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택의 실버행]
물리적 제한이 낳는 주거의 왜곡
시니어 주거, 자연과 멀어지다
높이 대신, 삶의 질을 고민할 때

자연녹지의 시니어레지던스에 적용된 4층 층고 제한은 건폐율·용적률 활용을 막아 사업성과 삶의 질을 모두 저해한다. 과거처럼 규제를 완화해 녹지·마당을 넓히고 쾌적한 노년 주거 환경을 되찾아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연녹지의 시니어레지던스에 적용된 4층 층고 제한은 건폐율·용적률 활용을 막아 사업성과 삶의 질을 모두 저해한다. 과거처럼 규제를 완화해 녹지·마당을 넓히고 쾌적한 노년 주거 환경을 되찾아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숲속 넓은 마당이 있는 집, 우리 모두의 꿈

우리는 부모님 세대가, 그리고 언젠가 우리 자신이 살아갈 노후의 집을 상상하곤 한다. 많은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진 쾌적한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아침이면 새소리를 들으며 산책하고, 오후에는 햇살 좋은 벤치에 앉아 이웃과 담소를 나누는, 넓은 마당과 숲이 있는 집.

하지만 이 소박하고 당연한 꿈이 지금 하나의 규제에 부딪혀 이상하게 뒤틀리고 있다. 도심을 벗어난 쾌적한 근교 또는 전원 지역에 시니어레지던스를 지으려 할 때 마주하는 ‘4층 이하’라는 층수 제한이 바로 그것이다.

근교나 전원에 있는 부지의 대부분은 자연녹지, 보전녹지, 생산녹지 그리고 계획관리지역, 보전관리지역, 생산관리지역에 해당하는데, 특히 자연녹지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언뜻 자연을 보호하려는 듯 보이는 이 규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르신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넓은 녹지 공간을 빼앗아 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과거엔 ‘노인복지주택’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왜 안 될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2020년 이전, 시니어레지던스와 같은 노인복지주택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병원이나 학교처럼 공익성이 큰 ‘도시계획시설’로 인정받았다. 당시 도시계획시설 규칙 제107조에 따라 임대 목적의 노인복지주택에 한해 층고 제한 규제 완화가 적용됐다. 덕분에 자연녹지지역의 엄격한 4층 층고 제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현명한 정책이었는지는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최고의 전원형 시니어레지던스들을 보면 명확해진다. 경기도 용인의 ‘삼성노블카운티’와 경기도 가평의 ‘청심빌리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두 곳은 드넓은 부지에 쾌적한 녹지 공간과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 수많은 어르신이 선망하는 대한민국 대표 시니어레지던스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여유로운 명품 단지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건물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층고를 유연하게 적용해 준 규제 완화가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명확한 설명 없이 좋은 정책이 사라졌다. 노인복지시설은 이제 도시계획시설 규칙 제107조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어, 다른 일반 건물처럼 ‘4층’이라는 획일적인 잣대에 꼼짝없이 묶이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법으로는 제2의 삼성노블카운티, 제2의 청심빌리지를 짓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성공적으로 검증된 길을 우리 스스로 막아버린 셈이다.

2020년 이전까지 시니어레지던스는 공익시설로 인정받아 층고 제한 완화 혜택을 받았지만, 이후 규정 변경으로 4층 제한에 묶이게 됐다. 이로 인해 삼성노블카운티·청심빌리지 같은 고품질 단지 조성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여성경제신문
2020년 이전까지 시니어레지던스는 공익시설로 인정받아 층고 제한 완화 혜택을 받았지만, 이후 규정 변경으로 4층 제한에 묶이게 됐다. 이로 인해 삼성노블카운티·청심빌리지 같은 고품질 단지 조성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여성경제신문

‘4층 규제’는 왜 손해일까?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 알려면 ‘건폐율’과 ‘용적률’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아주 쉽게 풀어보겠다.

건폐율 : 내 땅에 건물을 얼마나 넓게 펼쳐 지을 수 있는지를 정한 규칙이다 (1층 바닥면적의 크기).

용적률 : 건물 각 층의 면적을 모두 합쳐서 얼마나 높게 쌓아 올릴 수 있는지를 정한 규칙이다 (건물 전체의 총량).

대개 자연녹지의 경우 건폐율 20% (토지면적의 20% 안에서만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법규)와 용적률 100% (토지면적 대비 지상으로 지을 수 있는 건물 면적)가 적용된다.

자, 1만 평의 자연녹지 땅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법에 따르면 이곳의 건폐율은 20%, 용적률은 100%다.

이것은 땅의 20%인 2000평 넓이로 건물을 지을 수 있고(건폐율), 건물 전체의 총량은 땅 크기와 같은 1만 평까지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용적률).

