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지역 주민들이 선호하는 지역 대학 과정
다양한 평생학습이 주민 만족도를 높여

이번주는 중간고사 기간이다. 올해는 지방 전문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농업과 관련된 수업이라 준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야간 학부이고 학생들 대부분이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중년들이라서 주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실시간 수업이 아니라 강의 동영상을 미리 촬영하여 서버에 올려 놓으면 학생들이 동영상을 내려받아 수업하는 형태이다. 그리고 가끔은 대면 수업을 한다. 

수요일 늦은 저녁 중간고사 시험을 치렀다. 교실 안의 학생들은 1학년이다. 학생이 아닌 나는 감독하는 입장이라 1시간 내내 편안히 앉아 있었지만 학생들은 문제를 푸느라 끙끙댄다. 

귀농·귀촌인들이 지역 주민을 폭넓게 사귀고 싶으면 농업기술센터의 교육과정을 수강하는 것이 좋다. 1년 과정을 매주 모여 이수하다 보면 서로 너무나 친해진다. 비즈니스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진은 칼럼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귀농·귀촌인들이 지역 주민을 폭넓게 사귀고 싶으면 농업기술센터의 교육과정을 수강하는 것이 좋다. 1년 과정을 매주 모여 이수하다 보면 서로 너무나 친해진다. 비즈니스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진은 칼럼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시험 시간은 50분. 40분이 지나니 답안지를 다 쓴 사람이 한 명 나왔다. 그는 앞으로 나와 내게 답안지를 건네며 한마디 한다. 

“교수님. 글씨가 엉망이라 죄송합니다. ”

시험이 끝나고 나서 답안지를 걷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학생을 만났다. 
그가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은 글을 썼어요. 한 시간이나 말이에요.”

그들은 대부분 중년 이상이다.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러니 시험을 치르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나보다. 주관식으로 문제를 내고 오픈북으로 시험을 보라고 했음에도 답안지를 채우는 것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글씨가 엉망이라고 수줍어하신 분은 교장 선생님 출신이다. 지역에서 은퇴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오랜만에 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닌다. 시험 답안지를 쓰는 50분이 지난 10년 동안 썼던 글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는 분은 내 기억으로는 농업인이다. 수십 년간 농사만 짓던 사람이 육십이 다 되어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았으니 말이 된다. 문장을 써 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표정은 힘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모습이었다. 

지역에서 생업을 하면서 중년과 노년을 맞이한 사람이 굳이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 간다. 그들의 학력은 모두 고졸 이상이다. 대학을 마치거나 석사 학위를 가진 이도 있다. 경제적으로 크게 아쉬울 것도 없다. 농업 관련 학과이지만 그들의 직업은 공무원, 자영업자, 은행원, 농업인, 축산인, 주부 등 다양하다. 공통점이라면 같은 지역에 산다는 정도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들끼리 한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것도 즐겁게 말이다. 이게 평생교육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교육은 성인교육이라고도 표현한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 시기가 아니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도 공부를 한다. 직업과 직무와 관련된 공부를 하기도 하고, 그것과 상관없는 자기 관심사를 공부하고 연마한다. 방법은 다양하다. 학교를 가거나 학원을 가거나 문화센터를 가거나 개인 교습을 받기도 한다.

지역에서 생업을 하면서 중년과 노년을 맞이한 사람이 굳이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 간다. 공통점이라면 같은 지역에 산다는 정도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들끼리 한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것도 즐겁게 말이다. 이게 평생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칼럼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지역에서 생업을 하면서 중년과 노년을 맞이한 사람이 굳이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 간다. 공통점이라면 같은 지역에 산다는 정도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들끼리 한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것도 즐겁게 말이다. 이게 평생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칼럼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도시에서는 주민자치센터와 도서관, 복지관에서 많은 과정을 연다. 그리고 백화점들도 문화센터를 개최한다. 지역 농업인들에게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개최하는 교육과정이 큰 역할을 담당한다. 작물 재배 기술이나 농산물 유통, 농촌관광, 치유농업 등의 과정이 연중 진행된다.

