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택의 실버행]
중산층 위한 실버타운은 왜 없는가
일본 ‘사코주’ 벤치마킹 해법 가능성
정부 공간·자금·설계 혁신 키포인트

선진국은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로 정의된다. 이러한 다양성은 노후의 주거 형태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획일적인 아파트를 벗어나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선택지가 극도로 제한된 것이 현실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지만 이들을 위한 시니어주택 인프라는 처참할 정도로 부족하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식적인 노인복지주택과 유료양로시설을 전국에서 모두 합쳐도 100여 곳에 불과하며 100세대 이상 규모에 식당까지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30여 곳으로 추려진다. 이곳에 거주하는 시니어는 채 1만명도 되지 않아 전체 노인 인구의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반면 이웃 나라 일본은 2021년 기준으로 이미 2만30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시니어주택을 운영하며 각자의 경제력과 필요에 맞는 폭넓은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다행히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24년 8월부터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준비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의 구상은 고소득층은 민간 고급 실버타운, 저소득층은 고령자복지주택, 그리고 그 사이의 거대한 중산층은 '실버스테이'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눈으로 볼 때 이 대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깊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중산층을 겨냥한 '실버스테이'는 비용 측면에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는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95% 선으로 책정한다고 하지만 비교 대상으로 삼을 만한 기존 시설이 거의 없어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실제로 시범 사업인 '구리갈매역세권 실버스테이'의 경우 공모 지침에 제시된 전세환산가는 5억 4000만원에서 7억원에 육박한다. 현재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최고급 민간 실버타운과 비교해도 결코 저렴하다고 볼 수 없는 금액이다.
결국 정부의 '실버스테이'가 기존 민간 실버타운과 비슷한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비용만 소폭 낮추는 방식이라면 뚜렷한 경쟁력 없이 시장의 외면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의 현행 대책을 넘어 서민과 중산층이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가성비형 실버타운'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보증금 2억원 이하, 월 생활비 150만원 수준의 실버타운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정책적 설계와 의지에 따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모델이다.
해법의 열쇠, 현장에서 본 일본 '사코주' 모델
한국형 중산층 시니어주택의 현실적인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필자는 일본의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사코주)'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2011년 '고령자 거주 안정 확보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사코주를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일본 내 2만 3000여 곳의 시니어주택 중 약 7800여 곳이 사코주일 정도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사코주의 핵심 철학은 명확하다. 바로 '최소한의 시설과 서비스'로 입주자와 사업자의 부담을 동시에 덜어주는 것이다.

이 모델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필자가 2023년 10월 방문한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의 '솜포 케어 라빌레 레지던스'는 사코주의 특징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곳의 공용시설은 식당, 옥상정원, 다목적 회의실 단 3개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역시 입주자의 안부를 매일 확인하는 것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외 세탁, 개인 돌봄, 병원 동행 등 추가적인 서비스는 외부 전문업체에 연결해 주거나, 직원이 직접 제공할 경우 유료로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83개의 주거 공간에 134명이 거주하고 24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곳의 비용은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이다. 보증금은 약 144만원에서 307만원 수준이며 월 생활비는 월세와 기본 관리비를 포함해 약 223만원에서 386만원이다. 