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니 시로 PD『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열 번째 이야기

 

“저기, 나오.” 여기가 치매 환자들이 일하는 레스토랑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지카는 놀라움과 감동을 감추지 못하더니, 순간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까 주문할 때 직원분한테 ‘주문한 요리가 안 나올 수도 있다면서요’하고 말해버렸어.”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서빙하시는 분은 “아니에요. 하하. 최대한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웃으며 받아넘겨 주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상처를 받으셨으면 어쩌지···.” “괜찮을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에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시스템이 있잖아. 그 덕분에 이 콘셉트를 아는 분도 모르는 분도 그리고 일하는 사람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렇구나. 정말 여기는 말 그대로 어느 누구나 올 수 있는 식당이네.”

내가 이 가게의 콘셉트를 지카에게 말하지 않고 데려온 것은 그녀가 이곳에서 순수하게 느낀 것, 생각한 것을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지금 4기 암을 앓고 있다. 오늘 나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나의 병과 치매라는 병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잃는다’는 것.

암을 앓게 되면서 외관적인 것,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여러 가지 선택,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등 여러 가지를 ‘잃는’ 경험을 했다. 치매 진단을 받은 분들 역시 기억을 잃고,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잃고 있으리라.

암에 걸렸으니까 포기해야 한다. 치매니까 마음을 접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따금, 악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 환자인 나는 오늘,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가장 친한 친구와 너무나 멋진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식사를 즐겼다. 물론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많은 것을 잃었다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과 사회와 이어져 있다. 이어져 있어서 좋다. 그 사실을 구체적인 형태로 명확하게 해준 것이 바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 이곳에 와있는 것이다.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 테이블 옆의 피아노 곁으로 한쌍의 부부가 걸어오셨다. 아내 되는 분이 피아노 옆에 앉았다. 자세히 보니 아까 음식을 서빙해 주셨던 분, 그러니까 치매 환자다. 남편 분은 피아노 옆 의자에 앉아서 첼로를 챙기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연주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부디 즐겁게 감상해주십시오.” 레스토랑에 <아베 마리아>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연주가 시작되자 아내분은 여러 번 틀리기도 하고 연주를 멈추기도 했다. 그러자 남편이 첼로를 세워두고 일어나 다가가더니 아내 손을 붙잡고 건반 위에 다시 올려준다. 그렇게 다시 연주가 시작된다. 그런 광경이 꽤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에 빠져들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오로지 그 부부의 연주에 몰입해 있다. 지카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했지만, 어느새 울고 있다.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독신 생활을 접고 집으로 들어가서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족과 함께 지낸다.

특히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은 아버지다. 힘이 없을 때는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무리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늘 한결같은 미소로 나를 지켜보아 주신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도 많지만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은 없었으리라. 눈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부부도 나와 똑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매일매일 두 분은 이렇게 연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고, 그것이 두 분의 일상인 것이다. 남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아내의 손을 바로잡아 주셨겠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길고 오래되었을까. 아내의 치매를 통해 다시 이루어진 커플. 잃는다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에 눈을 돌려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보이고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눈앞의 두 분이 그것을 나에게 증명해 보이며 따스하게 등 두드려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고 오구니 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오 씨, 이것 저 사모님께 전해주세요.” 그가 들고 온 것은 아까 내가 들고 왔던 기념품이다. 손님들의 박수 속에서 아내분에게 선물을 건네자 그녀는 수줍은 듯 웃으며 받아주셨다.

박수 몇 번으로는 전할 수 없는 오늘의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짧은 몇 마디지만 직접 전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때 아내분의 아름다운 얼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레스토랑을 나오는데 “나, 오늘 들은 <아베 마리아>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지카가 레스토랑 건물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가게 안은 여전히 분주하고 창문으로 손님들과 스태프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밖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서 있다. “나오, 오늘 여기 데려와 줘서 정말 고마워. 정말 멋진 레스토랑이었어.” “응, 나도 기분 좋아. 식사도 맛있고 연주도 정말 멋있었고.” “맞아…….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응? 뭔데?” “사실은 피자를 시킬까 햄버그스테이크를 시킬까, 너무 갈등이 되는 거야. 피자를 시켰는데 역시나 햄버그스테이크로 잘못 나왔더라고.

그런데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거든. 그럴 줄 알았으면 잘못 나왔을 때 ‘어?’라고 놀라지 말았어야 했어. 잘못 나왔다는 표현을 하면 안 되는 건데.” 그때 레스토랑 밖에서 손님 응대를 하고 있던 오구니 씨가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말을 하든 하지 않든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우리가 손님들에게 강요하거나 요구할 일은 없으니까요···. 그저 실수를 할지도 모르니까 이해만 해 주시길 바라는 거죠.”

우리는 다시 레스토랑을 바라보았다. “역시 최고의 레스토랑이네.”

※ 위 사연은 오구니 시로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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