귀농귀촌인들이 지역 주민을 폭넓게 사귀고 싶으면 농업기술센터의 교육과정을 수강하는 것이 좋다. 1년 과정을 매주 모여 이수하다 보면 서로 너무나 친해진다. 비즈니스에도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지방을 다닐 때 길가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유심히 본다. 그러면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지자체가 개설한 교육과정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보면 재미있는 과정들이 많다.

충북 영동을 가면 포도와 와인 특구답게 와인 아카데미를 연다. 와인양조반과 와인창업반을 나누어 과정을 진행한다. 경기도 여주시는 세종대왕의 도시답게 '세종 인문학 특강' 자연과학 편을 개최한다. 상당한 수준의 인문학 강좌가 펼쳐진다. 정읍시는 마을 이장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진 잘 찍는 법’ 강좌를 진행했다. 전국의 노인들을 위한 디지털 강좌는 과거의 정보화 교육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스마트폰 강좌로 이어지고 A.I 활용 교육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여름 강원도 강릉시는 남성들을 위한 왕초보 요리 강좌를 열었다. 굉장히 인기가 좋다. 그리고 경기 화성시는 요리연구가와 함께 ‘명품화성, 명품반찬 인기요리 강좌’를 운영하였다. 화성시 지역 농특산물 가공품을 활용해 만드는 맛있고 건강한 반찬 만들기이다. 강원도 횡성군은 배달 강좌를 진행한다. 배달 라이더 교육이 아니라 강좌를 배달한다는 것이다. 주민 7명 이상이 되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맞춤형 강의를 진행한다. 배달 강좌는 전국적으로 확산 중이다. 

지방 대학이 위기에 봉착하였다는 뉴스는 꽤 오래되었다. 지금 지방 대학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를 마친 젊은 신입생이 아닌 지역의 중장년 주민들이다. 평생 학습 차원에서 대학 학위과정을 수강하거나 평생교육원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지역의 산업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과정이 많지만 지역 산업이 쇠퇴하고 인력 유출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는 지역 주민들을 유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이미 고령화가 진행되고 젊은 계층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일찌감치 겪은 유럽은 대학 개방화 정책을 진행하였다. 나이나 학위에 상관없이 대학 과정을 주민들에게 오픈하여 무수한 성인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진은 칼럼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이미 고령화가 진행되고 젊은 계층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일찌감치 겪은 유럽은 대학 개방화 정책을 진행하였다. 나이나 학위에 상관없이 대학 과정을 주민들에게 오픈하여 무수한 성인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진은 칼럼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해외의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고령화가 진행되고 젊은 계층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일찌감치 겪은 유럽은 대학 개방화 정책을 진행하였다. 나이나 학위에 상관없이 대학 과정을 주민들에게 오픈하여 무수한 성인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저녁 시간을 즐길 인프라가 한국보다 더 열악한 미국의 중소 도시들. 저녁이면 성인들은 술집 대신에 대학교로 가서 예술·문화강좌를 수강한다. 그리고 수학여행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간다.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를 간혹 교포들에게 듣곤 한다.

한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청년들은 도시로 빠져나가고 농업인구의 50% 이상이 노인이라서 큰일이라는데, 정작 지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청년 정책이 중요하고 출산율 제고 방안이 중요한 건 안다. 그래도 현재 지역에 남아 있는 주민들이 만족해야 도시의 청년이든 중년이든 불러 모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시골 사람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그들의 지적 욕구는 도시 사람과 같다. 지적 수준과 지적 욕구는 개인차이지 지역 차가 아니다.

지역 대학을 개방하고 지자체와 협력하여 주민들의 다양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방안이 필요하다. 전국 어느 도시이든 성인 학습을 위한 교육장과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좋은 인프라를 갖춘 대학을 특히 야간에 개방한다면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이 환영할 일이다. 물론 그에 따른 지방 대학에 대한 지원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시험감독을 마치고 가방에 메고 KTX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기분이 묘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 기분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러움’이었다. 학생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인생을 이렇게 즐기고 있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다. 물론 그 부러움은 시샘이 아니라 동경이다. 나도 그렇게 인생을 즐겨야겠고 다짐하게 한다. 어려운 중간고사를 견뎌준 우리 학생들, 아니 '학생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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