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낀 일들은
고스톱, 신혼여행, 방학, 그리고 탁구 배우기
오늘의 탁구는 시합이라 긴장의 순간이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낍니까?

장면 장면이 너무 짜릿하게 전개되어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스릴 만점의 영화를 볼 때, 연인과 알콩달콩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낼 때, 우승을 겨루는 축구 경기를 볼 때···. 생뚱맞다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처음 고스톱을 접하게 되었을 때 시간이 엄청 빠르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STOP 할까? GO 할까?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되는 고스톱, 한때는 헤어졌던 가족이 모두 모이는 명절에 웃으며 즐기는 재미있는 오락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STOP 할까? GO 할까?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되는 고스톱, 한때는 헤어졌던 가족이 모두 모이는 명절에 웃으며 즐기는 재미있는 오락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90년대 초, 친구들과 함께 목포로 여행을 갔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완행열차, 비둘기호에 올랐는데 목포까지 6시간 넘게 걸린 것(오래전 일이라 정확하지 않음) 같습니다. 4명이 마주 보게 배치된 좌석에 앉아서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자면(그 당시 예약제 숙박은 흔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좋을까? 등등을 의논했습니다.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는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 3분의 1 정도는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누구네 아들이 이번에 장가를 가는데 색시 집안이 그렇게 짱짱하니 신랑이 기를 펼 수 있겠는가라는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열차 중간쯤에 앉은 술 취한 아저씨가 혀 꼬인 소리로 횡설수설하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타이르기도 했고, 젊은 엄마 등에 업혀있는 아이가 울면 낯선 아주머니가 우는 아이를 달래기도 하는,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자신이 하고픈 말을 타인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주고받던 시절, 아무도 시끄럽다고 눈살 찌푸리지 않던 그 시절에 우리도 소음의 한 귀퉁이에서 깔깔 웃으며 때로 동참하고, 때로 바깥 풍경을 보는 척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배고프면 삶은 달걀, 사이다, 계란 과자 등을 싣고 비좁은 통로를 지나가는 역무원 아저씨께 500원짜리 동전을 건네 간단하게 배고픔을 해결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먹거리를 처음 보는 사람과 서로 나누어 먹던 시절. 30년 전, 비둘기호 열차 안은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6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답니다.

​오래전, 서민들이 이용하던 비둘기호 열차 안은 보따리들이 많았고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흠뻑 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오래전, 서민들이 이용하던 비둘기호 열차 안은 보따리들이 많았고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흠뻑 났다. /게티이미지뱅크​

 

목포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재미있게 지내고 사흘 후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던 길에 고스톱을 처음 배우게(?) 되었습니다. 왜 고스톱을 하게 되었는지 그 연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석하게 된 아저씨가 가르쳐 준 고스톱이 어찌나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그 속담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6시간이 휘익 지나갔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때,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보다 더 이상 고스톱을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고스톱 외에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쉽다고 느낀 적은 많았습니다. 신혼여행 가서 마지막 밤을 보낼 때, 방학이 끝날 즈음, 그리고 탁구를 배울 때도 그러했습니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 탁구를 배울 때, 레슨 시간 20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시계를 쳐다보기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빨간 초침을 떼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땀이 나기 시작할 즈음이면 레슨 시간이 끝나버렸습니다. 가끔 "벌써 끝났어요?"라며 반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의 아쉬움을 눈치챘는지 코치는 때때로 20분이 경과해도 짐짓 모르는 척 더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포핸드 스트로크를 빨리 배웠습니다. 백핸드를 배울 즈음, 서울시교육감배 체육대회 탁구선수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제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죠. 다만 저는 탁구를 잘해서가 아니라 6명이 필요한 팀 구성을 갖추어야 했기에 선수로 선발되었습니다.

그 당시 탁구 경기에 출전하려면 남자복식 1팀, 여자복식 1팀, 남녀 혼합복식 1팀, 이렇게 총 6명이 팀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3팀 중 2팀이 이기면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었기에 실력 있는 사람 4명만 있으면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서울시교육감배 체육대회 본선에 진출하려면 1차 관문인 각 지역교육지원청 예선에서 3등 안에 들어야 했습니다. 우리 팀은 무난히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예선을 통과한 각 교육지원청 선수의 본선 경기가 모월 모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스포츠라는 것이 참 묘해서 A가 B를 이기고 B가 C를 이겼다고 해서 A가 C를 이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력이 월등히 차이 나지 않으면 그날의 컨디션이나 상대방의 실수 등에 의해서 성과가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변은 항상 존재하니까요.

탁구 경기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우리 팀은 3, 4위를 겨루는 단계까지 진출했습니다. 우리 팀의 여자 선수 1명, 남자 선수 3명의 실력이 좋았고 우리 팀을 리드하는 조 선생님의 탁월한 분석도 승리에 한몫했습니다. 3, 4위를 두고 가르는 두 팀의 실력은 비슷했습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전략을 짜느냐?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누가 남자복식, 여자복식, 남녀 혼합복식으로 나가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탁구 서브는 너무 다양하다. 처음 경기에 출전하는 나는 서브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픽사베이
탁구 서브는 너무 다양하다. 처음 경기에 출전하는 나는 서브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픽사베이

상대 팀이 어떻게 조를 구성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각 팀은 머리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결국 우리 팀은 남자복식 여자복식에 승부를 걸고 남녀 혼합복식은 지는 것으로 전략을 짰습니다. 제가 남녀 혼합복식 선수로 출전했습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상대방 남자 선수가 서브를 넣었고 그 공을 제가 받아넘겨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포핸드로 그 공을 받아 쳤는데 아뿔싸! 공이 천장을 향해 솟구쳤습니다.

(다음 회로 이어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