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토큰화가 자본시장 패러다임 바꿔
피터 틸·머스크·저커버그 버블 제국 붕괴
주주자본, 단기성과주의 한계 명확해져
비상장 선언 오픈 AI 매달 10억달러 흡수
MIT 보고서에 드러난 '섀도우 AI' 진풍경

지능은 공짜가 아니었고 주식 증권은 거품을 파는 짝퉁 토큰에 불과했다. 인공지능(AI) 도입 기업 대부분이 실질 성과 없이 거품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닷컴 버블에 비유하며 "상장보다 비상장이 낫다"고 못박았다. 20세기 경영학을 지배해 온 주주자본주의 교리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통계로 나타난 95% 거품의 붕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2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인공지능 산업은 주식시장 구조와 애초에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특징이 뚜렷해지고 있다. 상장 종목으로 포장된 AI 기업은 실질 현금흐름을 뒷받침하지 못한 채 밸류에이션만 부풀려졌다. 반대로 오픈AI처럼 비상장 구조에서 고정 매출을 확보한 사례가 오히려 시장 질서를 주도하는 상황이다.
대표적 실패 사례는 팔란티어다. 피터 틸이 설립한 이 회사는 AI 군사 데이터 분석을 앞세워 상장 후 폭발적 주가를 기록했지만 주가수익비율(PER) 250배라는 비정상적 고평가 끝에 결국 무너졌다. 최근 6거래일 연속 하락으로 시가총액 730억 달러가 증발한 것은 주가 환상만으로 버텨온 AI 기업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머스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트위터(현 X)를 인수하며 “AI 통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불안정한 자금조달과 파산 위험 전가로 이어졌다. 주주들의 돈은 개인적 도박을 뒷받침하는 담보로 쓰였고 AI라는 명분은 금융 불안을 덮기 위한 허울에 불과했다.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실패도 같은 궤다. 그는 미래 AI 플랫폼을 약속하며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생산성은 전무했고 남은 건 직원 해고와 주주 손실뿐이었다. 뒤늦게 초지능 연구소를 세워 새로운 기회를 외쳤으나 신뢰의 붕괴는 돌이킬 수 없었다.
팔란티어, 머스크, 저커버그가 대표하는 실패는 AI는 주식과 궁합이 맞지 않다는 하나의 결론으로 귀착된다. 특히 토큰(token) 개념을 둘러싼 주식의 논리와 AI의 본질은 충돌했고 주주이익 극대화는 결과적으로 집단 탐욕의 버블화로 귀결됐다. 토큰을 어떻게 접근해 다루느냐가 차이를 갈랐다는 얘기다.
주식 역시 토큰이고 AI도 토큰을 쓴다. 그러나 전자는 기대와 심리 불확실성을 가격으로 포장한 허구에 가깝고 후자는 인간의 언어·행동·의식을 데이터 단위로 전환하는 실재적 토큰화다. 주식은 기대만으로 거품을 키우다 붕괴하지만 AI 토큰화는 실제 행위와 데이터에서 현금흐름과 기술 발전을 끌어낸다.
20세기 후반 이후 기업 경영의 표준 교리는 주주의 이익 극대화였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언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 창출로 환원되었고 이는 경영학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단기성과주의는 분기 실적을 우선시하며 R&D와 장기 투자를 압박했고, 주인-대리인 문제는 수천만 주주의 이해관계를 분산시켜 경영자가 무주공산에서 권력을 휘두르게 했다. 결과는 거품 순환이었다.
주가는 실물 가치보다 군중심리에 휘둘리며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위기, AI 버블로 이어지는 붕괴를 반복했다. AI를 도구적 수단으로 간주하며 ‘지능을 공짜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은 결국 군중심리의 연료가 되어 붕괴를 불렀다. 주주자본주의는 효율의 제도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제도화한 구조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샘 올트먼은 달랐다. 그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기반 토크나이징을 통해 매달 10억 달러 규모의 고정 매출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 구글 같은 클라우드 기업이 경쟁자이자 우군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이뤄진 오픈AI의 비상장 선언은 단순한 IPO 연기가 아닌 "지능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현실을 드러낸 선택이었다. 샘 올트먼의 전략은 이해관계자를 최소화해 잡음을 줄이고 의사결정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주가 관리가 아닌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재투자 루프를 만든 것이다. 기존 주주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정렬 자본주의적(Aligned Capitalism) 경영 질서를 보여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정렬(alignment)이라는 원리가 경영과 기술 양쪽에서 동시에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 정렬이 데이터와 모델을 현실에 붙잡는 프로토콜이라면, 인간 세계의 정렬 자본주의는 자본과 경영을 실재적 지능의 비용 구조에 붙잡는 과정이다. 두 영역은 모두 거품을 잘라내고 불필요한 출력 대신 의미 있는 질서를 남긴다는 동일한 원리 위에 서 있다.

