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반박 주진우 의원 주장, 법리 충돌
특별배임죄 개혁 취지 외면한 정치 프레임
법조·경제계 “논의 본질 가린 허구적 공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배임죄 폐지 추진 의지를 밝히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즉각 “이재명 구제법”이라는 공격이 쏟아졌다. 하지만 법조계와 경제계에서는 경영 환경 개선이라는 본래 논의가 정쟁에 휘말려 퇴색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김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영 판단이 과도한 형사책임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배임죄 폐지 또는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하다”며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9월 정기국회 중 배임죄 폐지 처리를 선언한 그는 “기업 현장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주주 보호 절차를 자본시장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이사회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식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한국에 도입하자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발언 직후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등은 “배임죄 폐지의 1호 수혜자는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몰아세우며 정치적 논란을 키웠다. 배임죄 개혁이라는 제도 논의가 ‘이재명 구제’라는 낙인으로 순식간에 덮인 것이다.
법조계는 이런 공방이 논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지적한다. 한 법학 교수는 “배임죄 성립 요건에서 ‘미필적 고의’와 ‘과실’의 구분이 모호해 판결이 뒤집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3300여 건에 달하는 대법원 판례가 누적됐음에도 일관된 정리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미필적 고의’란 결과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행위를 강행한 경우를 말한다. 문제는 판례가 이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다 보니 단순 과실에 불과한 경우에도 재판부 판단에 배임죄로 처벌받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경영 실패가 형사처벌로 직결되는 구조적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경제계의 문제의식도 크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배임죄 리스크는 기업 투자 위축과 경영위험 과장으로 이어진다”며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CEO가 형사처벌 가능성을 안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심각한 제약”이라고 말했다.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배임 개념을 민사 영역의 손해배상 책임에 맞춰 두고 있다. 기업 경영진의 판단이 잘못돼도 주주대표소송이나 민사 손해배상으로 귀결될 뿐 형사처벌은 사기·횡령 등 별도의 범죄가 명백히 입증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경영판단 자체가 형사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경우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한국은 형법상 일반 배임죄와 업무상 배임죄 조항이 모두 살아 있어 경영진이 실패 시 곧바로 형사 책임을 지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거꾸로 간다”는 불만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주진우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 구제용”이라고 몰아붙였지만, 법조계는 “논의의 핵심은 특별배임죄 폐지”라고 짚는다. 특별배임죄는 경영상 판단 실패까지 형사처벌로 끌어들이는 한국 특유의 조항으로 이를 손보자는 취지일 뿐 특정 개인의 사건 구제와는 구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특별배임죄 조항은 본래 경영진의 고의적 횡령·사익 추구를 제재하기 위한 장치인데 판례가 ‘미필적 고의’까지 확장 적용하다 보니 정상적인 경영판단까지 형사처벌로 연결되는 문제가 생겼다”며 “김병기 원내대표가 말한 개선 취지는 특정 정치인의 구제 논리와 무관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