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휴시설 실버타운 전환 활성화
조선대·동명대, 연계형 실버타운 추진
1년째 방향 불확실···구상 단계 그쳐
"사전 수요 확보·세심한 설계 관건"

정부가 약속했던 폐교와 일부 대학 캠퍼스를 활용한 실버타운 전환이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어 '허울뿐인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지난해 7월 발표한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에서 폐교, 대학 시설, 숙박시설 등 도심 내 유휴시설을 시니어 주거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용도변경 유도 등 제도 개선에 나섰다. 민간 참여를 유도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공공자산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같은 해 9월 서울시도 조례를 개정해 폐교를 노인복지주택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 전환된 사례는 없다. 미활용 중인 서울시 폐교는 도봉구 도봉고등학교, 강서구 염강초등학교, 광진구 화양초등학교 등 총 6개교다. 이 폐교들은 교육·문화시설로 전환·운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요양뉴스 단독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폐교 부지를 가까운 시일 내에 시니어 주거·요양시설로 전환하지 않을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도 요양뉴스에 “현재 폐교 부지에 대해 임대나 매각에 대한 계획이 없다”며 “부지를 특정하지 않은 상태로 시니어 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은 논의한 바 있다”고 밝혔다.
지방대학교도 고령사회 대응과 대학 재정 압박 해소를 동시에 고려한 실버타운 구상에 나섰다. 광주 조선대학교, 부산 동명대학교는 지난해 3월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협약을 맺고 캠퍼스 내 유휴 부지에 교육·의료 시스템을 접목한 실버타운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추진하려는 실버타운은 미국 주요 대학들이 운영하는 ‘대학 기반 은퇴자공동체(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UBRC)’를 벤치마킹했다. UBRC는 은퇴한 중장년층이 지역에 있는 대학을 통해 평생교육을 받거나 캠퍼스 또는 주변 병원과 연계해 주거·보건시설 등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조선대는 병원 인근 700세대, 동명대는 정문 주변 600세대 규모로 실버타운 건립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다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의에 그치거나 진행 상황이 불확실한 상태다. 조선대학교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UBRC 관련 사업에 대해) 아직 검토 및 계획 논의 중이다. 700세대 규모 주거시설을 짓는 것이 목표고 현재는 사업의 타당성 등을 보고 있다. 아직은 규제, 제약 등 내부적으로 정리해야 될 문제들이 남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명대학교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현재 특별한 진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업무 협약 체결 당시 총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그 이후 총장이 바뀌었다.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없어 방향성을 잃었다. 다시 추진될지, 지금과 같이 답보 상태일지, 아예 무산될지 자체가 정해지지 않은 애매한 시기다”라고 했다.
정부의 제도적 기반 마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전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수요 예측 부족과 행정적·사회적 한계를 꼽는다. 권대중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정부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취지는 좋다. 대학 시설에는 캠퍼스가 있어 공간이 넓기 때문에 활용하기 좋을 수 있다. 다만 폐교나 대학 시설을 실버타운으로 바꾸려면 반드시 수요 분석부터 이뤄져야 한다. 어떤 시설을 원하는지, 어느 정도 수요가 있는지 면밀히 파악하지 않고 추진하면 과잉 투자로 공실이 생기고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학 캠퍼스를 활용한 시니어타운 조성에 대해 “대학은 학생이 주인인 공간인 만큼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노인복지시설과의 동선 분리가 필수고 실질적으로는 교육 용지를 전용해야 하므로 교육부 승인이 필요하다”며 “교육 환경 훼손 우려 등으로 교육부가 인가를 내줄 가능성도 작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폐교 활용과 관련해선 “주민 수용성과 수요 예측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며 “노인시설은 선호도가 높은 편도 아니기 때문에 어린이시설과 병행하거나 주민 자치 시설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 등 상호보완적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이 같은 유휴시설 활용은 탁상행정으로 추진할 문제가 아니라 공청회와 시뮬레이션, 비용 분석, 주민 의견 수렴 등 사전 절차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강래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유휴시설을 활용한 실버타운 조성은 한국이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다. 다만 지역별 입지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케이스별로 적합성을 따져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학 캠퍼스를 활용한 연계형 시니어타운, 즉 UBRC는 매우 바람직한 모델”이라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입주자에게 대학 내 소규모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교육적·복지적 기능이 함께 이뤄지는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단순히 부지만 확보해 실버타운을 짓는 게 아니라 대학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라며 “국내에는 아직 이런 개발 경험을 가진 사업자가 거의 없는 만큼 민관이 함께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가는 초기 모델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인구 구조상 시니어 주거 수요는 앞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수요가 급증하는 이 시점에서 좋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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