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때로는 이름보다 별명, 특징적인 말 습관이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있지요?
(지난 회에서 이어짐)
어떤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있으신가요? 그때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가수인 경우 그 사람이 부른 노래의 한 소절이나 노래 제목, 특이한 춤동작을 말하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고 이름을 말하는 경우가 있지요. 탤런트인 경우엔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 또는 최수종 부인,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수상 소감을 말한 배우라고 하면 누구인지 바로 알잖아요.

이런 경우도 있지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 쓴 사람?”
“나태주!”
“맞아, 나태주. 그 사람 이름이 왜 생각이 안 나냐? 나도 이제 다 됐다, 다 됐어. 옛날 그 총기(聰氣)는 쌈 싸 먹었나 보다”라며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맞히는 친구의 기억력과 그렇지 못한 나의 어리벙벙함에 머리를 한 대 콕 쥐어박으며 순간의 어색함을 포장하기도 하지요.
그럼, 유명인이 아닌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요? 예를 들면, 지금은 할머니가 된 친구와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까마득한 여고 시절의 같은 반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경우 그의 외모, 에피소드, 특기 등을 이야기하면 “맞아, 성경 구절 기막히게 외우던, 아버지가 목사인 그 애, 임영숙, 맞지?” 이런 식으로 친구 이름을 기억해 내기도 하죠. 작은 특별함이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라고 할까요?
탁구장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를테면 “열심히 청소하시는 분”, “손톱에 봉숭아 물들인 남자“, "경상도 사투리 쓰시는 분"하면 누군지 알지요. 별명도 어떤 특별함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별명이 'SORRY'라는 분을 소개할게요. 외국인이냐고요? 아니요, 순수한 단일민족의 혈통을 가진 우리나라 출신 남자 회원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모르지만 탁구장에서 'SORRY'라고 하면 누구나 그분을 떠올리지요.
그분은 자신이 친 공을 상대방이 받지 못할 때 “쏘리”라고 말합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한국어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죠. 그런데 이분은 꼭 영어로 말합니다. 발음도 “ㅆ”을 아주 힘주어서 "쏘리"리고 말합니다.
서브를 받아치기 쉽게 평이한 서브를 주면 안 되겠냐고 주문하면 “쏘리”. 스매싱 후, 상대방이 그 공을 못 받을 때도 “쏘리”라고 말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팔을 툭 치고 나서도 “쏘리”. 실수로 커피를 쏟았을 때도 "쏘리". sorry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사용하기에 그분은 SORRY가 되었답니다.

제일 연세가 많은 어르신은 막걸리로 통하지요. 당신이 원하는 지점에 정확하게 공을 보내면서 "여기, 여기"를 외치는 분인데 막걸리를 아주 좋아하신답니다. 탁구장에서 막걸리라는 세 글자만 말하면 누구를 말하는지 모두 알지요. "딸이 국가대표 탁구 선수잖아요"라고 말하면 누구인지 알고, 탁구대 앞에 딱 붙어 서서 기막히게 수비를 하시는 분, 등등 어떤 특징으로 인해 누구인지 알게 하는 회원이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회원들과 함께 특별히 재미있는 별칭을 가진 사람이 또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의 별칭은 "아이구 아버지"랍니다. 누구인지 궁금하시죠?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김정희입니다.
특이한 별칭이죠? "아이구! 엄마" "엄마야"가 아닌 "아이구! 아버지"라니···.
저는 실수하는 모든 경우에 "아이구! 아버지"라고 외칩니다. 처음에 그 소리를 들은 어떤 분은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게 되었는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뭔가 잘못하면 저도 모르게 아버지를 연상한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서브를 못 받아도 "아이구 아버지", 공이 너무 높이 떠서 천장에 닿을 때도 "아이구 아버지", 미끄러져서 넘어질 때도 "아이구 아버지"를 부릅니다. 탁구장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 길에서도 "아이구 아버지"를 외칩니다. 실수로 접시를 깨뜨렸을 때, 깜빡 잊고 계란을 사 오지 않았을 때, 심지어 소나기가 내린 날, 시골길에서 지렁이를 밟았을 때도 "아이구 아버지"를 찾지요.
그런 저를 보고 엄마는 쟤는 무슨 일만 있으면 아이구 아버지 한다면서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셨답니다. 어떤 여성은 "엄마야"라고 해야지 어떻게 아버지를 찾느냐면서 못마땅하게 말씀하기도 하셨죠. 저를 잘 아는 분은 제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 “아이구 아버지”라며 먼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럴 땐 한바탕 웃지요.
어느 날, 탁구 코치가 심각하게 경기장에서 아이구 아버지라고 말하면 퇴장이라고 엄포를 주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리를 낼 때마다 조금씩 탁구 실력이 좋아지니 “아이구 아버지”는 노래의 후렴처럼 되어버렸답니다. 지금도 아이구 아버지를 부르며 탁구를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