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 홍보용에 가까운 인공지능 메시지
양자컴퓨터 기술이 현장 사고 줄일까?
해법은 여전히 센서·예측·감독에 있어

국내 건설업계는 여전히 현장 안전사고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층 작업 중 추락, 중장비 사고, 공정 지연에 따른 무리한 작업 등으로 인한 재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상회한다.
당근이냐 채찍이냐. 정책 방향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안전 관리 인력 확충을 택했다. 현재 약 3100명 수준인 근로감독관을 1만 명까지 단계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인공지능(AI) 전환만으로는 안전 리스크를 제어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을 반영한 조치로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기조와 맞물려 실질적 사고 감축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기업들의 대응 방식이다. 정부가 ‘사람을 더 투입하는 방식’으로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반면 일부 대기업들은 여전히 AI 전환을 만능 해법처럼 포장하는 환상에 기대고 있다. GS건설이 외국인 근로자 소통 개선을 앞세워 AI 번역기 ‘자이 보이스’를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뿐, 구조물 붕괴·중장비 사고·공정 관리 부실 같은 안전의 본질적 위험 요인과는 근본적으로 접점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18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GS건설은 외국인 근로자와의 소통 문제를 개선한다며 AI 기반 번역 프로그램 ‘자이 보이스’를 현장에 도입했다. 한국어를 음성으로 입력하면 중국어, 베트남어 등 120여 개 언어로 변환해주는 기술로 기존 번역기가 소화하지 못하던 건설 전문 용어까지 학습시켜 정확도를 높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이 보이스의 도입은 안전 리스크를 직접 해결하지는 못한다. 건설 현장의 안전은 구조물 설계의 정밀성, 중장비 운용의 안정성, 공정 관리의 엄격함에 좌우된다. 번역기의 개선은 현장 작업자의 보조적 소통에 기여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 사고 예방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허태수 GS 회장은 그룹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DX)과 AI 혁신을 강조해 왔다. 그는 “모든 임직원이 생성형 AI와 IT 도구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AI 숙련을 GS 임직원의 기본 역량으로 규정했다. DX와 AI는 더 이상 일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모든 직원이 참여해야 할 의제라는 것이다.
이런 기조에 GS는 2024년 7월 그룹 해커톤을 열어 19개 계열사 4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해 생성형 AI 기반 업무 혁신 아이디어를 경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같은 해 5월에는 미국 시애틀에서 해외 사장단 회의를 열고 주요 의제를 AI와 DX로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은 ‘혁신 이벤트’에 가깝지 건설현장의 안전성과 개선과는 괴리가 있다.
물론 허 회장도 인공지능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생성형 AI를 넘어 공정 최적화, 로보틱스 통합 등 물리적 프로세스 혁신에 활용되는 ‘피지컬(Physical) AI’와 양자컴퓨팅을 산업 전환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러나 산업 재해는 공학적 변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피지컬 AI’ 같은 개념이 안전 리스크를 줄이는 실질적 해법이 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계에선 안전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법으로 공학적 접근을 강조한다. 구조물 안전 센서, 공정별 위험 예측 모델,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등 공학적 안전 기술에 대한 투자와 운용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오히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감독관 대폭 확충과 같은 ‘사람 중심’ 대책이 더 실효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 담론에 기댄 화려한 포장보다 감독 인력을 투입해 현장을 직접 점검하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식이 사고 감소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감독관의 핵심 임무는 현장 점검을 통해 법규 준수를 강제하고 사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있다.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 관계 법령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즉시 시정을 요구한다. 또한 장부 제출 요구, 사용자·근로자 심문 등 법적 권한을 행사하며 필요시 사법 처리까지 이어갈 수 있다.
또한 언론 보도나 신고, 사회적 이슈로 드러난 위험 사업장에 대해서는 수시·특별 감독을 실시할 수 있다. 이는 법 위반 여부뿐 아니라 현장의 안전 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하는 기능으로, 임금 체불·해고 분쟁 같은 노동 권익 사안은 물론 추락·장비 사고 등 인명사고를 예방하는 최전선 장치로 작동한다.
건설업계 한 종사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근로감독관 확충은 노동자 권익 보호와 동시에 산업현장의 생명 안전을 지키는 실질적 장치가 된다”며 “AI 같은 화려한 기술이 도입되길 기다리는 것보다 감독 인력이 직접 발로 뛰며 사고를 줄이는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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