진정으로 국익을 우선시하는 대통령이었다면 더 당당한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순방길 기내간담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저서 '거래의 기술'을 읽어봤다며 그가 어떤 방식으로 협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트럼프의 협상 기술은 '큰 판을 그려라', '최초 요구치는 높게 불러라', '내가 우위에 설 판을 짜라', '상대가 지칠 때까지 밀어붙여라'로 요약된다. 실제로도 그는 이번 회담에서 그대로 보여줬고 도발의 연속이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모습도 함께였다.

우선 방미 첫날 의전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이 대통령을 영접한 건 미국 의전장이 아닌 국무부 부의전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에도 이 대통령을 배웅조차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전 SNS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며 "숙청 또는 혁명같이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없고, 거기서 사업할 수 없다"고 폭탄 발언을 던졌다. 또한 회담에서는 주한 미군 기지에 대해 “임대 개념을 없애고 땅을 소유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 내내 미소를 유지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피스메이커' '페이스메이커' 역할 언급으로 라임도 맞췄다.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교회, 미군 기지 압수수색 질문이 나오자 팩트체커를 자처하며 특검이 미군 부대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SOFA 조항을 잘 모르고 사실상 영토 할양을 요구한 사안에 대해서는 팩트체크로 바로 잡아주지 않았다. 또한 2만8500여명 수준인 주한미군 규모를 트럼프 대통령이 4만명이라고 높여 말했던 것에 대해 그냥 지나갔다.

한미 공동선언문은 나오지 않았다. 민감한 현안은 일단 후속 실무 논의로 넘긴 것으로 향후 후속 청구서가 날아올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 한국 국방비를 인상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트럼프 행정부 기준인 'GDP 대비 5%'를 맞추려면 국방비를 배로 증가시켜 약 132조원까지 늘려야 한다.

역사적으로 한미관계가 삐걱거릴 때가 있었다. 그런 위기에 대처하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은 현재 이 대통령과는 많이 달랐다. 지지율 하락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데 노력을 다했다.

1979년 6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할 때 외교 결례를 범했다. 밤 9시를 넘긴 뒤에야 도쿄에서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향했고 도착 시각도 알려주지 않았다. 김포공항에서 미리 대기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이 도착하자 미국 기자들 사이를 헤집고 나가 겨우 악수했다. 카터 대통령은 공식 숙소인 신라호텔이 아닌 동두천 미군 2사단 기지로 향해 병사들과 묵었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 앞에서 40여 분간 주한미군 철수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이에 지지 않고 카터 대통령도 주한미군 철수 정당성을 말하고 한국의 군사비 증액을 요구했다. 회담 분위기는 냉각됐다. 긴급조치 9호 해제 등 인권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두 정상의 설전은 2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이후 미국 측이 1981년까지 연기 방침을 밝혔다.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이후 북한의 군사력 증강 위험성을 강조하며 미 국방부·국무부 측을 설득했고, 미 고위 당국자들도 카터 대통령에게 한반도 위성사진을 보여주며 말렸다. 결국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는 없던 일이 됐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유화적인 김 대통령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김 대통령을 가리켜 ‘이 사람(this man)’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다음해인 2002년 2월 부시 대통령이 방한했다. 김 대통령은 이때 작심하고 철저히 준비했다. 부시 대통령은 어김없이 김정일과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이 소련의 변화와 냉전 종식,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불러온 사실을 설명하며 있는 힘껏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설득했다. 그 결과 부시 대통령은 이후 “솔직하고 대단히 유익한 대토론”이었다고 밝히며 햇볕정책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2025년 현재 한미관계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긴장 상태다. 지난달 관세협상으로 인해 경제계는 위태롭고 100억 달러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받았다. 이런 과도한 압박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수위를 낮추도록 최대한 설득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목말랐겠지만 국가 재정 상황은 어렵다.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줄 만한 여유가 없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박정희·김대중 정책을 구별없이 쓰겠다며 실용주의 정부를 천명했다. 이번에 보여준 대미 외교는 여러모로 아쉽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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