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전략 파악’ 아닌 ‘관심 확인’ 그쳐
이중연료·AI·무장통합 관세 정책과 무관
외교 대응 실패가 업계 불확실성 키운 셈

미국이 최근 한국 조선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통상 현안 때문이 아닌 방위산업 연계 공급망 확대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이를 관세 협상의 부수적 항목으로 오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미국을 방문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을 자택에서 만나 “미국 측의 조선 분야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음주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간의 공식 만남을 앞두고 나온 발언이라 주목받지만 자택이라는 비공식 공간에서 개진된 ‘관심 표명’을 마치 협상 성과처럼 언급한 것은 정부가 미국 측 신호를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은 지난 윤석열 정부 때부터 조선 분야를 FTA 후속 협상이나 무역불균형 조정 항목의 하나로 해석해왔다. 하지만 정작 미국은 한국 조선사의 기술적 우위를 ‘공급망 파트너십’ 차원에서 접근해왔다.
미 해군은 중소형 군수지원선·연안경비정·병참선박에 대해 민간 조선 역량을 활용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때 한국은 무장까지 갖춘 완성형 플랫폼 수출국으로 간주된다. 미국이 한국 조선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 건조 능력이 아니라 친환경 연료 기반 선체에 전투시스템 통합 역량까지 묶어서 가져가고 싶은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은 이미 이중연료추진선, 인공지능(AI) 기반 항해시스템, 고압연료 관리기술 등에서 세계적인 독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 기술을 공동개발·이전 방식으로 자국 산업 생태계에 흡수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국내 조선사 역시 이들 기술을 군사 동맹국과의 공동개발·현지생산 방식으로 확장하는 데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다시 말해 공급망 다변화가 전제된다면 미국 내 일부 기술이전이나 공동조달 방식도 충분히 가능한 선택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통상 협상 없이도 진행 가능한 부분이라는 얘기다.
한국 정부가 ‘통상협상용 카드’ 수준으로 접근한 것은 전략적 착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산업부가 방산·기술·공급망 세 축이 얽힌 글로벌 재편 흐름을 외면한 채 조선업을 단순 수출·수입 항목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 업계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정부는 조선 분야를 ‘경제안보 동맹’ 관점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과 동일한 구조로 공급망 다변화를 명분으로 기술력을 확보하고 생산기반을 이전받으려는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한다. 정부가 뒤늦게 반도체와 조선을 묶어 ‘선물 보따리’를 다시 꾸린다 해도 이미 미확정된 투자 규모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이처럼 조선업을 전략 파트너십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여전히 통상 협상 테이블의 판돈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은 양국 간 신뢰의 축적이 아닌 소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외교관 출신 한 인사는 “먼저 꺼내지 않아도 되는 카드를 먼저 내보이는 습관은 한국을 ‘후순위 협상국’으로 깎아내리는 실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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