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사직의 變 주인공 김 국장 인터뷰
세브란스병원 시스템 붕괴 심각한 상황
52명 중 10명 남은 전공의마저 사직서

가을 수료를 앞두고 병원을 떠날 결심한 신촌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김혜민 의국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직 이유를 표명한 글을 올린 것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계속 하고 싶은 절규'로 봐달라며 신념 있게 일하는 필수의료과 의사들까지 "돈벌이의사로 폄하하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임을 강조했다.
지난 3년 5개월 동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로 근무했고 올가을 전공의 수료를 앞둔 그는 두 아3이의 엄마이자 임신 중인 임산부다. 김 의국장의 사직의 변(辯)에는 '소아과를 원하는 의사들조차 소아과를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 나왔다.
앞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이 응급의학과 전공의 사직 의사를 밝히자, 박민수 복건복지부 2차관은 "진심을 담아 개인적인 사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이것을 회피하기 위한 또 하나의 투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의대 증원 조치가 "필수의료 현장의 젊은 의사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불행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 의국장은 의대 증원을 하더라도 필수의료과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의사 공급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현재와 같은 소아청소년과 현실이 지속되면 누구도 자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빅5(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중 시스템 붕괴가 가장 먼저 진행 중인 세브란스병원의 적나라한 현실을 설명했다.
―1~3년차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19일 일괄적으로 교수부에 바로 전달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신입 전공의 모집에서 TO(조직 인원구성)가 미달돼 예비 1년차가 1명밖에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1년차는 13명 중 3명이었는데 작년 9월가을 턴으로 한 명 들어와서 4명이다. 2년차는 2명 3년차는 3명으로 현 4년차가 졸국시 올해 전공의는 다 합쳐서 저까지 10명이다."
―전체 52명 TO 중 10명 있던 전공의까지 다 나가는 것인가? 다른 빅5 병원들은 사정이 어떠한지.
"올해 세브란스를 제외한 다른 빅5 소아청소년과는 TO를 모두 채웠으나 세브란스 포함 다른 병원들을 보면 전체 소아과 전공의가 한두 명인 곳도 있고 0명으로 비어 있는 곳도 있다."
―빅5인데 세브란스에는 왜 한 명밖에 안 왔을까?
"병원 규모가 커서 중환자와 로딩은 다른 빅5 병원과 비슷하다. 다만 이곳은 3년 전부터 전공의 부족이 있었기에 윗년차들의 부족으로 상대적인 로딩이 아무래도 많을 것으로 생각됐을 거다. 윗년차로 부터 트레이닝을 잘 받기도 어렵고 백(back)이 없다는 것도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많이 차 있는 다른 빅5 병원으로 몰리게 되는 것 같다."

건강 의료보험 제도에 대한 착시
필수의료 붕괴 사각지대 더 키워
개원 못하는데 누가 지원하겠나?
김 국장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미달 현상이 발생하기 이전 세브란스병원엔 원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52명이 있었다. 강남 세브란스병원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등에 파견까지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파견 갈 전공의가 없어져 강남 세브란스엔 전공의가 0명인 실정이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와 같은 필수과는 수련이 끝났다고 해서 장미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개인 병원을 차리더라도 대부분의 진료 항목이 급여로 분류돼 수지 타산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의료 서비스가 세계 최고의 값싼 건강보험시스템 하에 작동한다는 것은 일종의 착시(錯視) 현상이다. 저비용이란 미명 아래 필수의료가 붕괴하는 사각지대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을 두고 특히 필수과 전공의들이 크게 분노하는 이유다. 정부가 업무개시 명령을 내려 면허 취소 건이 생기기라도 김 의국장과 유사한 케이스의 사직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환자실 당직 뛰는 교수님들 은퇴해도
"다수 전공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보호자들이 어쩔수 없는 상황 알 필요

―정부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의사수가 절반 밖에 안되기 때문에 숫자를 늘리면 다른 과에 지원하고 떨어진 이들이 소아과로 가지 않겠냐고 한다. 아울러 피부미용 진입을 제한하는 패키지도 내놨다.
"소아청소년과는 로컬에서 개원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수가가 책정되지 않으면 자원자들은 적을 것이다. 돈 안 되고 소송많은 필수의료를 왜 선택하겠나? 필수의료를 다른 과 떨어져서 어쩔수 없이 지원한 의사들로 채우겠다는 발상부터 황당하다. 건강과 직결된 필수의료의 질이 떨어져도 된다는 뜻인가? 자녀에게 최상의 교육, 최상의 음식 등 최상의 것만 주고 싶은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다른 과를 갈 수 없어 어쩔수 없이 온 최저 퀄리티의 의사에게 자녀의 진료를 맡기고 싶은가? 필수의료 분야야말로 사명감을 가진 최고의 인력이 가야 한다. 최고의 인력이 가고 싶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의 정책은 아무도 가고싶지 않은 과로 만들고 있지 않나. 그 책임을 왜 의사에게 지우고 의사를 비난하나."
―보건복지부는 환자 사망 발생 시 법정 최고형을 내리겠다고 한다. 오는 20일 파업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가?
"언론과 정부의 잘못된 메시지로 필수의료도 밥그릇 싸움처럼 폄하되는 것이 싫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밥그릇인데 무슨 밥그릇 싸움이 난다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지켜온 환자에 대한 신념마저 폄훼하니 더 버티기 어렵다. 온갖 어려움을 환자 살려내는 자부심 하나로 견뎌 왔는데 그마저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하니 어떻게 버티겠나."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뜻과는 다른 방향인 것 같은데
"남아 있는 교수님들도 많이 지쳐 보인다. 노구를 이끌며 오직 사명감으로 중환자실 당직까지 뛰고 계신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사명으로 힘든 현실을 감당하고 있는 교수님들이다. 너무 존경스럽지만 나는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 이대로면 그 분들이 은퇴하실 때면 대학병원엔 정말 소수의 전문의들만이 남게 될 것 같다."
김 의국장은 "소아과를 하고 싶어하던 의사들조차 소아과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현재의 제도"라며 전공의 사직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정부의 대처에 답답함을 표출했다. 그는 "지금은 아무도 의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 환자보호자들만이라도 소아청소년과의 붕괴 현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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