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상대방의 서브를 받아넘기지 못한 나
서브를 받아야 경기가 진행되는데···
(지난 회에서 이어짐)
긴장하고 받았던 서브가 라켓에 맞아 천장을 향해 솟구치더니 탁구대 밖으로 툭 떨어졌다. 동시에 내 시선도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작고 흰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 길로 내 눈도 굴러갔다. 공을 잡으러 뛰었다. 공이 멈췄다. 내 눈도 내 발도 멈췄다. 순간 공이 빨개졌다. 그렇게 보였다. 나의 부끄러움이 공에 투사된 것이리라.
이것으로 나는 초보자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서브를 받지 못해 순간 평정심을 잃었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그러면 살 수 있다고 누가 이런 소리를 했단 말인가! 이처럼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정신을 놓았다.
상대방은 다시 서브를 날렸고 나는 또 실점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간 나는 호랑이에게 아주 쉽게 잡아먹혔다. '억'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입 벌리고 눈만 휘둥그레 뜬 채로. 이래서 심리치료가 필요한가? 실점해도 바로 평상심을 찾아 '너 아주 잘했어'라며 상대방에게 엄지척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멘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머리는 띵하고 몸은 뻣뻣했다.

그러나, 승부를 가리는 경기라는 놈은 얼마나 대단한지 이런 나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는 이때라며 온몸으로 덤벼들지 않는가? 호랑이가 나를 향해 사나운 발톱을 곤두세우고 덤벼들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나는 중얼거리며 같은 팀 남자 선수를 돌아봤다.
늘 하나님의 은사로 살고 있다고 말하던 그. 작은 키에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그가 엷게 미소를 띠었다. 파트너의 미소를 보며 콩콩 뛰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손에 있는 흰 공을 내려다보았다. 서브를 넣어야 하는 순간, 공을 올리고 라켓으로 공 밑바닥을 깎았다. 다행히 공은 네트를 넘어갔고 상대편 여자 선수가 공을 받았다. 그리고 네트에 걸렸다.
상대편 여자 선수도 초보였다. 두 번째 서브도 성공이었다. 우리 팀의 응원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들리고 후끈거렸던 얼굴의 열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뭔가 가슴 밑바닥에서 작은 희망의 싹이 돋아나 자랄 것 같았다. 조금씩 조금씩···.
드디어 승부를 가르는 마지막 경기. 스코어는 10 대 9. 우리 팀이 1점만 더 따면 이기는 순간, 상대방 서브가 넘어오고 간신히 그 공이 상대편으로 넘어가고 다시 넘어온 공을 우리 팀 남자 선수가 받아쳤다. 공이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 경기를 보는 사람도 테이블을 마주하고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도 공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와~”하는 소리가 났다.
동그란 순백의 공이 탁구대를 향해 내려오더니 네트를 맞고 상대편 코트로 넘어가서 네트 바로 앞에 톡 떨어졌다. 심장이 쫄깃쫄깃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들어맞는 말일까? 이 공은 국가대표 선수도 받아치기 정말 어려운 공 아닌가? 마지막 세트는 우리에게 승리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하이 파이브로 기쁨을 대신했다.

다음 날, 탁구장에 들어서자 이미 경기 결과를 알고 있는 코치가 나를 불렀다. 제일 힘들었던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상대방의 서브 형태에 따라 어떻게 공을 받아야 하는지가 난제였음을 고백했다. 어제의 경기에 비추어보았을 때 그것이 제일 어려웠다.
서브를 잘 받는 신의 한 수 같은 것은 없는지 답답해하는 나에게 코치는 탁구 라켓 뒷면이 오돌톨한 롱핌플을 가져오셨다. 롱핌플은 상대방이 보내는 여러 가지 서브(커트 서브, 너클 서브, 우횡회전 서브, 좌회전 서브 등)를 받아넘기기 수월하다고 하셨다. 코치는 롱핌플 라켓을 건네주면서 서브를 받아보라고 했다.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내리면서 탁구대에 떨어지는 공에 갖다 대라는 말씀과 함께.

코치가 보내는 서브를 롱핌플로 받아보니 이것이야말로 매직이었다. 힘 빼고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일자로 내려 공을 맞히니 '핑' 소리와 함께 공이 상대편 코트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네트 가까이로. 너무 신났다. 코치는 여러 가지 서브를 보냈고 나는 공을 받아넘겼다. 팔짝팔짝 뛰고 싶었다. 이런 신통방통한 것이 있었다니!
나는 이 쉬운 것을 왜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코치는 백핸드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웃으셨다. 그러나 나는 이 매직 같은 롱핌플을 계속 사용하고 싶었다. 레슨이 끝나고, 거울 앞에 서서 라켓을 위아래로 내리는 행동을 수없이 반복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결국 코치는 나를 불러 롱핌플을 사용하자고 했다. "감사합니다." 소리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날부터 나는 롱핌플을 달고 열심히 수비하는 방법을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