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시니어 입장가] (14)
내 능력이 남아있을 때 해야 할 일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생각하게 해

영화 <리빙: 어떤 인생 (Living)>은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12월 개봉한 영국 영화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 <이키루>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올리버 허머너스 감독 작품으로 빌 나이, 에이미 루 우드, 톰 버크, 알렉스 샤프 등이 출연했다.

영화 '리빙:어떤 인생' 포스터

나이가 꽤 든 윌리엄스는 서리에서 런던으로 출퇴근하는 런던시청 소속 공무원이다. 직책은 공공사업과(Department of Public Works)의 과장이다. 항상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다니며 본인이 원하던 런던 신사의 풍모를 갖추고 욕심 없이 살아가고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차를 타고 집과 직장을 오가며 기계처럼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 가는 중이다. 그런데 자신이 암에 걸려 6개월 정도밖에 더 못산다는 시한부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그 충격에 직장에도 안 나가고 거리를 헤매던 그에게 마거릿 해리스(에이미 루 우드)라는 같은 과의 홍일점 젊은 여직원이 알아보고 와서 말을 건다. 레스토랑인 라이언스 코너 하우스의 면접을 보고 나서 시청을 떠나려 하는데 상사의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추천서를 써주는 대신 같이 런던 최고급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한다. 그리고 영화관에도 같이 가고 술집에도 같이 간다. 해리스는 나이 차이가 많은데 혹시 윌리엄스가 자신을 여자로 보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이 소식이 동네사람에 의해 윌리엄스의 아들 부부에게도 전해지지만, 정작 서로 말을 못한다.

윌리엄스는 해리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도 찾아갔다가 퇴근 후 만나자고 청한다. 난생 처음으로 인생을 즐겨 보기로 결심한 그는 바닷가 휴양지에서 술과 노래에 취해 보기도 하고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 보기도 하며 남은 시간을 만끽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윌리엄스는 자신이 곧 죽게 될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해리스에게 밝힌다. 아들에게도 아직 얘기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해리스는 직장에서 윌리엄스의 별명이 ‘미스터 좀비’였다고 말해 준다. 좀비가 뭔지 잘 모른다고 하자 이집트 미라 같은데 살아 움직인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해 준다. 원래 공공사업과 사람들은 일을 해도 티도 안 나고 굳이 나서서 일을 커지게 만들면 안 된다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공무원들이다. 윌리엄스도 그런 부류였다.

그러던 그는 문득 사무실 책상에 먼지 쌓인 채 놓여 있던 청원서류 하나를 생각해 내고, 남아있는 나날을 보낼 생애 가장 찬란한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동네 한 구석 지저분하게 방치되어 있는 공터를 어린이 놀이터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간은 추진 의도도 없이 그냥 접수만 받아 둔 청원서류였다. 그런데, 젊은 해리스를 만나면서 젊은 사람의 살아 있는 생동감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수혜자가 어린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윌리엄스가 이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마찬가지로 다른 관련 부서들도 이런 일은 생색이 안 난다며 다른 부서에 알아 보라는 ‘접시돌리기’ 내지는 ‘깔아 뭉개기’로 처리하려 하자 윌리엄스는 결재가 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겠다며 버틴다. 마침내 그의 노력 덕분에 동네에 어린이 놀이터가 생기고 안전하고 활기 넘치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동네에 들린다.

'리빙:어떤 인생' 영화 포스터

윌리엄스는 추운 겨울 밤, 이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고향 스코틀랜드의 전통 노래를 읊조린다. 경찰이 이를 보고 제지하려다가 너무 행복해 하며 평안을 즐기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돌아선 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윌리엄스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동료들이 그의 마지막 행적을 칭찬하면서 우리도 앞으로 그렇게 적극적으로 살자며 결의하는 장면이 엔딩이다. 내 능력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시한부 생명이라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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