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기분 좋게 마신 술은 명약이 되고
한잔 술에 취해 그대 이름 불러주니
할머니도 꽃으로 피어났다
(전편에 이어) 지인이 소개해 준 땅은 경매에서 한 번 유찰된 땅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낙찰받았다. 이 경험으로 경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곳의 위치는 400고지 정도 되는 산속의 옹달샘 같은 숨은 지형이다. 저번엔 700고지 산꼭대기라 시야가 탁 트였는데 이번엔 콕 처박혀 있어서 또 새로웠다. 위쪽으로 독거노인 몇 분이 살고 계셨다. 우리는 다 허물어져서 고대 건축물같이 손으로 빚어 올린 울퉁불퉁한 흙벽만 남아 있는 집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집 앞엔 개울이 있어서 물은 마르지 않고 흘렀다. 사랑으로 어루만지면 온기와 함께 좋은 집으로 태어날 것 같은 애잔한 정이 갔다. 답사 간 날,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는데 잠이 잘 왔다.
젊은 부부가 깊은 산속으로 이사 왔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 나갔다. 하나 둘 사람 구경을 왔다. 이곳도 입주 선물로 술병을 들고 왔지만 그나마 크기가 작았다. 다 쓰러진 집을 고쳐 산다 하니 우리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1km근방에 사는 이웃들이 무료한 나날에 좋은 놀잇감을 찾은 듯 아침마다 올라와 집 고치기를 도와주었다.
초가삼간 모양이라 온돌방 한 칸에, 화장실을 넣은 주방 한 칸, 방문만 열면 마당인 구조였다. 그들은 산에서 황토를 져 나르고 나는 개천에서 돌을 주워 날랐다. 이웃들이 자기네 창고에 있던 쓰다만 건축재료를 다 갖고 나왔다.
시골집 짓기엔 일가견이 있는 기술자들이라 보수를 드리려고 하면 오히려 섭섭해 했다. 하긴 보수 받기가 애매한 것이 잘 나가다가 술판이 벌어지면 그날 일이 끝나는 꼴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술상을 차려 대령했다. 참 이상한 것은 술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차려지는데 남편의 몸은 점점 힘이 쌓여 갔다.

이곳에도 난감한 일이 있었다. 이번엔 윗골 할머니 때문이다. 90세가 가까운 그 어른은 잘 살던 옛날엔 이 골짝의 땅이 모두 당신네 땅이었다. 세월이 흘러 하나 둘 다 사라졌지만 마음만은 아직 당신이 지주였다.
동이 트면 출근하듯 오르내리며 간섭을 했다. 또한 우리가 자식같이 편했는지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곤 했다. 장날이면 먼동이 트기 전 기침소리를 하며 들어오셨다. 머리맡에 앉아 다리가 아프네, 허리가 아프네 하며 소곤거렸다. 그러면서 자긴 조금만 쉬었다 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자라고 했다. 잠이 오겠나? 하하하.
훗날 보니 꼭대기 집에서 버스정류장 내려가는 길목인 우리 집터는 쉬었다 가는 중간 지점이었다. 여기서도 한 시간을 더 걸어 내려가야 하니 말이다. 오랫동안 쉼터였던 자리를 우리가 차지한 셈이라 우리는 마당에 쉼터 자리를 만들기 전까지 외출복을 입고 잤다.
남편은 이곳에 들어온 후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나눴다. 남편을 아들 보듯 젊은 남정네 보듯 살갑게 대했다. 그는 그들에게 어르신이란 호칭보다 이름을 불러주었다. 옥*씨~ 춘*씨~ 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그들은 버르장머리 없다며 막 나무라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으면서도 슬펐다. 가끔은 그들의 이야기가 라디오에서 채택되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이를 녹음해서 들려드리면 너무 좋아하셨다. 그 후론 주위 어르신들이 너도나도 살아오신 생애를 구술하니 그 공책이 쌓여 글쓰기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위인전만 감동과 배울 것이 있는 게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그들은 전쟁에서도 가족을 살려냈고 초근목피의 생활 속에서도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7~8명의 자식을 온전히 길러냈다. 그분들의 생애가 곧 위인의 삶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 어른의 웃픈 이야기를 꺼내 본다.
늘그막에 영감님은 10년을 중풍으로 누워 지냈는데 늘 작대기를 허리춤에 두고 자신이 조금만 못마땅하면 휘둘렀다고 한다. 어느 날 대변을 치우는데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또 때리더란다. 함께 한 50년 억겁의 세월이 하도 억울해서 누워있는 남편에게 이불을 덮어씌우고 때리던 작대기를 빼앗아 흠씬 두들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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