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46% 가치 2.2조 아닌 7조 주장
법률이 허용한 재량권 넘어선 요구
재계 일각선 "배임하라는 말이냐?"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건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 박 대표,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연합뉴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건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 박 대표,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연합뉴스

두산그룹이 에너지 및 로봇 사업 재편 과정에서 주식 교환 비율을 조정해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 가치를 시장가치로 높였으나 행동주의 단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만큼 저평가된 주식 가치를 더 높게 쳐달라며 압박에 나섰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계열사 지배구조 재편을 진행하고 있는 두산그룹이 3개월 만인 지난 21일 이사회를 열고 분할 합병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7월 발표한 1대 0.031에서 1대 0.043으로 변경됐다. 분할합병을 마치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88.5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식 4.33주를 받는다.

주주 입장에선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기존 3주에서 4주로 1주 정도 더 받을 수 있고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선 7000억원에 달하는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떨어내면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사업 투자를 강화할 수 있다. 건설장비 업체인 두산밥캣과 로봇 회사인 두산로보틱스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176조의 5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의 합병 가액 결정을 자산가치 기준으로 "할 수가 있다"며 재량에 맡기고 있다. 이에 신설 부문인 두산밥캣을 비상장(100% 자회사)으로 둬 순자산(자본) 가치로 산정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주주를 내쫓고 상장 폐지하려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두산그룹은 이번에 분할 비율 산정 기준을 기존 순자산(자본)에서 공정가액(주가)으로 변경했다.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의 지분을 공개 매수해 100% 자회사로 상장 폐지한 후 합병하려던 계획을 내려놓은 것이다. 동시에 이 같은 흡수합병안은 향후 1년간 추진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이뿐 아니라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에 흡수 합병되는 것에 반대하는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자사주를 모두 소각해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을 차단하고 합병법인의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가 상승을 꾀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건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건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동주의 플랫폼 비사이드를 운영하는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앞서 "만일 추후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만들고 싶다면,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적절한 절차를 거쳐 제3자가 지불할 용의가 있는 인수·합병(M&A) 가치에 준하는 공정가치로 공개 매수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결과 두 차례의 정정 신고를 통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받을 주식 수가 늘었지만 주주행동주의 단체의 요구는 멈추지 않고 있다. 공정가액(시가)을 제대로 반영해 달라는 요구를 들어줬더니 두산에너빌리티가 가진 두산밥캣의 지분 46.06%의 가치가 2조2000억원이 아닌 7조원이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추가적인 반려 조치를 재촉하는 모습이다.

주주행동주의 플랫폼 '액트'의 운영자인 이상목 컨두잇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기업가치 저평가)를 문제 삼으며 "두산밥캣 지분 가치를 1조6000억원에서 2조2000억원으로 올려준 것에 불과한데 우리가 생각한 진짜 몸값인 최소 7조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계 관계자는 "시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분할 비율 산정 기준을 순자산에서 공정가액으로 바꾸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이를 넘어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것은 배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증권선물위원회가 최근 의결한 합병 시 외부 평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 역시 비계열사 간 합병에 한해 적용되는 것으로 두산밥캣에는 적용될 수 없는 규칙"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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