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따라 나서는 꼴이지만
남의 뒤통수를 보며 밀려 다니는 여행은 좀···

코로나가 해제되니 각종 매스컴의 여행상품이 봇물 터지듯 넘쳐난다.
올겨울엔 아들네 다녀오려고 휴가를 길게 내놨더니 엉뚱한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지인들과 여행 가려고 모은 단체적금도 코로나로 묶여 엄청 불어난 상태였다. 모두들 들뜬 마음에 가까운 이웃 나라부터 입으로 다 돌고 있는데 말 잘하는 한 사람이 나서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멀리 가보자고 선동했다. 후다닥 그렇게 유럽행이 확정되었다. 의견도 만장일치, 비용 날짜 시간 계획도 일사천리다. 나이가 드니 우물쭈물하지 않아 좋다.
며칠 후 ‘아무래도 비행시간이 길다.’ ‘열흘이나 비우면 집 지키는 개밥도 걱정이네.’ ‘보일러가 얼어 터지면 어쩌냐.’ 등등 별별 걱정이 쌓였지만, 다수결에 따라 함께 하는 것으로 잠정결정을 했다. 나도 망설여졌다. 나 또한 여행지에 관한 일말의 상식도 없이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따라 나서는 꼴이다. 어수선한 마음에 나의 멘토인 지인에게 여행에 관한 이러저러한 의견 분분을 이야기하니 가만히 듣고 있던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피렌체에 대해 알고 있는 한 가지만 말해 봐요.”

문득 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어느 동네에서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을 모아 문해교육을 실행하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인지 가르치는 선생님도 힘이 났다. 선생님이 물었다.
“피읖(ㅍ) 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뭘까요?”
한 글자 한 글자 배우며 자신감 넘치는 어른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그런 건 식은 죽 먹기여~ 파리(날아다니는 파리)”
선생님이 손뼉을 치며 말씀하셨다.
“어머 너무 잘하셨어요. 프랑스도 피읖으로 시작하지요. 파리와 함께 외우면 짝이 되어 더 좋겠지요.” 어른들이 집에 와서 생각했다.
‘파리와 똥파리, 아니면 푸세식 뒷간은 짝이 되지만 프랑스라니.’
하하, 그럼 피렌체와 파리채도 짝? 허접한 농담 속에서 무식한 내 모습이 보였다.
마침 유럽에 대한 알쓸신잡 같은 박재희 님의 '더봄' 칼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위대한 로망’을 몇 번이나 통독했건만, 내 머리는 소통이 너무 잘되는 건지 쌓인 건 없고 그저 고장 난 형광등 꼴이다. 뒤죽박죽 두서없는 대답이 나왔다.
지인이 말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유럽은 예술에 대한 책 한 권쯤은 읽어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코로나가 풀리고 하필 돈 쓸 곳이 마땅찮은 부자들이 모두 이탈리아로 몰려 지금 가면 사람 구경이 될 거라고, 먼저 거실에 놓인 화질 좋은 티브이로 유럽 여행 프로를 찾아 시청하며 해설사가 말해주는 작은 지식이라도 쌓아보라고. 그런 다음 역사 현장에 어울려 눈으로 보면 감동이 더 클 거라고. 유럽 여행은 우르르 가지 말고 혼자나 둘이 다녀오라고, 등등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다.

오는 길에 사우나에 가서 오랜만에 세신을 했다.
옆에 누운 젊은 여자가 안동이라는 작은 도시를 특별히 선심 써서 방문한 듯 생색을 낸다. 고급 호텔에 묵고 고급 음식을 먹고 고급 맛사지를 하고, 조잘조잘.
세신사도 비싼 요금을 낸 손님인지라 장단을 맞춰준다. 세신사가 여기저기 역사적인 곳을 알려주며 도산서원을 소개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아는 체를 했다.
“알아요, 그 유명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거기 계신 거지요.“
허걱···. 세신사가 때를 밀다 말고 갑자기 흥분하여 도산서원에 대해 문화해설사보다 더 깊이 있고 조리 있게 설명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품격 있는 그들의 설명에 감동이 왔다. 그녀가 퇴실하자 나를 담당하던 분이 흥분한 듯 내 등을 철썩철썩 때렸다. (안마였지만 살짝 아팠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예쁘고 젊고 돈이 많으면 뭐혀, 머리가 비었는데.”
우리의 여행지는 유럽에서 다시 가까운 대만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모두 대만족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대만 여행용 책을 빌렸다. 거의 도로 빠져나갈 지식이지만 그래도 나는 대만 이야기를 머리에 꼭꼭 심고 있다. 늙고 돈도 없는데 머리까지 텅 빈 줄 알면 너무 부끄러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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