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플랫폼 결제액 1위 5060세대
'라이프스타일' 투자하는 58년 개띠
시니어, 새로운 소비 그룹으로 부상

짧은 미니스커트가 인상적인 치어리더 복장을 한 70대 여성 노인들이 무대에 올라와 치어리딩을 한다. 얼굴에 웃음꽃이 한가득 핀 이들은 무대가 끝나자 서로 얼싸안고 "우리 오늘 너무 아름다웠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실버타운에서 탄생한 유명 치어리딩 클럽 '폼즈(POMS)'의 실화를 영화화한 <치어리딩 클럽>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치어리딩 클럽은 웰다잉을 위해 실버타운에 입주한 주인공 마사(다이안 키튼)가 7명의 이웃과 함께 오랜 꿈이었던 치어리딩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힐링 코미디'라는 장르에 걸맞게 유쾌하면서도 가슴 포근한 에너지를 선사해 준다.
사실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은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여유로운 할머니들이다.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고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고급 실버타운에 입주한 할머니들 이야기다.
최근 경제력이 뒷받침된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패션 성향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선 베이비부머 즉 58년 개띠 세대가 65세 이상 고령층에 진입하면서 시니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세대별 온라인 소비행태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과 20년 사이 온라인 결제 건수 증가율과 결제액 증가율에서 1위는 단연 50대와 60대였다. 패션 플랫폼 결제액을 토대로 본 앱 서비스 결제액 증가율 최상위 역시 이들이다. 2021년 이들이 차지한 비중이 무려 25%에 이른다.
한국 문화는 예로부터 옷을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있다. 서울 북촌에서 전통 한복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이명숙 씨(64·여)는 "우리는 의복을 통해 우리 삶의 가치와 예를 표현하며 동방예의지국의 전통을 계승해 왔다"면서 "수많은 속담이 옷과 관련된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음씨가 고우면 옷 앞섶이 아문다', '거지도 입어야 빌어먹는다', '하루 굶은 것은 몰라도 헐벗은 것은 안다'와 같이 우리의 일상과 가치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시니어 세대는 인구와 경제적으로 강력한 집단 중 하나"라면서 "예전에는 중년 패션은 주로 생활 한복이나 모노톤의 정장, 알록달록한 등산복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시니어들은 백화점의 '부인복'이나 '신사복' 대신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50대와 60대 세대는 미니 주름스커트, 모자, 장갑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활발한 활동을 즐긴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는 시니어 패션모델 과정이 생기면서 중년 학생들이 몰려드는 추세다.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 프로그램도 생겨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대체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새로운 시니어 세대가 더 이상 '늙은 패션'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최근 시니어는 '젊게, 자유롭게, 스타일리시하게' 살고 싶어 한다"며 "연령에 따른 패션 규칙은 무너지고, 모든 세대가 자유롭게 다양한 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최근 패션 트렌드"라고 전했다.
온라인을 통해 중장년층 사이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온라인 여성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는 70대 액티브시니어 윤여정을 모델로 발탁, 2030 타깃 플랫폼이라는 인식을 뚫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미니멀룩을 즐겨 입는 윤여정은 주로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통해 체형을 감추는 전형적 중년 여성 스타일에 반란을 일으키며 기성세대 사이 '윤여정 패션'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그재그는 네 편의 시리즈로 공개된 광고로 각각 162만회, 424만회, 117만회, 6만4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녀는 광고에서 보통의 패션광고에서처럼 ‘나 따라해봐’가 아닌 ‘너네 맘대로 사’라는 메시지로 2030의 가치소비 심리를 저격했다. 물론 윤여정이란 특별한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한예슬과 같이 반짝이는 2030세대의 별 대신, 70대에 접어든 그녀를 선택하며 브랜드는 그들 삶의 새로운 롤 모델로 패션에 대한 인사이트를 준 것은 물론 젊은 감각을 추구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의 패션 플랫폼 참여를 끌어냄으로써 경쟁 브랜드인 ‘에이블리’와 ‘브랜디’를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했다.

활동적인 노인 일컫는 신조어 '오팔세대'
전문가 "달라지는 신 노년 세대의 역할"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과 비슷한 우리식의 이름으로 ‘오팔(OPAL)세대’라는 신조어가 있다. Old People with Active Lives(활기찬 삶을 사는 신 노년)의 약자로 매년 트렌드 리포트를 내는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2020년의 새로운 키워드로 처음 제시한 ‘오팔세대’는 오팔 보석처럼 세대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색깔의 소비를 한다는 의미와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를 대변하는 58년 개띠 세대를 중의적으로 의미한다.
김 교수가 말한 ‘오팔세대’의 개념도 결국 새로운 소비의 중심으로 등장한, 전에 없었던 새로운 인류로서의 5060세대인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들의 삶의 궤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변종 바이러스와 같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90년대 맥북과 2000년대 초반 아이폰의 첫 구매자였으며 ‘라이코스’ ‘야후’ ‘다음’과 같은 포털 서비스를 처음으로 이용했던 웹 시대의 주역이었다.
이들은 웹에서 앱으로 이동하는 것이 귀찮거나 조금 미뤄도 되는 일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가족부양의 굴레에서 벗어나면서 만들어진 시간적, 경제적 자유를 자신에게 투자하며 이전의 세대가 꿈꾸지 못했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소비그룹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김영숙 원주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시니어 소비자는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패션 업계에서 보면 품질 좋은 원단과 넉넉한 재단을 선호하며 편안한 착용을 중시한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개인적인 취향과 스타일을 중시하며 소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패션 분야에서 신 중년 세대의 역할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세계 최고령 패션 아이콘인 아이리스 아펠과 대만의 창완지와 허슈어 부부가 떠오르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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