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웃어주는 여자
그런 여자와 살아보고 싶다

남편은 암을 외면하고 살더니 안 죽고 살아졌다. '완전히 방치할 수만 있다면 죽음을 준비하기에는 암이 최고’라던 어느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전편에 이어)

 

남편은 술체질이 아닌 친정가족에게 술맛을 알려주고 떠났다. 술이 때론 돈독한 공동체를 이루어 주기도 한다. /사진=송미옥
남편은 술체질이 아닌 친정가족에게 술맛을 알려주고 떠났다. 술이 때론 돈독한 공동체를 이루어 주기도 한다. /사진=송미옥

남편이 술을 마시고 호기를 부리면 나는 형사처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댔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이사를 하면 이제부턴 너를 위해서라도 술을 끊고 건강을 챙겨보겠다며 내 손을 잡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했다. 그날은 정말 행복한 밤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소개해 준 빈 집은 어느 종교단체에서 지은 집이라 지하실도 있고 집설계도 아기자기하게 되어 있었다. 큰 가마솥도 걸려 있었다. 특히 주위엔 호두나무가 많았다.

농촌에서 수확하는 농산물 중 1t 트럭에 가득 실어 1억이 넘는 상품은 호두라고 했다. 가을이라 주렁주렁 달렸다. 다람쥐 청설모가 마중 나온 듯 눈앞에서 오르내렸다.  죽음에서 다시 삶의 희망이 보이고 이사 갈 집을 들락거리며 마당을 정리하고 방안 도배를 거의 끝마쳤다. 그런데···.

“아재는 어디서 왔어예? 우리 잘 지내 봅시데이.”

가장 가까운 앞집에 산다는 중년의 여인이 인사를 왔다. 그녀를 시작으로 한 집 한 집 독가촌으로 살고 있는 주민들이 구경 차 다녀가는데 손에는 모두 소주병이 들려있었다. 사람 사는 곳에 술 없는 동네는 없다더니 술은 만병통치약이자 꼭 있어야 할 비상식품이고 긴급약품이었다. 마당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도배해서 산뜻하게 변한 새집에 정착하려 하는데 며칠째 소주, 그것도 됫병만 들고 나타나는 이웃 여인을 보는 순간 나는 할말을 잃었다. 정작 남편의 눈동자는 반짝거리고 폼은 더 의젓해지는 것이다.

그때 그곳의 기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분은 화상을 입어 남편과 같은 병실에 입원한 계기로 인연이 맺어졌다. 훗날 우리의 시골 정착과 삶에 큰 도움을 주셨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을 축제를 하는데 구경 오라는 거다. 우리는 감사 인사를 하며 이러고저러고 해서 못 내려간다고 양해를 구했다. 갑자기 그가 도배를 중단하고 기다리란다. 그는 30분이 채 안 되어 비서를 동행하고 나타났다.

우리를 보자마자 이 집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마을사람 모두 술을 좋아하고 특히 앞집 여자가 중독 수준이라 함께 어울리면 대책이 없다는 거다. 집에 가서 기다리면 자신이 조용하고 수양하기 좋은 곳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남편이 나에게 고개를 도리질하며 눈을 껌벅거렸다. 적절하게 말해 돌려보내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동생을 나무라듯 완강하게 말하는 그분의 말에 남편은 허탈해하며 내려왔다.

집에 돌아온 며칠 후, 남편이 대화를 좀 하잔다. 나에게 대뜸 자신은 각오한 게 있으니 도장을 찍든 마음대로 하고 서울로 올라가라 했다. 자신의 신조인 '초지일관'에 맞게 남은 생 우왕좌왕 남의 눈치보며 안 살 거란다. 새집으로 혼자 가서 이유 불문 배실배실 웃어주는 앞집 사는 그녀와 술 한 잔 주거니 받거니 속풀이 하며 남은 시간을 자유롭게 살겠단다. 나는 형사같이 따라다니고 간섭해서 정이 안 간단다. 

그래서 며칠 전 손을 잡고 맹세한 금주 약속은 다시 전쟁 속으로 들어갔다. 다 옳은 말이다. 나는 술 한잔에 호탕하게 웃는 그가 멋있고 좋았는데 그 술이 병을 주었으니 술과 원수가 되었다. 그리고 죽음이 무서웠다.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많고 많지만 안동소주는 더욱더 유명하다. 세계주류품평회에서 2년 연속 대상을 받은 안동 맹개마을의 진맥소주창고에서 한 컷. 술 분야에서도 한류를 만들어 내고 있는 듯하다. /사진=송미옥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많고 많지만 안동소주는 더욱더 유명하다. 세계주류품평회에서 2년 연속 대상을 받은 안동 맹개마을의 진맥소주창고에서 한 컷. 술 분야에서도 한류를 만들어 내고 있는 듯하다. /사진=송미옥

“인생 별것 없어. 남은 시간 마음 맞는 이랑 쿵짝 맞추며 먹고 싶은 거 먹고, 사는 거 같이 살다 가겠다는데··· 보내줘. 술이 한 모금 들어가야 뇌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어. 한순간도 눈을 안 떼고 지킨다고? 이사람아 그게 감옥이고 지옥이지. 그러지 말고 자네가 술을 배워보는 건 어뗘?”

나의 하소연을 듣던 이웃 어르신이 내편이 아닌 남편 손을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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