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큰금계국, 최근 생태교란종으로 알려져 배척
소통 안 해 외래종 취급받는 귀촌인들과 비슷
6월이 되어 여름이 왔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봄은 사라진 존재이다. 봄이란 겨울에서 여름 사이에 어정쩡하게 뜨거웠다가 추웠다가 비를 뿌리는 기간이지 새싹이 움트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은 아니다. 우울하지만 밭에 심어진 작물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농장 들어가는 길옆 경사로에 핀 샛노란 꽃을 보고 있노라면 봄이 지나 여름이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벌써 모내기를 마쳐가는 농가에서는 안도의 웃음소리와 프라이팬에서 지져지는 부침개 냄새가 흘러나온다. 날이 더워지니 바쁜 만큼 행복해진다.

경사로에 핀 샛노란 꽃은 큰금계국이다. 국화과의 꽃인데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 색이 해바라기 같고 크기는 코스모스 같아 길가에 무리 지어 피어있으면 사람들이 좋아한다. 요즈음에는 큰금계국이 제법 눈에 띈다. 그런데 이 꽃이 외래종이란다. 게다가 2등급 유해식물이란다. 토종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으니 가급적 관리하는 것이 좋단다. 큰금계국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다가 졸지에 위험한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다. 비슷한 것이 핑크뮬리가 있다.
큰금계국과 핑크뮬리는 일부러 군청에서 공원 부지에 심어 꽃 축제까지 기획하고 있던 참이었다. 노란 큰금계국과 보라색 핑크뮬리의 화려한 색은 수천 평의 평야에 동시에 피어나면 꽤 장관이다. 이미 몇몇 지자체에서는 큰금계국을 심어 공원을 조성하였고 핑크뮬리 축제도 하였다. 회색 빌딩 속에서 갇혀 있던 도시 사람들은 꽃축제가 한참인 지금 나들이를 나와 꽃 구경을 하며 숨통을 트고 있다. 그런데 큰금계국이 외래종이라 경계해야 한다니 괜히 미안해진다.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라는 큰금계국이 언제 어디서 우리 땅으로 흘러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 여름이면 노란 꽃을 피워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생태 교란종이라니 큰금계국 입장에서는 억울하겠다. 이 노란 꽃이 생태 교란종으로 취급받는 이유는 하나이다. 왕성한 번식력 때문이다. 씨앗으로 번식하고 뿌리로도 번식한다. 생명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토종 식물들에게 악영향을 준다. 역시 이놈도 외국인이다. 왕성한 번식력이라니.

