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이제라도 잡혀 살던 남자를 풀어주려면
우선은 그간의 일들을 사과부터 해야 했다
(전편에 이어)이후, 남편은 지인들이 오면 떳떳하게 술상을 차리라고 큰소리쳤고 나는 주모가 되어 안주라도 영양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술상을 차렸다.
원래 그는 힘이 넘치고 호탕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진봉처럼 버럭 큰소리치는 것이 박력이라 생각하는 남자였다. 주위에선 기피인물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하고 자상했다. 결혼 후에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힘든 삶이 지속되다 보니 서로를 지키며 같이 살려는 발버둥에 언제부턴가 내가 변종 슈퍼우먼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조용한 가정을 위해 포로가 되어 잡혀 살았다.
남편이 아내에게 잡혀 산다는 것은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게 여자 맘대로 하는 걸 모른 척 따라 해주는 거다.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따라오는 줄 알고 기고만장하게 주권을 휘둘렀다.
호랑이가 포효 못하면 고양이도 업신여기는 세상에 나는 남편이 하려는 일을 무조건 못하게 했다. 아무것도 못 하게 하니 계절도 없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주말이면 아직 잠에서 깨지도 않은 아이를 흔들어 고기 잡으러 토끼 잡으러 간다며 바다로 산으로 쫒아 다녔다. 어느 땐 다쳐서 비상을 걸 때면 심장이 멎을 지경이었다. 가끔은 미성년인 아이들과 주도에 대해 가르친다며 술잔을 주고받기도 했다. 정말 미웠다.
그러나 성인이 된 아이들은 지금도 아빠와 함께 놀던 그때가 가장 빛나던 시절이라 말하니 아이러니하다. 내겐 고정적인 수입만이 중요했다. 조용히 사는 것이 안정된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게 나라는 여자는 살면 살수록 정이 안 가는 인간이었다. 사채에 쪼들리고 생활고를 겪어 본 사람은 이해해주리라.

술에게 진심으로 고해한다. 술이 병을 주고 사람을 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신이 만든 신성한 술을 핑계로 오만 짓을 다 한다는 것을. 그땐 술 마시고 말실수하는 것도 음담패설도 이해가 안 되었다. 세상은 실수와 실패가 일상을 발전시키고 꿈을 꾸게 만드는데 당시엔 오직 술이 모든 사건의 주범이라 생각했다.
또 알았다. 인간을 창조한 신은 술을 과하게 마셔도 구토까지는 못 본 척해준다. 그리고 똥오줌은 가리게 해서 자존을 지키게 한다. 경험해 보니 술에 이상한 약을 타지 않은 이상, 술 먹고 어디에서 자빠지든 송장 꼴이 되어 있어도 요의는 느껴진다. 그래서 장롱문을 열고 조준하든, 옆 짝의 머리통이 요강인 줄 알고 거기에 조준하든, 올라앉든, 어쨌든 뇌가 일어나게 한다.
죽었다는 건 괄약근이 풀어진 것으로도 확인된다고 했다. 누군가 그랬다면 그는 잠시 죽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 주위에 그런 실수를 한 사람이 있으면 정말 그 사람은 다시 태어나 새사람이 되기를 갈망한 사람이다.
노래 가사처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 우습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자발적? 실수를 했다. 남편이 죽기 전에 나는 그렇게라도 죽어서 다시 태어나 그동안의 무시와 무례를 사과하고 용서받고 싶었다. 남편도 나의 추한 비밀을 한 개 거머쥐고 나서는 실실 웃어주었고 조금은 소통이 되었다.
그러나 삶이 그리 순조로우면 인생이겠는가.
나는 다시 태어났지만 싸우고 반성하고, 또 싸우고 사과하고 반성하며 일상을 이어갔다. 가끔 자식들이 내려와 이 광경을 목격하곤 혀를 차며 말했다.
“두 분 다 힘이 넘치십니다요. 아무래도 싸우다가 진 사람이 먼저 죽겠는데요.”
도배까지 마친 그 집을 포기하고 투덕거리며 지내는 데 전화가 왔다. 우리 환경에 딱 맞춤인 곳을 찾아놨으니 빨리 내려오라는 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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