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니 시로 PD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두 번째 이야기
치매 환자 아내와 남편의 피아노·첼로 하모니 연주
미카와 부부의 이야기
아내에게 청년성 치매의 징후가 나타난 것은 6년 전, 나보다 일곱 살 아래인 그녀는 당시 56세였다. 그날 내가 수학을 가르치던 학교의 동료 교사가 퇴직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해서 다같이 학교 식당에 모여 파티를 열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자택 홀에서 무려 서른네번이나 미니 콘서트를 열었던 경험 덕에, 사람 앞에 서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파티에서 연주할 <사랑의 인사>는 이미 완벽하게 숙지가 되었기에, 아무 문제없이 훌륭하게 쳐낼 수 있었다.
연주가 끝나갈 즈음, 우렁찬 박수와 함께 누군가 ‘앙코르’하고 외쳤다. 갑작스러웠지만, 우리 부부가 늘 연주했던 곡을 선택해 앙코르 제의에 화답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연주를 시작하자 아내가 자꾸만 틀린다.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눈치를 챘어야만 했다. 아내는 이미 악보를 읽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이 불행 앞에 아내는 이내 풀이 죽어버렸다.
늘 곁에 있던 딸아이도 엄마의 변화를 직감했던 모양이다. 이상하다고 여긴 아내가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라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아내가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은 그 후로 2년이 지나서였다. “알츠하이머예요. 2년 전이면 상당히 진행되었을 겁니다.” 의사의 통보를, 아내는 “뭐야, 그게!”라고 불퉁거리며 내게 전해주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어느 날, 청년성 치매 환자의 교류회인 ‘작은 여행 모임’ 멤버 한 분이 권유를 해왔다. "사모님처럼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 계시는 간병시설이 있거든요. 직원 모두 치매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서 아주 잘 대해 주실 거예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 시설은 집에서 자전거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고, 무엇보다 쭉 직진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곳이었다. 10시에서 14시까지 하는 일은 주로 청소와 정원에 물주기, 쓰레기 버리는 일 정도. 아내는 생각보다 일을 즐거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 사모님이 과호흡 증상을 일으켜서…….”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달려갔다. 아내의 상태는 진정되었지만 상당히 지쳐있다는 것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아내의 직장 매니저에게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이야기를 들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치매 환자들이 홀 서빙을 하는 겁니다. 실수를 하셔도 괜찮아요. 음식점 자체가 그런 콘셉트니까. 한번 해 보실래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내는 “해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되자 내심 겁이 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곳에 놓여 있는 한 대의 피아노를 보고 내 머릿속에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아까 보니까 식당에 피아노가 있던데, 거기서 연주 한번 해보지 않겠소?” 순간 아내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혹시 그래도 된다면, 나야 좋지요.”
시설 담당자에게 상담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이세요? 안 그래도 사실 미카와 선생님께 피아노 연주를 부탁드릴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는 서둘러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실행위원에게 연락을 했고, 너무도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아내의 피아노 연주가 결정되었다.
오픈 전날, 우리 부부는 한 번 더 레스토랑을 찾았다. 실제 무대에서 연습을 한번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첼로를 켜자,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왔다. 이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기대와 불안을 가슴에 안은 채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오픈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날, 아내는 아침 내내 몹시 긴장되어 있었다. “미카와 씨, 걱정 마세요. 오랜만에 피아노를 친다니까 긴장되세요? 틀려도 괜찮으니 아무 걱정 마세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모두가 격려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정작 그녀의 걱정은 딴 곳에 있었다. 홀 일을 보아야 한다는 자체에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손님이 주문한 요리를 맞게 들고 나와도, 한 걸음 내디면, ‘어디였더라?’ 이내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기 일쑤다.
그러는 사이, 첫 번째 연주를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곡은 <아베 마리아>. 왜냐하면 그 곡밖에 연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주 시작 전, 나는 인사말을 했다. “집사람은 4년 전에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피아노 전문가였던 그녀가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 겁니다. 하지만 워낙 피아노를 사랑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쳐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설프지만 천천히 연습해 왔습니다. 끝까지 연주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즐겁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연주를 시작했다. 시작은 순조로웠지만 역시 아내는 중간중간 틀렸다. 그러면 아내는 거기서부터 다시 연주를 시작하고, 나는 아내에 맞추어 첼로를 켠다. 우여곡절 끝에 연주를 마치고, 멍해 있는 아내와 눈빛을 나누는 순간, 우리 부부는 생각지 못한 박수 세례를 받았다. 그제야 관객들 쪽으로 눈을 돌리니 모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연주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내가 예전처럼 밝고 명랑해졌다는 사실 덕분이다. “조금 자신이 붙은 것 같아요.” 아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아내 인생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다른 치매 환자분들도 저마다의 계기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생에 걸쳐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주변 사람들이 찾아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일상도 그리고 그 사람을 지탱해주는 가족들의 일상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 위 사연은 오구니 시로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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