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기준에도 없는 실버타운
돌봄은 민간 계약, 보증금은 무방비
일본·미국 제도화, 한국 여전히 공백

‘실버타운’은 법령 어디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실버타운이 들어서고 있고 수억원의 보증금과 수백만원의 월세를 지불하며 입주를 결정하는 노년층이 늘고 있다. 고령사회의 주거 대안으로 급부상한 실버타운. 그 안을 들여다보면, 법적 정의도, 기준도, 규제도 없는 상태다.
실버타운은 노인복지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사회복지사업법 등 어떤 복지 관련 법령에도 정의돼 있지 않다. 건축물대장 상 실버타운은 대부분 ‘공동주택’, ‘오피스텔’, ‘임대주택’ 등으로 분류되며 주거 형태만 존재할 뿐 노인 복지시설로서의 법적 지위는 없다.
반면 노인요양시설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34조에 따라 설치·운영되며 해당 법과 시행규칙(제29조~제34조)에는 인력 기준, 시설 구조, 서비스 항목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즉, 장기요양기관은 제도 안에 있고 실버타운은 그 밖에 있다. 인력 기준도, 돌봄 책임도 없다. 노인요양시설은 요양보호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필수 인력을 요건에 따라 배치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 제33조는 입소 정원에 따른 인력 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않을 경우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실버타운은 이러한 기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노인복지주택법과 관련 사회복지사를 배치해야 하지만 생활지도 상담, 긴급사태시 대처 등의 업무만 요구된다. 실버타운 운영자에게 요양인력 배치 의무는 없다. 돌봄 서비스는 입주자와 외부 업체 간 민간 계약 형태로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응급상황 대응 체계도 자율 운영에 맡겨져 있다. 이를 감독하거나 평가하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 보호 제도도 사실상 공백이다. 노인요양시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기관평가(3년 주기)를 통해 서비스 품질과 운영 실태가 공공적으로 점검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39조 및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평가 결과는 등급화되어 공시된다.
반면 실버타운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계약상 문제 발생 시 민법상 임대차 계약 또는 소비자기본법에 근거한 분쟁 조정 외에는 대안이 없다. 실버타운 보증금은 공공기관 보증이 적용되지 않으며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전세보증금 보호 규정도 적용이 제한된다. 따라서 사업자 부도나 계약 해지 시 입주자가 손실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전북에 위치한 실버타운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실버타운은 복지부가 관리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 기준 및 지침은 없다"면서 "복지부는 '분양 안 된다' 혹은 '운영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결국 임대형만 허용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최소한의 운영 기준이라도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며 "운영자는 입주자와 운영 계약서를 쓰고 계약 조건을 고지하며 운영한다. 그런데 국가는 실버타운을 어떤 기준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기본 틀조차 마련해주지 않는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말만 하는 구조"라고 했다.
일본은 2011년 개정된 고령자 주거 안정 확보법에 따라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주택’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민간 고령자주택이라 하더라도 지자체 등록을 거쳐 생활지원 인력 배치, 응급 대응 체계, 서비스 내용 공시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에 대한 면허제를 운영하고 있다. 주정부는 재무건전성·돌봄서비스 연계 여부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반면 한국은 면허제, 등록제, 공시제 모두 없는 상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3년 보고서에서 “고령자복지시설의 법적 분류체계가 미흡하고 민간 실버타운에 대한 등록·감독 체계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실버타운을 독립 법제로 관리하려는 입법 논의는 본격화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역시 실버타운은 “민간 시장 자율 영역”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민섭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고령자의 주거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국가 복지정책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실버타운은 공적 개입이 닿지 않는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고 했다.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노인과 가족들이 실버타운을 검색하고, 계약을 고민하고, 보증금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제도적 보호 아래 이뤄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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