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인 요양시설 운영자가 요양사 대변
기득권 세력 밥그릇 지키기에 요양사 외면
요양사 단체 사분오열로 대표 파견도 못해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한 요양원에서 수급자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걷고 있다. /김현우 기자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한 요양원에서 수급자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걷고 있다. /김현우 기자

"요령 피우지 마라"

키가 3m가 넘는 나무가 물에 잠겼다. 지난 7월 중국과 인근한 북한 압록강이 넘처흘렀다. 60여년만에 내린 폭우로 강물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조선중앙통신은 신의주와 의주 주민 5000여명이 고립됐다고 보도했다. 

이때다 싶었을까. 김정은은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마케팅에 나섰다. "간부들의 건달 사상과 요령주의가 정말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며 주민의 안전을 위해 만발을 가하라고 일침했다. 독재자의 탈을 쓴 지도자는 오늘도 선전에 성공했다.

한데 비슷한 광경이 한국 장기요양업계에서도 나온다. 요양보호사 김정숙 씨는 오늘도 버스에 올라탄다. 몇 년째 서울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하는 그녀에게 하루는 늘 비슷하게 흘러간다.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어르신을 돌보며 사명감을 느끼지만, 막상 자신의 처우 개선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돌린다. "우리가 뭘 바꿀 수 있겠어요." 

현재 장기요양위원회에서는 요양보호사의 처우를 논의하면서도 정작 당사자인 요양보호사는 배제됐다. 마치 요양보호사의 운명을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북한의 김정은 독재체제와 뭐가 다를까. 소위 '정책 결정권자'라는 이들은 마치 요양보호사의 대변자인 척하지만 실상은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는 꼴이다.

장기요양위원회와 같은 정책 결정 기구에서 요양보호사가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면 현장의 실질적인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구조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더 깊은 이해관계의 문제다. 현재 장기요양위원회와 같은 기구에는 정책 결정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기득권층은 정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정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요양보호사의 참여를 최소화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정책 결정 과정에 요양보호사가 들어오게 되면 현장의 목소리가 더 강하게 반영될 것이고 이는 기존의 정책 방향이나 우선순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기득권층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자신들의 입지나 영향력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요양보호사는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책의 수혜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책 결정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고령화 사회의 최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노동조합이나 협회를 통해 조직적으로 단결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요양보호사가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공청회와 같은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그들의 처우 개선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요양보호사가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이는 정책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협회와 같은 조직도 하나로 뭉쳐야 할 때다. 회장직에 눈이 멀어 잘난 체 할 때가 아니다. 정부는 "목소리 내고 싶으면 하나로 뭉쳐서 오라"면 그만이다. 현직 요양보호사 혹은 요양보호사 출신의 전문가를 뽑아 협회장으로 내세워야 한다. 이권 다툼에 눈 멀어 시간만 보내기 아깝다. 

요양보호사 스스로도 자부심을 높여야 한다. 그저 시어머니 모시던 경험으로 용돈 벌이하는 직업이 아니다. 더 이상 타인의 결정에만 의존하지 말고 요양보호사가 본인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요양보호사가 단결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는 요양보호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로 뭉칠 때다. 그들이 진정한 변화의 주체가 될 때 비로소 요양보호사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 요양보호사가 정책의 떡고물을 앉아서 받아먹는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주체로 나서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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