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1)
4년간 글 쓰고 대학 다니던 시절
늘 쫓기던 마감 시간의 힘든 기억
한참 쉬니 다시 펜을 들게 되다

길가에 핀 꽃도 이제 만개한 뒤 스러지며 여름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송미옥
길가에 핀 꽃도 이제 만개한 뒤 스러지며 여름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송미옥

화려한 봄날도 어느새 다 지나간다. 코로나 해제 소식에 감옥 아닌 감옥에서 해방된듯 보이는 모든 것이 더 사랑스럽다. 한겨울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식물들이 서로 자기 소개하듯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도 성초가 되고 열매가 맺히면 한해의 임무를 마감하고 미련없이 다음 봄을 위해 사라지니 허전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인간만 미련도 여한도 많다.

자연의 순리에도 마감이 필요하지만 일상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에도 마감은 꼭 필요하다. 부지런한 이웃 밭에 덮인 까만 비닐 멀칭이 햇살에 반짝이며 긴 고랑을 자랑하는데 어르신의 푸념이 아름다움을 방해한다.

“이 영감탱이, 오늘은 고추 고랑 꼭 끝낼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못살아 못 살아.”

“오늘 꼭 하란 법이 있남?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흠흠.”

일하다가 어질러놓고 이웃 밭 술판에 끼어든 노부부의 투덕거리는 억양이 붉은 노을빛같이 강하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거나 포기하거나 외면해도 누가 간섭할 사람 없는 자유로운 일상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노부부가 밭일을 하는 사이 한가롭게 쉬는 강아지. /사진=송미옥
노부부가 밭일을 하는 사이 한가롭게 쉬는 강아지. /사진=송미옥

규칙을 세워 달성해야 할 일 없는 느긋한 일상을 사는 두 어른의 삶이 때론 부럽다. 시간에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이지만 느긋하다 못해 나태에 가까워지면 무기력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아직은 누군가의 간섭이 있는 일상이 내 존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나이 같다.  세상이 점점 더 시끌시끌하다. 문제도 많고 답도 많아 조용할 날이 없다. 산다는 것은 더 잘 살기 위한 문제를 계속해서 만들 것이고 거기에 또 시간을 구속하며 현명한 해답을 마감 깃발에 매달아 재촉할 것이다.  절대로 돌아가기 싫은 시간이지만 가끔은  시간에 쫒기고 동동거리며  살던 젊은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마감.’

글을 쓰고 어딘가에 제출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겐 가장 중요한 단어이고 가장 싫어하는 단어란다. 나는 60세가 지나서야 누군가에게 존재가 인정되는 마감이 있는 일상을 살아봤다.  필진이 되어 글을 보내는 일과 함께 방송대를 다니며 많은 과제물을  마감시간에 맞추느라 긴장과 설렘, 보람을 느꼈다. 4년이란 시간을 마감이란 단어에 묶여 지내다가 학교도 졸업하고 글쓰기도 끝내니 목줄을 푼 강아지마냥 또 너무 좋았다.

다시 '마감’이 있는 글쓰기 시간을 선물 받았다. 새로이 글을 쓰려 하니 꼴찌로 따라 올라가는 고학년 학생같이 걱정도 되고 두렵다. 이번엔 산수에서 수학으로 과목이 바뀌듯,  허둥대면서도 직접 제목도 달고 사진도 넣으며 모든 것을 혼자 조작해야 한다.  늦은 나이에도 무엇이든 배우고 열심히 귀 동냥 눈 동냥 한 보람이 있다. 

걱정되어 친구에게 전화해 두렵다 하니 버럭 핀잔을 준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못 이겨내고 삶을 마감하는, 그런 마감이 두렵고 걱정되는 거지. 엄살 부리지 말고 두번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라"고 한다.

부담도 되지만 호기심 천국 같은 재미있는 일상을 여러분과 동행하기 위해 첫 인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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