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의당 이자스민 의원 인터뷰(上)]
'가정 파탄 정책' 고용허가제(EPS)
사업주 중심적 제도, 불체자 양성
10년 일해도 '정주 가능성' 안 쳐줘

"결혼 안 한 두 명의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는 누구 쪽에 등록될까요? 엄마? 아빠? 둘 다 아닙니다. 그럼 어디에 등록되느냐. 누구 쪽에도 등록되지 않습니다. 주민등록을 마치고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이 되는 순간 아이는 한 달 내로 본국에 보내야 하거든요. 고용허가제(EPS)로 오는 사람은 가족을 동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자스민 의원이 고용허가제를 '국제 가족 파탄 정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불법체류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합법적 절차로 일하러 온 남녀 사이에서 태어났더라도 고용허가제는 이 아이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다. 신생아 수를 늘려야 한다며 280조원을 태운 한국의 제도고 규칙이다.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은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외국인 유입을 늘려야겠다면 지금 당장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들부터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허아은 기자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은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외국인 유입을 늘려야겠다면 지금 당장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들부터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허아은 기자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외국인 유입을 늘려야겠다면 지금 당장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들부터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달 초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이자스민 의원은 이주민 정책과 이민청 설립에 관해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비례대표 의원직을 맡은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1998년 귀화 이후 누구보다 꾸준히 이민자와 다문화 가정에 관해 목소리를 내왔던 이 의원은 현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이 의원이 한 모든 말은 골자가 같았다.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일어납니다. 아이를 낳을 수도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은 외국인 노동자도 느낍니다. 일 쉽고 돈 더 많이 준다면 거기(그 사업장)로 가고 싶어요. 지금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노동력'으로만 취급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도 사람이에요' 하자는 게 아니에요. 지금 있는 사람들도 제대로 관리 안 되고 있는데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건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인구 구조 변화로 산업 현장의 일손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외국인 일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윤 정부 출범 이전 5만명대에 머물렀던 비전문취업비자(E-9) 발급량은 지난해 12만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16만5000명이 이 비자로 입국할 예정이다. 근무할 수 있는 업종도 늘어났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받고 비전문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중소 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과 9개의 서비스업 사업장이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 운용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필리핀, 몽골, 스리랑카, 베트남을 포함하는 17개 인력 송출국 국민 중 한국에 취업을 원하는 비전문 인력은 한국어 시험에 응시한 뒤 현지 송출기관에 취업 의사를 밝힌다. 송출기관은 해당 근로자에 대한 정보를 한국산업인력공단을 통해 공시한다. 한국의 사업주는 공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근로자를 선발한다. 선발된 근로자는 현지에서 기본 교육을 이수하고 송출기관은 해당 근로자에 대한 E-9 비자를 신청한다. 비자 발급이 완료되면 근로자는 지정된 날짜에 입국해 16시간의 취업 교육을 이수한 뒤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업장으로 배치된다.

이 의원은 고용허가제가 '고용주의 편의만 봐주는 제도'라고 말했다. 근로자는 자신이 일하게 될 사업장을 선택할 수 없고 계약 기간 내 업종 변경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업장 간 이동은 최초 3년간 3회 허용되지만 사업장이 휴·폐업하거나 근로자가 상해를 입어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하기 어려워졌을 때만 가능하다. 고용노동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폭행 등 인권침해, 임금 체불, 근로조건이 저하될 경우'에도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고 명시했지만 이는 사업장이 '외국인고용 허가의 취소 또는 고용 제한 조치를 당했을 때'만 해당한다. 물론 사업장을 옮긴 근로자에게는 기록이 남고 모든 고용주는 이를 열람할 수 있다.

이 의원은 고용주 중심의 정책이 결국은 불법체류자를 양성한다고 말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사람은 좋은 조건을 좇게 돼 있잖아요. 어차피 같은 일 하는 거면 굳이 욕하고 휴가 안 보내주는 사장님 밑에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직원 부족한 곳은 차고도 넘치니 그냥 도망쳐서 괜찮은 사업장 가는 거예요. 고용허가제는 이런 식으로 제도권 안에 있던 사람조차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본국에서 근로 계약을 체결한 뒤 E-9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연합뉴스
본국에서 근로 계약을 체결한 뒤 E-9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연합뉴스

현행 E-9 비자로 한국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기본 3년이고 1년 10개월을 추가 계약할 경우 4년 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영주권은 5년 이상 거주해야만 신청 가능하다. 계약이 만료된 뒤 다시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본국에서 6개월 이상 머무르다가 돌아와야 한다.

