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송국 오구니 시로 PD의 기획
치매환자 종업원으로 구성한 작은 식당
‘깜빡 잊어버렸지만, 틀렸지만, 뭐 어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종업원 할머니/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종업원 할머니/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어서 오세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일본 방송국 오구니 시로 PD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2017년 6월 3일과 4일 단 이틀, 도쿄 시내에 있는 좌석 수 열두 개의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서 시험적으로 오픈했다. 

메뉴는 단 세 종류. A 스페셜 당일 한정 피자 B. 햄버그스테이크 우삼겹 스튜 정식 C. 수제 새우 물만두 정식. 주문표에 주문받은 숫자만 적어 넣으면 OK인데, 할머니들이 그 주문표를 아예 손님들에게 건네고는 손님들이 직접 적게 하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테이블 번호도 한눈에 들어오도록, 번호가 적힌 팻말을 테이블 위에 얹어두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할머니들. PD의 눈앞을 지나 그녀들은 너무도 당당히 전혀 다른 테이블로 배달을 나간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엉터리 식당이지만 모두가 즐거워한다. 주문을 받고 있나 싶으면 옛날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삼매경에 빠진 할머니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손님. 틀린 메뉴가 나오면 본인들이 알아서 메뉴를 바꾸어 먹는 손님들. 불평을 토로한다거나 화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기저기서 소통의 목소리가 퍼지며 종업원들의 실수를 척척 해결해 가는 모습들로 가득한 이곳,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이 요상한 이름의 음식점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겨준 소중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꽃피워 낼 ‘새로운 이야기’를 지금부터 조금씩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요시코 씨의 이야기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영업시간은 11시부터 15시까지, 단 네 시간. 다른 레스토랑과 비교하면 짧은 편인데다 우리 간병 시설 직원들도 서포터로서 지원하고 있다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시코 씨는 규슈가 고향인 74세의 할머니. 고향에서 오랫동안 미용사를 했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본인 입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다. 게다가 솜씨와 센스를 익히기 위해 교토와 도쿄로 진출했을 만큼, 추진력 있고 자립적인 여성이었던 것 같다.

오픈 당일, 요시코 씨의 몸놀림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비스업 경험이 있는 만큼 언어 표현도 정중하고 손님 대응에도 품격이 넘치는, 아주 익숙한 몸놀림이었다. 물론 실수가 없을 수는 없었다.

테이블 번호를 착각하거나, 물을 두 번씩 가져다주는 일들이 자꾸 일어났다. 다만 요시코 씨에게 중요했던 것은 실수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으리라. ‘나는 아직 일할 수 있는데.’ 그런 요시코 씨의 의지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을 하면서 다시 채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실로 깜짝 놀랄 만한 변화도 있었다. 요시코 씨는 가끔씩 혼자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빌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혼자서 가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시설 직원이 함께했다. 하지만 정작 요시코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다. 물론 외출을 할 때는 늘 사전에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혼자서 마음대로 나가 버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을 하고 난 후의 어느 날, “잠깐만, 요시코 할머니 말이야. 지금 어디 외출하는 것 같은데?”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직원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외출 예정 있었나?” “아뇨, 없었어요!”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항상 외출을 하던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인 것도 마음에 걸린다. 

나머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서둘러 요시코 씨의 뒤를 쫓았다. 곧바로 뒤따라가 저만치 먼 거리에서 요시코 씨를 관찰하고 있자니, 그녀는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무엇을 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계속 지켜본 결과,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과자와 잡지였다. 카운터 앞에서 요시코 씨는 아주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고 그 안에서 돈을 꺼내 접시 위에 두었다. ‘어? 혹시 지난번 사례금?’ 봉투 안에 들어있는 돈이 자신이 오랜만에 일을 해서 번 대가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맛있는 과자와 읽을거리를 살 수 있다. 그 사실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해져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물건을 사는 요시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위 사연은 오구니 시로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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