만약 층수 제한이 없다면, 2000평 넓이로 5층 건물을 올려 허용된 1만 평(2000평 x 5층)을 알차게 다 쓸 수 있다. 하지만 ‘4층’으로 높이가 제한되면, 똑같이 2000평 넓이로 지어도 최대 8000평(2000평 x 4층)밖에 짓지 못한다. 법이 허락한 10000평 중 2000평은 아예 써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셈이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업성이 떨어져 시니어레지던스 건설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이덕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현행 4층 층고 제한은 사업자에게 허용된 용적률을 다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사업성 악화로 직결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양질의 시니어레지던스 공급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층고를 완화해 용적률을 모두 활용하게 해주는 것은 단순히 사업자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을 넘어, 도심 외곽의 저렴한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를 통해 사업자는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고, 소비자는 더 쾌적한 환경과 합리적인 가격의 시니어레지던스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모두에게 이로운(win-win) 정책적 전환입니다."

자연녹지의 4층 층고 제한은 건폐율·용적률 규제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해 사업성을 떨어뜨린다. 이에 따라 양질의 시니어레지던스 공급이 어려워지고,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여성경제신문
자연녹지의 4층 층고 제한은 건폐율·용적률 규제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해 사업성을 떨어뜨린다. 이에 따라 양질의 시니어레지던스 공급이 어려워지고,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여성경제신문

건물이 낮아질수록 마당도 좁아진다

전문가의 지적처럼, 이것은 단순히 사업자만의 손해가 아니다. 정작 그곳에 살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다시 1만 평의 땅으로 돌아가, 만약 층고 제한을 ‘10층’으로 풀어준다고 상상해보자.

이제 사업자는 허용된 1만 평을 채우기 위해 굳이 땅을 2000평이나 차지할 필요가 없다. 건폐율의 절반인 바닥 면적 1000평으로 줄여 10층으로 지으면, 똑같이 총량 1만 평을 확보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해답이 있다. 건물이 위로 날씬해지는 만큼, 땅에는 어마어마한 여유 공간이 생긴다. 4층 규제하에서는 8000평이던 마당이, 10층으로 완화하면 9000평으로 훨씬 넓어진다. 이 1000평의 차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는 배드민턴 또는 피클볼장 20개를 넣고도 남는 면적이다. 그곳에 산책로가 생기고, 작은 텃밭이 가꿔지며, 나무 그늘에 쉼터가 놓인다.

결국 ‘4층으로 낮게 지으라’는 규제는 건물을 ‘낮고 뚱뚱하게’ 만들어 소중한 마당과 숲을 없애버리고, ‘높게 짓도록 허용’하는 것은 건물을 ‘높고 날씬하게’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더 넓은 녹지와 건강한 환경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4층 제한은 건물을 넓게 지을 수밖에 없어 마당·녹지 공간을 줄인다. 반면 층고를 높이면 건물은 날씬해지고, 여유 부지는 넓어져 어르신에게 더 쾌적한 환경과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4층 제한은 건물을 넓게 지을 수밖에 없어 마당·녹지 공간을 줄인다. 반면 층고를 높이면 건물은 날씬해지고, 여유 부지는 넓어져 어르신에게 더 쾌적한 환경과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하늘을 열어, 땅의 여유를 선물하자

이제 우리는 이 규제의 역설을 바로잡아야 한다. 자연을 지키려는 좋은 의도의 규제가 오히려 어르신들의 발밑에서 푸른 숲과 넓은 마당을 빼앗아 가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비좁은 부지에 옴짝달싹 못 하는 획일적인 시설을 양산할 것인가, 아니면 검증된 성공 모델인 삼성노블카운티와 청심빌리지처럼 여유롭고 쾌적한 전원형 단지를 다시 지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인가.

자연녹지지역의 시니어레지던스에 대한 획일적인 4층 층고 제한을 완화하는 것은, 결코 특정 사업자를 위한 특혜가 아니다. 과거에 도시계획시설에 포함되어 층고 규제 완화가 적용되었던 도시계획시설 규칙 제107조를 부활시키는 것은 없었던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합리적인 제도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므로 규제 완화에 큰 장해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10층 이하로도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고 노인복지주택 특성을 살릴 수 있다. 오히려 건물을 위로 밀도 있게 올리는 대신 더 넓은 땅을 녹지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확보하여, 입주민의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현명한 토지 이용 계획이다.

정부도 이제는 노인 주거 복지 정책에 있어 정부의 예산을 할애해야 하고, 민간 업자의 배를 불린다는 시대착오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니어레지던스 산업을 경제 성장에 따른 시니어들의 다양한 주거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아울러 시니어가 부양의 대상이 아닌 적극적인 소비의 주체로서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발상과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갑갑한 ‘건물’이 아닌, 숨통 트이는 ‘환경’을 선물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작은 법규의 한 줄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건물의 높이를 바꾸는 것을 넘어, 노년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바꾸는 일이다. 건물의 하늘길을 열어주는 작은 변화가, 비로소 우리 발밑의 땅에 진정한 여유와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지혜다.

여성경제신문 문성택 유튜브'공빠TV'대표 mst2000@hanmail.net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문성택 공빠TV 대표는 한의사로 25년간 의료현장에서 진료하며 행복한 노후의 집을 연구하고 있다. <실버타운 올가이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집>, <행복 계약서>를 펴냈고,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고령자 주거, 실버타운, 요양시설 정보를 24만 구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정부·지자체·학회 등의 정책 자문과 강연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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