지난해 정부는 30개월(제조업 24개월) 이상 근속한 E-9 비자 체류 외국인에 대해 체류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늘리는 '장기근속 특례'를 신설했다. 문제는 4년 10개월 일한 사람이든 10년 일한 사람이든 정부는 이들을 '머무를 인구'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계약 만료 시 하루아침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기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10년간 한국에서 살면 적응이라는 걸 하잖아요. 본국 상황이 안 좋을 수도 있어요. 미얀마는 전쟁 때문에 난리인데 당장 돌아가고 싶을까요? 그 사람들에게 한국은 내가 알고 배웠던 사회입니다. 돌아가는 시스템을 파악하고 있지요. 어디서 누가 사람을 뽑고 있는지 알아요. 내가 남아서 먹고 살 방법은 있다, 그러면 선택지가 불법체류뿐인 겁니다."

이 의원은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업장 간 이동이 가능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근로자를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데 투입된 고용주의 비용은 1년 정도의 의무 계약 기간 내 지급되는 임금에서 공제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사업장 간 이동이 가능해지면 불법체류가 줄어들 뿐 아니라 사업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근로자 이탈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업장은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관리 기관이 개입하고 개선 권고를 내리기 쉬워진다.

정주 가능 E-7-4 취득 '하늘의 별 따기'
가르쳐 놓고 쫓아내는 '남 좋은 일' 중

법의 테두리 안에서 기간 제한 없이 한국에서 체류하려면 비자를 바꿔야 한다. E-9 비자와 가장 근접한 비자는 숙련 기능인력(E-7-4) 비자다. 일반 제조업체 및 건설업체의 숙련 기능공과 농림축산어업 숙련 기능인, 뿌리산업체 숙련 기능공 등 3개 직종이 이를 획득할 수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법무부가 시행하고 있는 'K-point E74'의 주요 내용 /법무부
지난해 9월부터 법무부가 시행하고 있는 'K-point E74'의 주요 내용 /법무부

지난해 9월부터 법무부는 2000명이었던 숙련 기능인력 연간 쿼터를 3만5000명까지 늘리기 위해 'K-point E74'를 시행하고 11개에 달하던 점수 항목을 3개로 간소화했다. 점수는 소득, 한국어 능력, 연령별로 측정 후 합산된다.

이전에 없던 조건이 생기기도 했다. E-7-4 비자 신청을 희망하는 사람은 1년 이상 근무 중인 기업으로부터 필수적으로 추천을 받아야 한다. 시행 전에는 E-7-4 비자 취득 이후 직장을 옮길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 E-7-4 비자를 취득한 근로자는 2년간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E-9에서 E-7-4로 가기가 너무 어려워요. 소득 조건도 타이트하지만 한국어 능력 시험 준비는, 외국인 근로자들 일하기에 바쁘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신청)하지 말라는 거거든요."

비자 전환에 실패한 근로자는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는 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찾는 나라는 많다. 숙련된 인력이기 때문이다. 산업인력공단은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용접이나 중장비 운전, 조정 등의 기술 교육도 무료로 해준다.

조선업계의 인력난은 최근 수주 풍년으로 심화하고 있다. 이에 현대미포조선·한화오션 등은 베트남 산업무역부(MOTI)와 인력 수급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숙련공 양성에 나섰다. 이 의원이 정주 대책 미비로 인한 '숙련공 누수'를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국내 조선업계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숙련된 외국인 용접공이 계속 머무를 수 있었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나았을지도 모른다. /연합뉴스
국내 조선업계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숙련된 외국인 용접공이 계속 머무를 수 있었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나았을지도 모른다. /연합뉴스

"제가 아는 많은 사람(외국인 근로자)이 한국에서 용접 배워서 뉴질랜드와 호주에 가서 살고 있어요. 한국은 지금 남 좋은 일 해주고 있는 겁니다. 기술 차근차근 알려주고 손에 익었을 때쯤 외국으로 그 사람들 다 보내주고 있는 셈이거든요. 4년 10개월 열심히 일했는데 '6개월 본국 가 있어라' 하면 '내가 앞으로도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든단 말입니다."

(下편에서는 고급 인력 유치와 이민청 설립 등 제도 마련 및 개편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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