여기에 식사는 1끼당 약 5000원의 비용으로 먹은 만큼만 추가로 부담하는 철저한 실비 정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시설과 서비스가 부족해 보인다는 우려와 달리, 현장에서 확인한 입주민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시설장은 "입주민들은 필요한 핵심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받는 것에 만족하며 추가 서비스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비용을 내고 이용하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국내 일부 고급 실버타운 입주민들이 이용하지도 않는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등의 시설 관리비까지 떠안으며 불만을 표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결국 고령에 가장 절실한 '고독감 해소'와 '식사 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핵심 과제를 해결한다면, 비용을 최소화한 실속형 주택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일본 사코주의 성공 뒤에는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사코주 활성화를 위해 2011년부터 4년간 매년 300억 엔(약 3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신축 시 건축비의 10%를 보조하고 사업비의 100%까지 35년 초장기 고정금리로 융자해 주었다. 여기에 소득세, 법인세, 부동산 관련 세금까지 대폭 감면해 주며 민간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판을 깔아주었다. 이러한 전방위적 지원에 힘입어 사코주는 일본의 대표적인 중산층 시니어 주거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는 한국형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도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형 사코주', 이렇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사코주 모델을 한국 실정에 맞게 도입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정부의 선제적인 역할에 달려있다. 정부가 직접 세금을 투입해 짓는 방식이 아니라, 민간사업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실버타운을 공급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첫째, 토지 비용의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
실버타운의 높은 보증금과 월세의 주범은 바로 천정부지로 솟은 토지 비용이다. 정부가 신도시나 대규모 택지개발지구 내 유휴 공공용지를 '시니어주택 특별공급 부지'로 지정하고 민간사업자에게 30년 이상의 장기 저리 임대를 제공하는 파격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초기 토지 매입 비용을 없애, 입주자의 보증금을 2억원 이하로 낮출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둘째, 안정적인 저금리 건축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토지 문제가 해결되어도 높은 금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결국 입주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실버타운 건축 기금'을 신설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바로 실행할 방법으로는 '주택도시기금' 및 '관광진흥개발기금'을 활용해 연 1~2%대의 초저금리 융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안정적인 자금 조달은 사업의 안정성을 높이고, 절감된 금융 비용은 고스란히 입주자의 월 생활비 인하로 이어진다.
셋째, 비용은 낮추고 효용은 높이는 공간 설계를 도입한다.
이렇게 확보된 부지와 자금으로 150세대 내외의 실속형 통건물 모델을 짓는다. 건물의 각 층은 철저히 효율성과 공공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1층 (지역사회 개방형 공간) : 건물의 1층은 시니어주택이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된 '섬'이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전략적 공간으로 설계한다. 이곳은 입주민 전용 공간이 아닌, 지역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활기찬 상업 및 교류의 장으로 조성하면 좋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문 영양사가 관리하는 깔끔한 식당과 향긋한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를 만든다. 이곳의 식당은 입주민에게는 매일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하는 핵심적인 생활 편의 시설이 된다. 이를 통해 어르신 입주민들은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러 세대와 어울리며 사회적 관계를 이어가고, 건물 전체에 생동감이 넘치게 된다.

한쪽에는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원을 유치한다. 입주민들은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멀리 병원을 찾아가는 수고로움 없이 즉각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심리적 안정감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 의원 역시 지역 주민들을 진료하며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확보한다.
이러한 개방형 설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선순환 수익 구조'를 만든다는 점이다. 식당, 카페, 의원을 통해 발생하는 외부 수익은 건물의 공동 관리비와 운영비를 충당하는 데 직접적으로 사용된다. 이는 곧장 입주민 개개인이 부담해야 할 월 관리비를 낮추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1층은 단순한 로비를 넘어, 입주민의 식사와 건강을 책임지는 동시에 관리비 절감과 사회적 교류까지 촉진하는 커뮤니티 허브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2층 (원스톱 필수 케어 공간) : 건물의 2층 전체는 입주민들의 건강한 노년을 끝까지 책임지는 '필수 케어 시스템'의 심장부로 조성된다. 이곳에는 주간보호센터나 방문요양 서비스 지점 등 전문 재가복지시설을 의무적으로 입주시켜, 입주민들이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돌봄이 필요해지는 순간에도 살던 곳을 떠나지 않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한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 개념을 실현하는 핵심적인 장치다. 