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정서적 교류 활발한 실버타운
연애·친목 늘며 하나의 사회로 기능
이혼·퇴거 등 법적 갈등으로 번지기도

/게티이미지뱅크
자립적이고 활동적인 고령층이 모이는 실버타운에서는 입주민 간 정서적 교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신 입주자 간 교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나이에 다시 설렐 줄은 몰랐어요." 70대 후반, 홀로 실버타운에 입주한 이영숙 씨. 어느 날 옆집 남성과 가까워지며 청춘 이후 잊고 지냈던 감정이 다시 피어났다. 함께 운동하고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둘은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다.

실버타운이 노년기 '만남의 장'이 되고 있다. 주거 공간일 뿐만 아니라 연애·이혼·재혼 등 감정과 관계가 새로 형성되는 하나의 사회로 기능하고 있다.

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자립적이고 활동적인 고령층이 모이는 실버타운에서는 입주민 간 정서적 교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동호회, 문화 프로그램 등 일상적인 활동이 새로운 관계의 접점이 되고 있으며 독신 입주자 간 교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실버타운에 남편과 함께 입주한 70대 여성 A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A씨는 "남편이 다른 여성 입주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소외감을 느꼈다"며 "자상한 다른 남성과 가까워졌고 그분과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혼하면 실버타운에서 나와야 하냐", "자녀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현실적인 고민도 함께 전했다.

임수미 변호사(법무법인 신세계로)는 이날 방송에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70대 이상에서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이혼을 고민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여성 경제력도 커져 혼자 살아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전체 이혼 건수는 9만1151건으로 1년 전보다 1243건(1.4%) 줄었지만 결혼 기간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은 1만5128건으로 2.3% 증가했다. 10년 전인 2014년(1만319건)과 비교하면 46.6%나 급증한 수치다. 전체 이혼 중 30년 이상 부부의 비중은 16.6%로 2014년 대비 7.7%포인트 상승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30년 차 이상 부부의 황혼 이혼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황혼 이혼과 독립적 삶을 선택하는 노인이 늘면서 실버타운도 새로운 변화에 맞닥뜨리고 있다. 한 실버타운 운영사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시니어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고 있다"며 "예전처럼 끝까지 함께하는 부부보다 졸혼이나 별거 형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버타운 안에서 부부가 각자 방을 두고 생활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박동현 전 더클래식500 사장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시니어타운은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감정은 늘 생긴다"며 "누가 누구와 가까워졌다는 이야기가 돌고 시기나 질투가 얽힌 갈등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하이엔드 시니어타운의 경우 교수, 의사 등 직업 수준이 높은 편이며 교류가 활발하다. 주로 홀로 입주한 시니어 사이에 이성적 교류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버타운에서의 관계 변화가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임 변호사는 A씨 사연에 대해 "다른 남성과 함께 살고 싶어 이혼을 요구하면 유책 배우자가 될 수 있고 위자료 청구도 가능하다"며 "부부 동반 입주가 원칙인 실버타운이라면 다른 사람과 재혼 후 퇴거가 필요한지, 이혼 후에도 계약을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동현 사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이성적 교류는 대부분 해프닝처럼 지나간다. 심해지면 법적인 문제까지 갈 수 있겠지만 사적인 문제인 만큼 운영자가 개입하긴 어렵다"며 "부부로 입주했다가 재혼하는 경우에 대한 획일화된 시설 규정은 없다. 시설마다 사례별로 다르게 대응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정적인 교류나 개인적 관계를 이유로 퇴소 조치가 이뤄지진 않는다. 내부적으로 갖춰야 할 규율은 보편적인 룰로 정하기 마련"이라며 "예를 들어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반려동물 문제로 민원이 반복될 때처럼 공동생활에 해가 되는 경우에는 경고나 퇴소 조치가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