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이웃의 자식들은 모두 잘되는 것 같은데
아들도 열심히 뛰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 아버지는 재산도 재물도 남겨주신 것 없지만 늘 든든한 그림자같이 마음속에 살아계신다. 당신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모두 모이게 하고 눈을 맞추며 덕담을 해주셨다.
나에게도 내 손을 남편에게 쥐여주며 힘들어도 서로 도우며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때 ‘임서방만 믿고 가네’라고 부담을 줘서 그런지 남편은 먼저 떠나서도 나를 보호하는 듯하다. 사남매 모두 배움도 크지 않고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지만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아버지의 애물은 늦은 나이에 본 막내아들이었다. 우리는 막내에겐 어떤 특별한 말씀이 있을 줄 알고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가장 짧고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넌 무엇이든 잘해낼 거라 믿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형제는 제사를 없앤 대신 가족모임을 자주 한다.
이번엔 막내동생의 집들이 행사가 있었다.
저 녀석이 무엇이 될꼬 걱정꺼리로 남아 애태우던 막내동생은 아버지가 떠난 후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더니 지금은 잘나가는 중년 사업가가 되었다. 그 도시에서 세금을 가장 잘 내어 감사패도 받고 이번엔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대형평수의 아파트는 방에서 방까지의 거리가 서울서 부산 가듯 멀다며 조카들은 줄지어 기차놀이를 하며 논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기쁘실까 생각하니 울컥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공부하기 싫다며 중학교도 겨우 졸업하고 밖으로 돌며 방황하는 막내를 무덤덤하게 바라보셨다. 속된말로 ‘밥은 챙겨먹고 다니라’는 영화의 한마디가 안부였다. 요즘시대에 고등교육을 못 받으면 사회생활이 어렵다며 우리가 오히려 닦달했다. 화끈하게 혼내며 꾸짖지 못하는 아버지가 가끔은 답답했다. 지나고 나니 스스로 걸어가게 기다려주신 아버지가 당당하고 옳았다.
우리는 밤을 새며 부모에게 혼나던 일 힘들었던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울고 웃었다. 성공인 놀이도 했다. 우리가 ‘그때 그날 그 사건 기억나지?'라고 하면 막내동생은 ‘기억도 없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너스레를 떨어 폭소가 터졌다. 아버지는 물질적 유산은 남겨놓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배우고 어떤 일이든 즐거이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재산으로 간직하고 산다.


삐리릭 소리에 폰을 보니 사진 한 장이 문자로 온다. 고 아무개 어르신의 자제가 높은 자리에 올라 출세했다는 동네 어귀에 걸린 축하 플래카드다. 요즘 가장 부러운 것이 이웃 자식들의 취업 성공과 결혼 소식이라며 자식이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지인의 넋두리가 사진에 이어서 온다.
나는 힘내라는 이모티콘과 함께 지인님도 ‘고 아무개’가 되면 아드님이 성공하여 동네사람들이 플래카드를 걸어줄 거니 기다리라고 너스레를 떨어 보냈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화려한 인생의 꽃이 피고 지고 또 피는 나이는 40대 이후 같다.
우리가 알지 못해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 중이다. 그날이 되면 ‘고 아무개 님의 몇째 아들 아무개··· 000에 합격하다. 이장 사장 장관 대통령이 되다’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일 날이 올 것이다. 내 막내동생을 보니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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