입주 초기에는 건강했던 입주민이라도 시간이 흘러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별도의 요양시설을 찾아 헤맬 필요 없이 바로 아래층에서 전문적인 돌봄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주택 내에서 돌봄 지원이나 병원 동행이 필요할 때는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하고 낮 동안 체계적인 건강 관리나 재활, 인지 프로그램이 필요할 경우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원스톱 케어' 환경이 구축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는 입주민과 시설 운영자 모두에게 이로운 '윈윈(Win-Win)' 구조를 만든다. 입주민은 익숙한 공간에서 친숙한 이웃, 그리고 검증된 돌봄 전문가의 케어를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어 자녀들과 본인 모두에게 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동시에 재가복지시설 운영자는 입주민이라는 안정적인 수요층을 확보하여 사업을 더욱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서비스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건물 전체로서는 필수적인 케어 기능까지 갖춘 '통합 라이프 케어 커뮤니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옥상 (커뮤니티 휴식 공간) : 건물의 옥상은 단순히 비워두는 공간이 아니라,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끌어내는 핵심적인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한다. 이곳에는 입주민들이 함께 가꿀 수 있는 작은 텃밭과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는 소담한 정원을 마련한다. 입주민들은 상추나 방울토마토 같은 작물을 직접 키우는 소소한 생산의 즐거움을 느끼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텃밭을 매개로 주민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진다. 서로 텃밭 가꾸는 법을 알려주거나 수확한 작물을 나누며 대화가 오가고, 햇볕 좋은 날에는 함께 차를 마시는 따뜻한 사교의 장소로 활용된다. 이처럼 옥상 텃밭은 고비용의 시설 투자 없이도 입주민들의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건물 전체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주거 공간 (안전과 핵심 기능에 집중) : 주거 공간은 불필요한 부대시설을 과감히 없애는 대신, 입주민의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을 보장하는 핵심 기능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순히 면적을 줄여 비용을 낮추는 차원을 넘어, 노년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한 결과다.
각 세대 내부는 문턱을 모두 없앤 '무단차 설계(Barrier-Free)'를 기본으로 하여 휠체어나 보행기 이용 시에도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낙상 사고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또한 화장실에는 미끄럼 방지 타일을 시공하고 변기와 샤워 공간 옆에는 안전 손잡이(그랩바)를 의무적으로 설치한다. 모든 문은 적은 힘으로도 쉽게 열 수 있는 레버식 손잡이를 적용하고, 스위치는 눈에 잘 띄는 높이에 배치하는 등 고령자 친화 설계가 곳곳에 반영된다.
안전망은 첨단 기술을 통해 더욱 촘촘하게 구축된다. 각 세대 침실과 화장실에는 비상벨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동작을 감지하는 비침습적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도입한다. 이 센서는 입주민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활동량을 감지하여 만약 일정 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으로 케어 센터나 관리실로 응급 신호를 보낸다. 이를 통해 쓰러짐이나 급성 질환 등 위급 상황에 24시간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하게 된다.
한편 각 층 복도에는 입주민들이 집 밖으로 잠시 나와 이웃과 담소를 나누거나 함께 TV를 볼 수 있는 아늑한 '소셜 라운지'가 마련한다. 이는 1층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손쉽게 이웃과 교류하며 고립감을 해소하고, 층별로 소규모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주거 공간의 가치는 화려함이 아닌, 이처럼 사고를 예방하는 물리적 설계와 위급 상황에 대비하는 첨단 기술, 그리고 일상적인 외로움을 막아주는 따뜻한 커뮤니티 공간의 결합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정책의 전환, 노후 주거의 새 지평을 열다
결론적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실버타운의 성패는 '비용 경쟁력'에 달려있다. 화려한 시설을 원하는 수요는 민간 고급 시장이 충분히 담당할 수 있다. 이제 공공의 역할은 민간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합리적 비용의 필수 서비스 주택' 시장의 문을 여는 것이다.
우선 수도권에 시범 사업으로 성공적인 모델을 하나라도 만들어 그 효과를 입증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 작은 정책적 전환이 1000만 노인 시대, 대한민국 노후 주거의 불안을 해소하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문성택 공빠TV 대표는 한의사로 25년간 의료현장에서 진료하며 행복한 노후의 집을 연구하고 있다. <실버타운 올가이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집>, <행복 계약서>를 펴냈고,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고령자 주거, 실버타운, 요양시설 정보를 24만 구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정부·지자체·학회 등의 정책 자문과 강연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