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우리들의 라임오렌지 나무
떠나는 날을 위한 여행
금지된 프로젝트 예행 연습

시드니 하이드파크, 뉴질랜드 테카포 호수, 그리고 서울의 아차산. 나와 직장 라이벌이었다가 절친이 되어버린 진과 비, 우리 셋이 의기투합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될 곳이다. 이름하여 〈밍기뉴 프로텍트〉이다.

그것을 실행하게 될 날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계획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장소를 확인해 두기로 했다. 그날은 언제라도 당장이 되어 닥쳐올 수 있으므로. 우리는 함께 돌아보는 답사 여행을 위해 날짜를 맞춰 5일씩 휴가를 받았다.

<밍기뉴 프로젝트>라는 이름은 브라질 작가, 조제 마우루지 바스콘셀로스의『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라는 소설에서 따왔다. 주인공 소년과 대화를 나누는 라임오렌지 나무의 이름이 밍기뉴이다.

소설 속 주인공 조제는 어린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밍기뉴와 함께였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될 때 함께하고 싶은 나무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쯤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고백하자면 우리가 도모하는 일은 금지된 일이다. '내가 죽거든 한강에 뿌려줘'라든지 '좋아하는 지리산 골짜기에 묻히고 싶어'라는 희망을 실현시키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다.

쓰레기 투기에 해당하는 불법이라지만 잘 따져보면 그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아니다. 사람의 뼛가루를 그것도 전부가 아닌 일부를 어떤 나무의 뿌리가 흡수하게 된다면 그것은 인 성분이 풍부한 비료를 주는 행위이지 해로운 일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쨌든 실행을 목표로 서로가 마음에 품은 밍기뉴들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모두가 서로에게 의뢰인이자 공동 실행자로서 일종의 서약식과 같은 답사 여행이 시작되었다.

시드니 하이드파크 /게티이미지뱅크
시드니 하이드파크 /게티이미지뱅크

시드니는 진의 고향이다. 세 살에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갔던 진은 조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며 서른이 되던 해에 서울지사 근무를 신청해서 한국으로 왔다. 호주 국적 한국인 진은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버리는 바람에 이제 서울에 살고 있다.

밍기뉴 답사 여행의 첫 번째 장소는 진의 고향, 시드니에 있는 하이드파크다. 시드니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타운홀 역까지는 기차로 20분 조금 넘게 걸린다. 모두 시드니에 와 본 경험이 있어 하이드파크는 익숙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리트, 컬리지 스트리트, 세인트 제임스 로드와 프린스 알버트, 리버풀 스트리트까지 시내 주요 도로를 끼고 직사각형에 가까운 공원이라 접근하기 쉽다. 시드니를 여행하다 보면 일부러 찾아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계속 들르게 되는 시내 여행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쉽지? 세인트 메리 성당을 등지고 앉아서 왼쪽을 보면 고목이 많아. 피크닉 하는 자리 주변에 서 있는 나무를 골라주면 되는 거야.”

“어떤 나무든 상관없다고?”

“상관없어. 하이드파크 공원 구석구석이 내가 앉아 책을 읽고, 점심을 먹고, 땀을 흘리며 달렸던 곳이야. 피크닉을 하는 너른 잔디밭을 둘러싼 나무 중에 하나면 오케이야.”

진은 힘들 때, 답답할 때, 걷고 싶을 때, 다니던 학교와 직장에서 가까운 하이드파크에 자주 들렀다. 언제나 행복한 사람들로 북적여서 좋다고 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오는 길에 사 온 미트파이를 먹었다. 열한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첫 끼니로 미트파이는 느끼하고 먹기 힘들었지만, 진이 여기서 주로 먹던 것이라기에 선택한 것이다.

시드니 하이드파크 /게티이미지뱅크
시드니 하이드파크 /게티이미지뱅크

“가까운 달링하버까지 걷고 내가 자주 가던 베트남 식당에 가서 쌀국수를 먹자. 서큘러 키에 가서 커피 마시고 공항으로 가면 대충 시간이 맞을 거야.”

시드니는 이민자의 도시다.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시드니에 유럽과 아시아 각국의 나라 문화가 섞여 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아름다운 항구도시로만 알던 시드니는 머물수록 크고 알아갈 것이 많은 매력 덩이다.

이번 여행은 휴가가 아니라 일종의 출장이므로 우리는 최대한 경제적인 여정을 선택했다. 뉴질랜드로 가기 위한 환승지, 시드니에서 15시간 머물고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테카포 호숫가 그 나무를 찾을 수 있을까? 비가 선택한 곳은 난이도가 높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240km 거리에 있는 호수까지는 대중교통이 없고 차로 이동해야 한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우리나라와 반대 방향인 오른쪽 드라이브이므로 운전은 진이 담당하기로 했다.

 

시드니에서 출발해 4시간 가까운 비행으로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 입술을 뗄 정도의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으로 방향을 말하고 간단한 손동작으로만 통하며 집을 떠난 지 40시간 만에 공항 근처 숙소에 도착했다.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일단 12시간쯤 자기로 했다. 비의 밍기뉴를 찾아가는 일은 그 다음이 될 것이다.

 

테카포 호수 /게티이미지뱅크
테카포 호수 /게티이미지뱅크

비가 테카포 호숫가 나무라고 했을 때 우리 중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던 것 같다. 은근히 조금은 접근이 쉬운 곳에 있는 나무로 선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압력을 넣어봤지만 비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차에서부터 그 나무가 보였어. 거대한 자석에 끌려가듯 거기로 갔지. 바람이 너무 심해서 옆 사람과 얘기를 나누기도 힘든 날이었는데···. 내가 하는 말을 너희가 믿을 수 있을까? 나 거기서 내 동생 목소리를 들었다.”

비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생을 눈앞에서 잃은 후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여행 중 우연히 들렀던 테카포 호수에서 비의 동생이 ‘난 여기 편히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어쩌겠나, 그랬다는데. 다른 곳을 골라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스테이트 하이웨이 1번과 79번을 타고 남서쪽 켄터베리까지 3시간가량 달렸다. 비어 있는 들판, 가끔씩 무심하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을 보며 우린 트램핑이라도 떠나온 사람들처럼 설레었다.

우리가 각자의 그날에 대해, 아무도 모를 순서에 대해 하나 마나 한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 우유에 잉크를 풀어 놓은 것 같은, 차라리 컴퓨터 합성 화면이라고 해야 믿을 법한, 비현실적인 빛깔의 호수가 나타났다. 에메랄드 빛 호수와 하늘을 나누는 새하얀 구름 띠를 뒤로하고 선 나무. 비의 말대로 두 번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오기는 어렵겠지만 단번에 알아볼 거야. 나무 아래 묻기에도 제일 쉬울 거라고 그랬잖아.”

테카포 호숫가 선한 목자의 교회 /게티이미지뱅크
테카포 호숫가 선한 목자의 교회 /게티이미지뱅크

나무 아래는 비의 말대로 뉴질랜드 수태로 가득한 풀밭이다. 테카포 호숫가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가 있다. 호수 주변을 걸어 ‘선한 목자의 교회’를 돌아보고 테카포 명물인 연어로 요리하는 식당에 들어가 늦은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죽고 나서 뼛가루를 묻을 나무를 확인하겠다고 정말 이 먼 땅을 돌고 있다니. 우린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야.”

세상을 버린 후 흙이 되어 함께할 나무가 있는 뉴질랜드 남섬의 테카포 호수,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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