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주택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제도
입주자 보호, 운영 기준 없는 복지 사각지대

'고급 리조트 수준의 생활환경, 안락한 노후의 시작.'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실버타운 홍보 전단에는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이곳에 입주했다 1년 만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법적 소송까지 이어진 박모 씨(72)는 이렇게 말했다. "계약 당시엔 식사와 의료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입주하고 보니 대부분 유료였고 응급 상황 대응 시스템도 없었다. 믿고 들어갔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실버타운 시장에는 법적, 제도적 관리 체계가 부재하다. 그 허점을 정밀 진단해 봤다.
2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실버타운'이라는 용어는 법률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실버타운을 '노인복지주택'으로 분류한다. 노인복지법 제31조가 유일한 법적 근거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노인복지주택은 60세 이상 자립 가능한 노인을 위한 주거시설이다. 일정한 생활편의 시설과 공동이용 공간이 포함되어야 한다.
시행령 제19조의2에서는 구체적인 시설 기준과 입주 자격이 명시돼 있지만 운영 방식이나 서비스 제공에 대한 표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자는 민간업체 또는 비영리법인이 될 수 있지만 사실상 시장은 민간 기업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요양시설과의 차이는 뚜렷하다. 요양원은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법인 시설의 경우 한국노인복지중앙회라는 명확한 체계 아래 관리된다. 요양보호사 배치 기준부터 인력 운영, 시설 평가까지 국가 기준이 적용된다. 입소자 보호를 위한 제도도 촘촘하다.

실버타운은 설립 인허가 이후 운영은 자율에 가깝다. 가격 정책, 서비스 범위, 입주자 계약 구조가 제각각이다. 이로 인해 입주자와 사업자 간의 분쟁이 잦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실버타운에서는 냉난방 미비, 식사 질 저하 문제로 입주자 30여명이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입주자 중 한 명인 김모 씨(76)는 "입주 당시 약속한 수준과 다르다며 항의했지만 계약서 조항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무시당했다"고 했다. 결국 해당 문제는 소비자 분쟁조정위원회까지 갔지만 강제력이 없어 갈등만 길어졌다.
보건복지부 ‘2024년 노인복지시설 현황’에 따르면 전국 노인복지주택은 40곳에 불과했다. '실버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인 비등록 시설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법적 근거가 빈약한 탓에 비공식 시설의 난립도 문제다.
혼란은 제도 부재에서 비롯된다. 실버타운 운영자 간의 협회나 단체도 없다. 일부 실버산업 관련 민간협의체가 존재하긴 하지만 시설 운영 기준이나 분쟁 중재 기능을 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갖춘 사단법인은 없다.
권태엽 전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실버타운은 본래 노인을 위한 주택이라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현재는 법적 기준 없이 민간 업자 중심으로 운영되며 복지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과거에도 노인복지 주택 건축을 허가해 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실질적 노인 거주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정책이 실패한 전례가 있다"며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실버주택 수요는 커졌지만 정책은 사실상 멈춰 있다. 보건복지부가 책임지고 실버주택 운영 기준과 관리 체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노인복지청 같은 전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버타운을 장기 요양기관에 비교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당초 돌봄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다만 전문가들은 돌봄 영역에 포함될 경우엔 법 규정을 촘촘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봤다.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에 "입법자와 국가(복지부)가 판단하기에 다양한 노인복지시설 중 의료복지시설과 재가노인복지시설은 장기 요양기관으로서 돌봄서비스의 제공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에 반해 노인 주거복지시설에는 '돌봄'까지는 불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심지어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은 노인 주거복지시설 중에서도 돌봄과 편의 서비스 제공이 불필요한 시설로서 양로시설이나 노인 공동생활 가정은 급식, 그밖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 제공 일체를 요구하고 있다"며 "노인복지주택은 주거의 편의, 생활지도, 상담 및 안전관리 등의 서비스만이 제공되면 된다. 노인복지주택에까지 돌봄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요구할 경우 보호 일변도만으로 제도가 운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노인 중에서도 장기요양기관과 같은 돌봄이 불필요한 분들도 있을 것이고 애당초 이러한 이유로도 다른 노인복지시설과 달리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의 입소 자격 요건은 의료급여 수급자 또는 부양의무 혜택을 못 받는 등의 요건이 없이 단독 취사 등 독립된 주거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60세 이상의 자로만 간명하게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