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외면한 간병 정책
장기요양보험 틀 무너뜨릴 수도

“간병비 부담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여야 대통령 후보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공약이다. 현재 개인 부담으로 돼 있는 간병비를 국민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포함해 가족의 간병비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얘기다. 얼핏 보면 초고령사회가 된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는 노인 간병비 부담을 덜어주려는 공약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한 꺼풀만 벗겨 보면 간병비 부담을 낮춰주려다 초고령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요양보호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공약이란 지적이 나온다.
요양보호사는 240시간의 교육 이수를 받고 시험을 치러야만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간병인은 국가자격증 제도가 필요 없다. 간병 인력의 상당수가 중국 교포인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병비를 건보 급여화하면 노인 돌봄의 주축인 요양원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이로 인해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이 요원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공공이 간병비 부담을 나눠 간병 파산의 걱정을 덜겠다”고 공언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부터 여야가 경쟁적으로 꺼낸 ‘간병비 급여화’ 카드.
얼핏 보면 국가가 노인의 돌봄을 책임지겠다는 '국민을 위한' 공약처럼 보인다. 한데 내면을 살펴보면 국가 돌봄 체계의 '원석'인 장기요양보험 제도 개편이 우선인 게 현실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후보 정책의 핵심은 '간병비를 건강보험 등 공공 재원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누가, 어떤 자격으로 수행하느냐다. 현재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대부분은 국가 자격도 없이 일하는 중국 교포들이다.
이들과 달리 장기요양보험 제도 내에서 활동하는 ‘요양보호사’는 국가가 정한 교육과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의 방향은 요양보호사가 아닌 간병인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2021년 고용노동부의 ‘가사 돌봄 시장 인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간병인 수는 27만명. 이 중 대다수가 중국 등 교포로 추정된다. 김정환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간병인의 90% 이상이 외국인 및 귀화인으로 대부분은 조선족 동포”라고 했다.
간병인 직군은 자격 요건도, 법적 규정도 없다. 환자 가족이 개인적으로 고용하며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와 달리 요양보호사는 240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국가자격이다. 요양시설이나 재가요양기관 등에서 활동하며 장기요양보험의 엄격한 관리 틀 안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여야 모두 ‘간병비 급여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요양보호사 육성 및 처우개선은 정책 의제에서 빠져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정치권의 방향 설정이 틀렸다고 입을 모은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간병인은 협회도 없고 교육도 받지 않은 집단”이라며 “처우가 열악한 요양보호사들이 큰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실제 여성경제신문이 2023년 100명의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균 월급은 약 220만원에 불과했다. 자격 보유자는 150만명에 달하지만, 활동 중인 요양보호사는 약 60만명. 돌봄 노동이 고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자 상당수가 현장을 떠난 것이다.
한 요양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지금처럼 무자격 간병인을 병원에서 쓰면서 동일한 노동을 하는 요양보호사에겐 낮은 임금을 지급한다면 필연적으로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며 “간병인 직종을 자격화하거나 간병 자체를 요양보호사 중심으로 통합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단순히 간병비 부담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보장에 포함한다면 돌봄의 질도, 인력의 지속가능성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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