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산림기사자격 1차 시험 합격한 친구가
폐업한 전 회사 경력 사실 확인 받으러
전 상사·동료들을 만나러 다녔는데···
절망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는

내가 궁지에 몰렸을 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친구가 몇이나 될까.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궁지에 몰렸을 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친구가 몇이나 될까. /게티이미지뱅크

제주도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안동에 왔다. 나에게 다인운전 보험을 넣어서 차를 이틀만 빌려 달라 부탁했다.

그는 산림기사자격 1차 시험에 통과하고 2차 시험을 앞두고 있다. 2차 시험 전에 합격자들이 챙겨야 할 서류가 있었다. 자격에 관련된 4년제 대학을 나오거나 동일 직종에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증명서가 요건이다. 관련 대학은 안 나왔어도 경력이 있으니 서류만 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알아보니 다녔던 회사를 양도 양수받은 회사도 몇 년 전 폐업을 한 것이다. 난감해진 그는 관련 부서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상담한 담당 직원부터 부서장까지 시원한 답변이 안 나온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콜센터에 전화하니 오히려 전화상담 하는 직원이 자세한 해결책을 속 시원하게 답해준다. 폐업해서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한 경우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나 동료의 사실 증명서를 제출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니 콜센터 직원은 아는데 공단지부 두 군데의 담당 직원과 상사들은 도대체 어째서 모른다는 말인가. 들으면서도 울화통이 터졌다. 다행히 해결책이 제시되니 연락처가 있는 관련자에게 S.O.S만 치면 되었다. 그러나 세상만사 쉬운 것이 아니었다.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구를 얻었다. 사실을 사실로 증명하는데도 사회에선 서류로 통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구를 얻었다. 사실을 사실로 증명하는데도 사회에선 서류로 통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음 날, 두 시간을 운전해 찾아간 옛 사장은 자신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지금은 비록 다른 회사 운영자지만 내가 근무했다는 증명이야 해줄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사 들고 갔다.

이전 사장과의 법적으로 힘들었던 과정을 이야기한다. 아픔을 들추는 격이지만 사정이 급하니 기회를 보고 있는데 그쪽에서 먼저 그 회사와 관련한 어떤 협조도 불가하다고 너무나도 정중하고 친절하게 거절했다. 실망하며 돌아서 나오는데 들고 간 음료 선물도 도로 가져 나올 걸 하는 쪼잔함이 따라붙더란다.

그래도 아직 증명해줄 이가 남았다. 그때 당시 숙식을 같이하며 함께 일하다가 친구가 된 두 사람이다.  한 친구는 자주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도움도 주는 나를 잘 아는 친구다. 조금 거리가 있지만 차가 있으니 걱정 없다. 그런데 막상 전화하니 걱정하지 말고 달려오라고 할 줄 알았던 친구의 목소리에서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바쁜 것을 강조하며 오늘은 시간이 없단다.

 꼭 이익 때문에 손잡는 것은 친구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꼭 이익 때문에 손잡는 것은 친구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달 말까지 기한이라 이야기했고 며칠 지나면 모든 게 무효가 된다는 걸 알 텐데 섭섭했다. 또한 그는 증언은 해주겠지만 마누라 무서워 서류상(인감증명)으로는 못 해준다고 핑계를 대었다. 돈을 빌리는 것도 아닌, 같이 일했다는 걸 증명하는 건데도 법과 관련된 것은 겁난다.

이해하자 생각하면서도 전화를 끊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점심까지 굶어서 허기가 지며 머리가 팽 돌았다. 근처 도넛 가게에서 도넛으로 점심을 때웠다. 설탕 범벅 도넛이 소태맛이다. 나이 들어 근 반년 이상을 하루 10시간 궁둥이 붙여 겨우 합격한 자격증인데, 이제 실기시험만 남았는데, 눈에 훤히 보이는 고지를 여기서 포기해야 하기엔 너무 허무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판이었다.

마지막 남은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가지 일로 풍파를 겪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부터 건성으로 몇 번 묻던 안부도 끊어진 상태였다.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대뜸 서류 부탁으로 연락하다니 염치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기댈 사람이 없었기에,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사정을 호소했다. 그러자 그 친구 왈,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으니 축하 선물로 대신해야지. 가까운 사무소에서 기다려주게.”

친구는 일을 마치자마자 면사무소로 달려와 주었다. 사실 증명서에 근무 기간과 근무 내용을 확인한다는 것에 자필로 서명을 받았다. 면사무소에서 모두 꺼리는 본인서명사실 확인서(인감증명)를 본인이 주민증을 제시하고 발급받았다.

이렇게 해결이 되다니. 이틀 동안 여기저기 도시를 넘나들며 사실을 사실로 증명하는 게 안 되어 포기하려던 시간, 이리저리 거절당하고 외면당한 일들이 안개처럼 스쳐 갔다. 불쑥 찾아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며 부탁한 사람에게 오히려 사는 게 바빠 연락도 못 했다며 미안해하는 친구를 보며 돌아오는 길에 울컥 눈물이 났다.

윗글은 친구에게서 들은 이틀 동안 종종거린 이야기다. 우리는 각자의 이익을 당연한 듯 추구하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이익사회의 구석구석에는 따뜻한 정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비 이익적 일들도 일어난다는 것이 요즘 일상에선 신선한 소재였다. 차를 빌려준 덕분에 일을 잘 해결하고 비행기에 올랐다며 친구에게서 문자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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