MIT 보고서는 다수의 기업이 AI를 도입했음에도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도구가 조직의 흐름에 통합되지 못하고 학습·적응 능력이 부족해 파일럿 단계에 머문다는 점이었다. MIT는 이를 ‘러닝 갭’ 개념으로 짚었다. 다수의 엔터프라이즈 AI가 실패하는 이유는 피드백을 흡수하지 못하고 맥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는 데 있었다. 결국 GPT의 피드백 루프 구조만이 사용자가 원하는 맥락을 빠르게 조율해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AI 버블이 뼈아픈 이유는 과거 자동화처럼 인건비 절감으로 곧바로 장부 성과가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억 달러의 투자에도 맞춤형 엔터프라이즈 툴은 대부분 실패했고 현장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대신 현실에서 작동한 것은 ‘섀도우 AI’였다.
기업이 내부적으로 AI 도입에 실패하는 동안, 직원들은 사비로 챗GPT나 그록4 계정을 구입해 실제 업무에 활용했다. MIT가 52개 기업 인터뷰를 통해 취합한 300여 건 공개 사례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들은 이미 수십억 달러를 AI 파일럿에 쏟아부었지만 내부 빌드 성공률은 33%에 불과했다.
즉 조직 차원의 투자 수십억 달러가 허공에 날아가는 동안 현장을 움직인 건 직원 개인의 20달러 구독이었다. 결국 내부적으로 AI 투자를 하더라도 직원 개개인이 따로 지갑을 열어 지능을 돈 주고 산 셈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정렬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글로벌 거품 붕괴의 충격은 인프라 기업인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에도 미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GPU·HBM 같은 실물 수요와 직접 연결된 강점에도 불구하고 불과 닷새 만에 주가가 약 12% 급락하며 글로벌 AI 밸류에이션 붕괴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았다. 한국 시장에선 애당초 ‘순수 AI 플레이’라 부를 만한 가치 있는 종목이 부재하다는 점이 안전판이 되었지만, 동시에 미국 증시에서의 시가총액 증발 파괴력을 고려하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한국은 애초에 버블조차 만들지 못했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 이후 새로운 AI 주자가 등장하지 못했고 업스테이지·퓨리오사AI 등이 수천억 원 투자를 유치했음에도 대기업 의존과 불안정한 시장 구조에 묶여 있다. 매년 3000개 스타트업이 액셀러레이터에 지원해도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곳은 40~50곳에 불과하다. 이런 기업이 IPO를 해봤자 수익은 내기 어렵고 거품만 키우는 구조란 얘기다.

이재명 정부는 그럼에도 소위 ‘소버린 AI’를 내세워 100조 원 규모의 재정 투입을 선언했다. 그러나 실물 수요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한국형 AI 프로젝트가 글로벌 버블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채 오히려 국가 차원의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종합하면 결론은 명확하다. 지능을 돈 받고 판 기업만 살아남는다. 오픈AI처럼 API·구독 모델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든 소수만 수익을 내고, 그렇지 못한 다수는 거품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타트업에 만연한 IPO 만능론으로는 지능 소비 시대를 따라잡기 어렵다”며 “국위선양 방식의 육성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실제 수익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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