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니 시로 PD『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아홉 번째 이야기
내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요식업계의 젊은 경영자들이 모이는 스터디 모임에서였다. 그곳에 이번 일을 기획한 오구니 씨가 참석했다. 15분 정도 진행된 그의 발표 내용을 요약하자면, “치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일하는 레스토랑을 열고 싶습니다. 하지만 장소도 없고 레스토랑을 운영할 노하우도 없어요. 도와주십시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꽤나 공감 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현시키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솔직한 느낌이었다. 아마 그곳에 있던 사람들 즉 요식업계 경영자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구니 씨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직후, 스윽 손 하나가 올라왔다. “장소가 있기는 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기무라 씨. 나중에 들었지만 ‘이 기획을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높다’고 느끼면서도, 오구니 씨의 열정과 패기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들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날 모인 경영자들이 속속 협력할 것을 약속해주었다. 아마 기무라 씨의 이 한마디가 없었다면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실현될 수 없었으리라. 실현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이 순식간에 역전되어, 실현 가능한 쪽으로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기적의 순간이었다.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면서 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가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꿈틀거렸다. 오구니 씨를 붙잡고, “꼭 연락주세요.” 거듭 다짐을 받으면서 명함을 건넸다.
훗날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사전 오픈을 알리는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제일 먼저 큰아들한테 말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고, 오픈한다는데 한번 가볼까? 메뉴가 틀리게 나오는 식당이라는데.”
사실 아들 녀석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요.” 선뜻 수락을 했다. “네가 주문한 요리가 안 나올지도 모른다니까? 그래도 괜찮아?” “틀린 메뉴가 나온다면서요, 그러니까 한번 가보려고요.”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분으로 나는 녀석의 말을 받아들였다.
스물한 살인 아들 녀석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 현재 지능적으로는 네다섯 살 아이 수준이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석 달을 있었다.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끝내 장애를 안게 된 것이다.
장애가 있기는 했지만 아이는 밝았다.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아이다.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처음 보는 사람들도 아이를 예뻐해 주었다. 외식도 좋아했다. 우리집은 아들만 셋인 5인 가족으로, 아내는 평일에 큰아이와 가족들을 챙기느라 고생이 많다. 그래서 휴일이면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 거의 외식을 나간다. 다만 첫째 아이가 너무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좋아하고 큰 소리도 내는 편이라서 난처할 때도 있다.
어릴 때는 그래도 “왜 그러니?”, “그래, 왜?”하고 웃으면서 받아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가 클수록 주변의 시선은 달라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른이니까.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갑자기 만지려고 달려든다거나, 처음 보는데도 인사를 하거나 하면 ‘뭐야, 이사람’하는 눈으로 흘깃거린다. 무서워서 도망치는 사람도 있다.
아이 스스로 자기에게 향하는 시선이 따가워졌다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사람을 만지려고 한다거나 심하다 싶을 만큼 들이대는 자신의 성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스무 살을 넘기고부터는 사람을 싫어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둘이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멈춰 서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자기를 추월해서 지나가자 그제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왜 그러니?” 지금껏 본 적 없는 모습에 놀라서 물어보았더니, “사람들이 싫어해서 먼저 지나가게 한 거예요.” 하고 대답했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해도 요즘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덕에 우리 가족은 기껏해야 집 근처 도시락집 메뉴 정도에만 빠삭할 뿐이다.
그런 아이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는 가고 싶다는 것이다. 메뉴를 틀릴지도 모른다. 그 말이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나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는 나와 집사람, 큰아들, 이렇게 셋이 갔다. 그곳에서 아이는 오랜만에 본래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고, 테이블로 식사를 내오는 할머니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도 한다. 인사를 하러 왔던 오구니 씨에게도, “아저씨, 안녕하세요! 여기 정말 멋진 가게네요” 하고 웃음을 보였다.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손님들에게도, “여기 좋은 식당이에요.” “아빠랑 엄마랑 또 오고 싶어요!”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들 녀석의 목소리 외에도, 레스토랑 여기저기서 “틀렸어요.” “어머, 하하하, 죄송해요.” “정말 맛있네요.” “틀리지 않고 잘 왔네요, 하하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웃음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우면서도 따뜻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눈살을 찌푸리며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꼬마 아이가 울면서 보채고 있었지만, 짜증을 내거나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아이를 받아들여 주었다. 큰아이에게뿐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았다. 우리는 전혀 무리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의 모습 그대로 함께 그 공간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더없이 기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도 외식을 하면서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던 것 같다.
큰아들이 쓸데없이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구석진 자리나 아예 방을 따로 얻는 등 항상 좌석에 신경을 써야 했다. 화장실을 가든 무엇을 하든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큰 소리로 떠들지 않도록,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긴장을 해야 했다. 분명히 우리 부부는 항상 긴장된 얼굴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는 나도 아내도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아이와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 한 가지 깜짝 놀란 건, 음식이 너무나 맛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세 사람은 메뉴 세 가지를 한 개씩 주문했기 때문에, 전부 맛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메뉴 하나 천 엔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급스럽고 맛이 훌륭했다.
주문을 틀리기는 하지만 맛은 틀리지 않는다. 스태프들 모두가 손님들에게 멋진 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실 이 일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인데.” 레스토랑을 둘러보며 아내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노력해 봐요.” “그래야지.”
사실 아내는 예전부터 큰아이처럼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맡아서 보살펴 줄 시설을 만들고 싶어했다. 나 역시도 언젠가는 그것을 실현하고 싶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내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자신이 그려온 꿈을 실제로 만났던 것 같다. “메뉴를 틀리는 요리점은 또 언제 가요?” 레스토랑에서 보낸 시간이 아이에게는 가장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곳에 다녀온 이후 몇 번이나 물어온다. 아이는 가게 이름을 ‘메뉴를 틀리는 요리점’이라고 기억한 것 같다.
“또 가고 싶어?” “가고 싶어요.” “그럼 거기서 일하고 싶어?” “일하고 싶어요!” 큰아이에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특별한 장소였던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외식을 싫어하는 것은 여전했다. 사람을 꺼리는 것도 변함없다. 한 가지 일이 모든 것을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까.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역시 그 존재 자체만으로 치매 환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일을 기획한 오구니 씨도, 꿈만 같은 일을 실현해낸 스태프들도, 거기까지 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실수를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장소가 있다.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그 지점에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데리고 가면 분명히 아들이 기뻐할만한 장소가 생겼다는 사실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찾게 되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또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 위 사연은 오구니 시로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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