큰금계국의 처지가 어째 귀촌인의 모습과 닮았다. 모양새가 예쁘다고 반길 때는 언제고 토종 생태계를 흐린다고 뽑아야 한다니 말이다. 시골에 사람이 없으니 제발 와달라고 손짓할 때는 언제고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니 조심해달라는 핀잔 듣는 모습이 비슷하다.
보통 귀촌인들이 핀잔을 듣는 경우는 소통 문제가 있을 때이다. 농촌 사회는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이웃과 소통하는 열린 커뮤니티이다. 옆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젓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는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가까운 이웃집의 세간살이는 서로 훤하게 안다. 하물며 문이 며칠 동안 닫혀 있으면 기어코 문을 두들겨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국룰이다. 나도 모르게 어디 여행을 갔을 리 없는데 문이 며칠이나 잠겨 있다면 중대한 위급상황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귀촌인에 관한 연구를 보다 보면 귀촌인들은 절대 식량이 부족해서 굶는 경우가 없다는 재미있는 분석도 있다. 서로 소통하며 음식을 나누는 사회인지라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쳐 밥 먹기가 궁한 상황이지만 이웃에서 나누는 음식이 있어서 먹고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다는 내용이다. 소통과 나눔의 사회가 보여주는 은총이다.
그러나 소통과 나눔에 익숙하지 않은 폐쇄 커뮤니티에서 온 귀촌인들은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웃의 오지랖이 불편하고, 이웃의 손에 들린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담긴 접시는 반갑지만 나중에 뭐로 갚아야 할지 고민스럽다.
도시에서 이웃끼리 음식을 나눈다는 것. 이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나의 기억으로는 2002년 월드컵 경기가 마지막이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모두 모여 축구 응원을 하면서 각자 싸 온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캔맥주만큼은 실컷 먹었다. 공동 응원이 어려웠던 낮 경기에서는 우리 팀의 골이 들어가자 아파트 단지 내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자 옆집 사람이 웃으면서 치킨 봉지를 가져다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음식 나눔이 사라졌다. 이사를 하여서 새로 집에 들어가면 친구들이나 직장 사람들을 초대해서 대접하던 집들이가 사라졌다. 집들이도 사라진 마당에 이사를 왔다고 떡을 돌리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덕분에 동네 떡방앗간도 문을 닫았다.
서울에 사는 팔순의 어머니는 지금도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시는데 이제는 많이 만들지 못하겠다고 푸념하신다. 힘에 부쳐서 음식을 못 만드냐고 여쭈니 그렇지 않단다. 음식은 많이 만들어야 맛이 잘 나오는데 많이 만들어봐야 나누어줄 이웃이 없어서 못 만든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묵을 만들어 새로 이사 온 아래층에 먹어 보라고 준 적이 있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문을 여는 새로 이사 온 새댁의 눈초리가 매웠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나를 잡상인으로 보았나 보다. 먹을 것을 주면서도 뻘쭘했던 기억이 있다.
폐쇄 사회에서 낯선 이가 초인종을 누른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신축 아파트들은 1층 로비 밖에서부터 번호를 눌러 호출하고, 집주인의 확인이 있어야 공동 현관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사전에 허락되지 않은 이의 초인종은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의 호출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다가 항상 열린 농촌 사회로 왔을 때 이웃과 소통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임엔 틀림이 없다.
큰금계국은 악성 외래종으로 2등급 유해식물로 지정받았다. 1등급이면 당장 베어버리고 없애야 하지만 2등급이라서 그냥 놔두고 있단다. 큰금계국이 우리 생태계에 어떤 악영향을 줄 수 있냐는 것은 아직 연구된 바가 없다고 한다. 그냥 번식력이 좋아서 위험할 것으로 예상되니 없애야 한다는 취지이다. 생태계 보호라는 취지는 동감하지만 이제 와서 뽑아 버리려니 미안하다. 큰금계국과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큰금계국이 우리 땅에서 공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긴 하다. ‘먹을 수 있으면’ 된다. 여수의 유명한 돌산 갓김치의 갓은 일본에서 들여온 외래종이다. 돌산갓은 여수 돌산읍 우두리 세구지 마을에 60여 년 전 도입돼 재배하던 품종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여수 돌산도에 가면 갓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가들이 많은데 그들이 만든 갓김치 브로슈어에 그렇게 적혀 있다. 풀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같이 살아남으려면 쓸모가 있어야 한다. 이 논리를 사람에게까지 적용하려니 기분이 영 안 좋다.

큰금계국은 제 처지를 모르고 화려한 노란 색을 뽐내고 있다. 이제 여름이다. 그 노란 꽃에서 눈을 돌려 들과 산을 보자. 하얀 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올 것이다. 여름에는 거의 모든 꽃의 색이 하얗다. 그 이유는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봄에 피는 꽃은 번식을 위해서 곤충과 새를 유인하기 위해 화려한 색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봄꽃이 예쁘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려 애쓴다. 그러나 여름에는 식물의 수분을 위한 곤충과 새가 풍부하기 때문에 꽃의 색이 평범한 하얀 색이라도 무방하다.
항상 꽃을 볼 때마다 고민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경쟁이 심한 봄에 화려한 꽃으로 살 것인지 경쟁이 덜한 여름에 평범한 꽃으로 살 것인지.
아니다. 나는 차라리 볼품없는 하얀 꽃으로 살더라도 경쟁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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