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인식으로 꺼려지는 요양원
방문요양 제공은 하루에 3시간뿐
부정수급 허점 가족요양보호사 제도
지역사회 돌봄 체계 일본 벤치마킹

앞으로 2년 후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가 된다. 한국인 5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 노인이 된다는 뜻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산율마저 0.78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노인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노인이 병들어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老老)케어' 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우리보다 초고령사회에 일찍 진입한 일본도 노노케어 홍역을 앓고 있다.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개호(돌봄) 살인'이 속출한다. 우리도 서둘러 대비하지 않으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여성경제신문이 계묘년 신년기획으로 이미 시작된 노노케어의 현장을 조명하고 대응책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① 죽어야 끝나는 가족 요양···"나 아니면 누가 돌보나"
② 노인 학대 오
명 쓴 요양원···노노케어의 그늘
③ 땜질 투성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노노케어 무방비
④ "유치원 옆에 요양원 설치하라"···청년·노인 정책 함께 봐야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한 요양원 입소자가 치매 예방을 위해 성경책을 읽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한 요양원 입소자가 치매 예방을 위해 성경책을 읽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 남들 정년퇴직하고 귀향할 때 오늘도 난 중증치매 아내를 돌보고 있다. 혹여나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잠시 외출하는 것도 무섭다. 아내는 치매 판정을 받자 내 품에서 눈 감고 싶다고 했다. 요양원에 들어갈 수 있는 치매 등급을 판정받았지만 한사코 거부했다.

24시간 아내에게 눈조차 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자 나부터 부쩍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건강해야 아내도 제대로 돌볼 수 있다는 생각에 3시간 만이라도 집에 요양보호사가 근무하는 방문요양 서비스를 신청했다. 

매일 방문요양보호사가 찾아오지만 남은 21시간은 온전히 내가 아내를 돌봐야 한다. 생활비도 떨어져 가는 마당에 내가 직접 요양보호사가 되면 그나마 국가에서 80만원을 준다길래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아내의 치료비엔 턱없이 부족하다. 요양원도, 재가서비스도, 가족요양보호사도 매달려 봤지만 답은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병이라도 얻으면 아내는 어떻게 될까 늘 두렵다.

-이천시에 거주하는 78세 김종식(가명)씨

인구가 고령화되면 필연적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노인을 돌보는 게 사회적 과제가 된다. 국내에서도 고령화에 대비해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건강보험 가입자가 낸 장기요양보험료와 정부지원금을 재원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노인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그나마 노인 돌봄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떠안기던 이전과 비교하면 요양시설에 입소시키든가 집에서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돼 가족의 부담은 덜게 됐다. 그러나 재원 부족 상태에서 노인 인구가 갑자기 급증하면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땜질식' 대증 처방을 되풀이 하면서 장기요양보험제도도 누더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인 돌봄 가족 입장에선 선뜻 요양원을 선택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재가 서비스를 받자니 턱없이 부족해 '돌봄 지옥'을 헤어날 길이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이미 지방에선 심각해진 '노노케어'에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장기요양등급 판정자 중 노인요양시설 입소 서비스를 이용하는 환자는 전체의 28%다. 방문요양서비스는 57% 가족요양보호사제도를 이용하는 수급자는 15%인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원 등 시설 이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방문요양을 선호하지만 그것도 3시간 정도밖에 안 돼 환자 돌봄은 모두 '가족'에게 전가된 실정이다.

사실상 전체 장기요양등급제 수급자 중 72%는 가족이 직접 돌보고 있다. 요양원이라는 대안이 있지만 '고려장'시킨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이용을 꺼려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2020년 장기요양등급 판정자 1004명을 대상으로 '장기요양서비스별 이용 선호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69%에 달하는 수급자가 '요양원을 이용하면 버려지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자 요양 서비스 이용 현황. /보건복지부,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장기요양등급 판정자 요양 서비스 이용 현황. /보건복지부,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재가 서비스를 이용하면 만족도는 높을까. 집에서 생활하는 고령 환자를 돌보는 건 대부분 5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주요 돌봄서비스 제공자의 95%가 50대 이상이었으며 50~60대가 51.7%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70대는 28.3%로 나타났으며 80대 이상도 14.7%로 적지 않은 수치를 기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1년 방문요양보호사 제도를 이용하는 수급자 8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절반 이상에 달하는 58%의 수급자가 '하루 3시간가량의 서비스로는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그런데도 방문요양이나 주·야간보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본인부담금 부담 때문이란 답변이 60%에 달했다.

