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파견인 비자 요건 까다로워
한미 회담 성과 근본적 의문
美 정부에 강력히 항의해야

미국 이민 당국이 공개한 현대차-LG엔솔 이민 단속 현장 /ICE 영상 캡처
미국 이민 당국이 공개한 현대차-LG엔솔 이민 단속 현장 /ICE 영상 캡처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쉽게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 국적의 40대 미국 영주권자가 한국을 방문했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항에서 구금되어 억류되는 일이 발생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 퍼듀대에 재학 중인 성공회 신부의 자녀가 뉴욕 이민법원에 출석했다가 이민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다행히 4일 만에 석방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유사한 사례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결국 대형 사건이 터져 나왔다. 

미국 이민 당국과 국토안보수사국 등은 조지아주에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함께 추진 중인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불법 이민 단속'을 실시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 450명이 체포됐다 한다. 이 중 300여명이 우리 국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단순히 체포의 정당성 여부를 넘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행 과정에서 투입된 인력들이 대거 체포된 현실을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미 당국의 이번 단속 작전은 애초 중남미에서 온 4명의 근로자를 특정해 시작됐으나 작전 과정에서 단속 범위가 대폭 확대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주장은 쉽게 납득할 수는 없다. CNN 등의 보도에 따르면 체포 현장에 투입된 병력은 약 500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4명을 체포하기 위해 500명을 투입하고 헬기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 현지 인력을 활용하라는 일종의 무언의 압박일 수 있고,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 시절 시작된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감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가 어떻든 우리 기업들은 '돈 내고 뺨 맞는 격'이라고 해당 사건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기업들이 우리나라 근로자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국 현지에서 우리 근로자들과 동등한 수준의 기술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에 투입될 인력은 필연적으로 한국에서 파견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식 전문직 취업 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 E2)를 통해 이들을 미국에 합법적으로 파견하기는 쉽지 않다. 비자 요건이 매우 까다롭고, 발급 가능한 인원수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단기 출장이나 여행 목적의 ESTA를 활용해 미국에 긴급히 파견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까지 단속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가 명확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현장 공기(工期)를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기업들은 판단할 것이다. 

다행히 정부의 외교적 노력 덕분에 체포된 인원들이 조기에 석방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석방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대목이 있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 직후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합의문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지만, 이 정도로 회담이 성공적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아야 했다. 

달리 표현하면 신뢰가 회복되었다면, 적어도 이번처럼 대규모 검거 작전을 수행하기 전에 동맹국인 우리에게 사전 통보 정도는 해야 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전 통보도 없이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은 한미 정상회담의 실질적 성과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더구나 정상회담 직후부터 나오는 미국 백악관과 우리 정부 간의 발표 내용의 상이함 때문에 국민은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혼란'은 '불안'으로 바뀌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는 외교 성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정권 홍보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제공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체포 사태로 인해 졸지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우리 근로자들은 트라우마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들의 정신적 충격을 치유해야 한다. 또한, 이번에야말로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 앞으로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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