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눈빛부터 남다른 부부
그 부부와의 경기는
결코 이길 수 없었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24살이나 적은 어린 조카를 상대로 번번이 게임에 이기고야 마는 삼촌. 24살이나 많은 삼촌에게 꼭 한 번은 이기고야 말겠다는 어린 조카. 그 둘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은 채 “한 번만 더”를 외치던 조카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다시는 삼촌과 다이아몬드 게임 하지 않을래”를 선포하면서 끝났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제 성인이 된 그 조카는 50이 훌쩍 넘은 그 삼촌만(지금은 호칭이 작은아버지로 바뀜) 보면 어릴 적 기억이 남아 있는지 영어 끝말잇기, 우리나라 역사나 세계사를 들먹이며 낱말 퍼즐 등의 지적 게임으로 작은아버지를 이기고자 한다. 둘 다 승리욕이 엄청나게 강하다.

이 게임에서 어느 소년이 이겼을까? 패한 소년은 "한 번 더"를 외치지 않았을까? /언스플래쉬
이 게임에서 어느 소년이 이겼을까? 패한 소년은 "한 번 더"를 외치지 않았을까? /언스플래쉬

탁구장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발이 빨라 이쪽저쪽 공을 잘 보내는 사람이 있다. 준비 자세부터 남다르다. 라켓을 들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전투력이 느껴진다. 실점하면 얼굴에 주름살이 몇 개 잡힐 정도로 인상을 구긴다. 반대로 승점 하면, 파이팅이 아주 강하다. 그런 그에게 섣불리 단식 경기를 신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탁구장에 가면 우선 발목 돌리기, 손목 풀기, 어깨 돌리기 등으로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고 포핸드 스트로크로 워밍업을 한다. 20분 정도 하면 얼굴에 땀이 난다. 워밍업 후에 경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어느 날, 백폼(back form)이 아주 멋진 남자가 단식 게임을 청했다. 객관적으로 그분의 실력을 나와 비교해 보면 그가 나보다 몇 수 위다. 나는 져도 그만, 이기면 기적이라는 생각으로 그와 마주했다.

백(back) 쪽으로 오는 공은 롱핌플 러버(라켓 한쪽에는 평면 러버를, 다른 쪽에는 돌출 러버를 붙인 이질 러버를 말함)로 수비했다. 탁구 실력이 좋은 사람도 롱핌플 러버로 수비한 공을 접해보지 않았다면 방어가 쉽지 않다. 뜻밖에 내가 몇 점을 앞서게 되었다. 롱핌플 러버의 힘이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가 평정심을 잃더니, 내가 롱핌플 러버로 수비한 공이 살짝 떠서 넘어가자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 그가 공격한 공은 네트를 맞고 그의 테이블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나는 충분히 워밍업을 한 덕분이었을까? 포핸드 쪽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공을 방향만 맞추어 라켓을 대기만 했는데 평상시 테이블 밖으로 튕겨 나가던 공이 다 성공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시선이 서서히 우리 테이블로 옮겨지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승자가 되었다. 그날 컨디션과 감정컨트롤이 승부를 좌우한다는 것을 확인한 날이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날의 승리는 기적이라고 할 만했다. 그 후, 아주 오랫동안 그 남자는 나와 시합을 하지 않았다. 승리욕이 엄청난 사람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탁구를 잘하는 그 남자는 경기 초반에는 화사한 스마일 표정이었으나 점점 얼굴이 벌게진 화난 모습으로 바뀌었다. /픽사베이
탁구를 잘하는 그 남자는 경기 초반에는 화사한 스마일 표정이었으나 점점 얼굴이 벌게진 화난 모습으로 바뀌었다. /픽사베이

 30대 중반의 부부도 승리욕이 강하다. 테이블 앞에 서 있는 자세가 한 점도 내 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눈이 이글이글 타고 라켓을 쥔 손이 승리의 횃불을 든 것 같다. 실력도 좋다. 서브 넣는 방법이 국가대표 선수 못지않다. 득점하면 둘이 함께 하이 파이브를 하고 무슨 암호처럼 서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기(氣)에서 밀린다. 경기 상황을 매의 눈으로 체크한다. 빈틈이 없다. 테이블 가장자리 흰 선에 공이 맞았는지 그 아래를 맞추고 튕겨 나갔는지 정확하게 본다. 친선 경기에도 국제 경기처럼 서브 공을 높이 띄우라고 주문한다.

​탁구 서브 규칙은 손에서 16cm 이상 공을 던져 올려서 쳐야 한다. /사진=김정희​
​탁구 서브 규칙은 손에서 16cm 이상 공을 던져 올려서 쳐야 한다. /사진=김정희​

결국 졌다. 그 후로 나는 그 부부와 게임을 하지 않는다. 기(氣)가 모두 빠져나가 다른 사람과 게임 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친선 경기라 할지라도 패하면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 않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친선 경기에서는 때로 인간미가 느껴지는 고의적인 실수도 의도해 보면 어떨까? 살짝 주문해 본다.

여성경제신문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thebo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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