실제 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치매 환자 A씨(여·84)와 환자 가족 B씨(남·86)는 여성경제신문을 만나 "3시간이라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잠깐이라도 환자 옆을 떠나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 3시간을 제외하면 결국 21시간은 내가 직접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증 치매환자는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공격적인 행동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아내의 경우가 공격적 행동장애를 보이는데 잠시라도 옆에서 멀어지면 불안감에 행동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그렇다고 요양원에 보내려 하면 맘이 안 떨어지고 방문요양보호사는 겨우 세 시간 있다가 가고 가족요양보호사를 직접 따서 해봤지만 지원금을 받으려면 직업을 가지면 안 되기에 이마저도 소용없는 상황이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가족이 함께 고생하다 죽게 될 판"이라고 호소했다.


한국에만 있는 가족요양보호사 제도, 부작용 속출

요양원은 꺼리고 요양보호사 방문은 짧다는 지적에 따라 뒤늦게 도입된 게 가족요양보호사 제도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시행하는 제도로 가족이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평균 60만 원에 달하는 월급을 매달 지급해 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한 2008년부터 2020년까지 가족 구성원이 직접 환자를 돌보는 비율이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가족이 직접 돌보는 가족요양보호사의 평균 연령은 64세로 나타났다. 전체 요양보호사의 평균 연령이 58.7세인 것을 고려할 때 재가서비스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더욱이 가족요양보호사 제도는 가족이 노인을 돌보도록 하는 게 노인에게 더 낫다는 애초의 취지와 달리 가족에 대한 지원금으로 변질돼 부정 수급 문제가 끊임 없이 지적되고 있다. 가족요양보호사는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가 만난 건보공단 요양기준실 고위급 관계자는 "현재 가족요양보호 제도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진 가족이 건보공단이 아니라 인력 파견기관과 근로계약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라며 "가족요양보호사제도에 (부정수급) 문제로 이미 2011년에 제도 폐지를 하려다가 현장 민원으로 없애지 못했다"고 전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지자체가 아닌 민간영리기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제도를 지적했다. 허 교수는 "일부 요양기관이 체인점처럼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있지만 (이익만 추구해) 고령 환자의 인권이나 돌봄 서비스 향상에는 관심이 없다"며 "지자체에서 관리·감독하는 사람이 딱 한 명이라 요양제도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허 교수는 "고령 환자가 겪는 노인성 질환은 매우 많기에 그들의 질환을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주간보호센터를 활용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전했다.

일본 후쿠오카현의 치매 노인 공공주택 ‘요리아리’에 입주민들이 모였다. / 요리아리 홈페이지
일본 후쿠오카현의 치매 노인 공공주택 ‘요리아리’에 입주민들이 모였다. / 요리아리 홈페이지

가족 대신 소규모 지역사회 중심으로 돌봄 체계 만든 일본

#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방문해 병 경과를 세심하게 봐줍니다. 심지어는 늦은 밤에도 야간 순찰 진료가 이뤄져서 위급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대처가 바로 돼서 안심되더라고요. 이 모든 게 의료보험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금전적인 부담도 없습니다.

어머니도 원래 살던 동네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으세요. 가끔 친구분이 찾아 오면 한참 이야기 나누시다가 돌아가신답니다. 또 돌봄 매니저가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한 달에 2번씩 방문해 줘서 불편한 점도 곧바로 개선되고 있답니다.

-일본 치매 노인 공공주택 '요리아리' 홈페이지 사례.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은 한국보다 앞선 2000년에 노인장기요양보험 격인 개호보험을 도입했다. 일본은 제도 도입 당시부터 가족 대신 지역사회를 돌봄 체계의 중심에 두고 제도를 설계했다. 이는 일본이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가족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없게 된 데 따른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지역 포괄케어 시스템을 통해 가족 돌봄 서비스 비중을 줄여갔다. 지역포괄케어란 소규모 지역사회가 의료와 돌봄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노인이 자기가 살아온 정든 지역에서 가능한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적인 생활지원·주거 등의 서비스를 포괄했다. 

여기서 지역은 '일상생활권역'을 뜻한다. 1만명 규모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에 노인 통합 돌봄 서비스를 구축해놓았다. 특히 지역포괄케어는 병원에서 자택으로의 이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의료와 복지는 그 경계를 넘나들어 여러 직종이 연계하는 네트워크 방식을 띤다.

가족 대신 지역사회가 돌보는 구조를 만들다 보니 일본에선 가족요양보호사 제도가 아예 없다. 가족 돌봄에 대해 현금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것 자체가 법으로 금지됐다. 대신 지역사회가 노인을 돌보다 보니 가족의 부담을 훨씬 덜게 됐다.

허 교수는 "노인요양은 가정과 같은 소규모의 공동생활에서 돌봄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며 "일본은 노인을 집중적으로 돌볼 수 있는 인프라와 전문 인력을 배치하기 위해 지역 위주로 서비스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어 "대규모인 한국의 요양원은 어르신 한 명을 제대로 돌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작은 연립주택에서 이뤄져 서비스 관리만 잘 이뤄진다면 일본의 지역 포괄케어 시스템은 좋은 취지의 제도"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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