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택의 실버행]
고령자 주거, 선택 아닌 필수
민간 한계 넘으려면 국가 나서야
기금 운용, 이제 세대 균형으로

“부모님이 편하게 지낼 실버타운을 찾고 싶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요즘 40~50대 자녀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하소연이다. 식사, 의료, 돌봄이 한곳에서 해결되는 고령자 주택은 필요하다. 하지만 막상 시장을 들여다보면 선택지는 너무 적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다.
200세대 규모의 민간 실버타운을 짓는 데만 10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토지 매입비와 PF 대출 이자(연 6~8%)까지 더해진다. 아무리 뜻 있는 사업자라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사업자는 막대한 초기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보증금과 월 생활비를 높인다. 그 결과 서민과 중산층은 문턱조차 넘기 힘들다.
일본은 정부가 나섰다
일본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정부가 직접 해법을 냈다. 주택 1채당 건축비의 10%(최대 1000만원) 지원, 공용시설 건축비 최대 1억원 보조, 완공 후 5년간 재산세 감면, 취득세 대폭 경감, 그리고 일본주택금융지원기구(JHF)를 통한 사업비 전액 35년간 2%대 금리 융자.
이 ‘3종 세트’ 덕분에 일본은 10년 안에 고령자 주택 60만 호 공급 목표를 세웠다. 정책이 공급 속도를 끌어올린 것이다.

한국에도 ‘마중물’은 있다
한국에도 주택도시기금이라는 재원이 있다. 총자산 120조원. 법에 따라 주거 안정과 복지 향상을 위해 쓰인다. 하지만 실제 운용을 보면 80% 이상이 청년·신혼부부 전세·구입자금 대출에 집중돼 있다. 당장 활용 가능한 여유자금은 약 7조원이다.
국회 의결과 기금운용계획 변경이 필요하지만, 여유자금 내에서 ‘고령자 주거’ 항목을 신설하는 것은 가능하다.
1조원이면 충분하다
전체 기금의 0.8%인 1조원만 전용해도 5년간 10~12개 실버타운 건설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핵심이다. 이 금액으로 건설 가능한 규모가 어떻게 산출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단지당 평균 사업비 1000억원 중 70%인 700억원을 융자한다고 가정하면, 1조원으로 약 14개 단지 건설 지원이 가능하다. 단지당 250가구 규모라면 총 3500가구. 약 7000명의 고령자가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효과는 주거 안정에 그치지 않는다. 입주자 1인당 연 120만원 수준의 건강보험료 절감. 7000명 기준으로 연 84억원의 의료비 절감이 예상된다. 건설·운영 과정에서 2000개 이상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마중물 기금, 이렇게 쓰자
사업비 70~80%를 연 2% 이하 금리로 5년간 융자
취득세·재산세 감면
공공성 확보 방안: 순이익률 8% 제한과 함께, 입주 자격에 소득 및 자산 기준을 적용해 서민과 중산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다. 또한 보증금과 월 생활비에 상한선을 두고 공적 감사를 통해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건강·휴양·관광과 결합해 지역 상권과 일자리 활성화
시대 변화에 맞는 기금 운용
청년층 지원 축소 우려나 정치적 반발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연간 2000억원 규모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성과를 확인한 뒤 5년간 단계적으로 확대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이것은 청년 지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금의 활용도를 넓히는 것이다. 25년 경력의 한의사로서 부모 세대의 안정적인 주거와 복지가 결국 자녀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안다. 1조원 전용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건축비를 덜어주는 전략적 투자이다.
일본이 그랬듯, 정부가 결단한다면 품위 있고 안전한 실버타운이 전국 곳곳에 세워질 것이다. 이제 국회와 정부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주택도시기금 운용의 지도를 다시 그릴 때이다. 그 한 걸음이, 부모 세대와 미래 세대를 함께 살리는 길이다.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문성택 공빠TV 대표는 한의사로 25년간 의료현장에서 진료하며 행복한 노후의 집을 연구하고 있다. <실버타운 올가이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집>, <행복 계약서>를 펴냈고,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고령자 주거, 실버타운, 요양시설 정보를 24만 구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정부·지자체·학회 등의 정책 자문과 강연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문성택 유튜브'공빠TV'대표 mst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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