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KDI 노동시장 세미나 개최
간병 인력 부족으로 GDP 3.6% 손해
女, 소득 1/3 수준이면 도우미 채용해
저비용 공급 집중, "韓 안 올 듯" 우려도

간병·육아 등 돌봄 서비스의 인력난과 비용 부담으로 인해 국가적 경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임금 차등 지급을 바탕으로 하는 외국인 노동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으로 개최한 2024 노동시장 세미나 '노동시장 구조 변화와 대응 방안'의 세션1은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을 주제로 진행됐다.
세션1 발표자로 나선 채민석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 과장은 인력난을 겪는 돌봄 서비스 부문에 노동 공급을 늘리기 위해 외국인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돌봄 서비스는 간병과 육아, 가사 등을 포함한다.
채 과장은 "급격한 고령화와 핵가족화로 노인과 유아를 돌볼 인력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지만 이를 충족시킬 만한 공급은 이뤄지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봤다. 지난 2022년 기준 돌봄서비스 노동 공급은 19만명 부족했지만 돌봄 서비스직 공급 시스템을 지금처럼 유지한다면 2032년에는 71만명, 2042년에는 155만명의 인력이 부족해진다. 전체 수요의 30%밖에 충족하지 못하는 규모다. 채 과장은 임금을 올려준다고 해도 인력 부족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돌봄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큰 비용이 든다는 점도 현행 돌봄 서비스 시스템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간병 서비스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일평균 간병비 12만2000원을 토대로 추계할 시 월평균 370만원이 간병비로 지출된다. 370만원은 65세 이상 고령가구 중위소득인 224만원의 1.7배에 달하는 액수다. 이를 자녀 세대가 지불한다 해도 부담은 여전하다. 40~50대로 구성된 가구의 중위소득 평균은 588만원으로 간병인 고용 시 60% 이상의 지출이 이곳에 쓰이게 된다.
육아·가사도우미 고용 시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도우미를 고용하는 데 드는 월평균 비용은 264만원(10시간씩 주 5일 근무 기준)인데 이는 자녀를 키우고 있는 30대 가구 중위소득(509만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액수다. 돌봄 인력을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인력난으로 인해 점차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부담은 피돌봄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재가(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는 데 큰돈이 들어가니 보호자는 피돌봄자의 시설 입소를 추진하지만 간병인·요양보호사 등의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것은 시설 역시 마찬가지라 시설에서도 양질의 돌봄을 받을 거라 기대하기가 어렵다. 시설조차 못 들어가는 환자와 노인을 돌보는 일은 결국 개별 가구에 맡겨지고 이는 가족 구성원의 근로 시간 단축을 유발한다. 채 과장은 가족 간병으로 인한 경제활동 제약이 국가적 경제 손실을 낳는다고 봤다.
2022년 가족 중 환자를 직접 돌보는 '가족 간병인'은 89만명이었다. 당해 고용률(55%)과 평균임금 연봉(3941만원)을 토대로 추산한 결과 가족 간병은 19조원의 국가적 노동 손실 비용을 발생시켰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0.9%에 달하는 액수다.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치더라도 노동 손실 비용은 11조원에 육박했다. GDP의 0.5%를 차지하는 액수다.

육아·가사도우미 고용의 어려움은 젊은 여성의 퇴직 및 경력 단절을 야기한다. 채 과장은 "맞벌이 부부가 너무 높은 육아 비용 부담을 대면했을 때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사람은 일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25~29세 여성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을 상회하지만 35~39세 여성 고용률은 OECD 평균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었다.
여성 취업자의 월 소득이 육아·가사 도우미를 고용할 때 드는 비용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럴 바엔' 직장을 그만두고 직접 가사와 육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육아·가사도우미 평균 고용 비용은 264만원이었는데 이보다 적게 버는 여성 취업자는 전체의 50% 이상이었다. 평균보다 20% 비싼 가격에 도우미를 고용한다고 치면 여기 드는 금액보다 큰돈을 버는 여성 취업자는 약 20%뿐이었다.
채 과장은 돌봄 서비스 인력난과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국내 노동자만으로는 최대 155만명의 공급 부족을 해결할 수 없으며 로봇 및 정보통신기술(ICT)이 돌봄 서비스를 대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월급의 30~40% 돈이면 도우미 쓴다"
홍콩 내 외국 도우미, 적은 임금에 만족
外 인력은 가격 공세, 內 인력은 '고급화'
투입되는 외국인 돌봄 서비스 인력의 임금 수준은 내국인의 임금 수준보다 충분히 낮아야 효과를 발휘한다. 채 과장의 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는 홍콩 외국인 가사 노동자의 상대임금이 30~40% 이하로 떨어진 1990년대부터 외국인 도우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음을 지적했다.
홍콩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최저임금이 내국인 여성의 평균 임금 대비 50% 선이던 1990년 0~5세 자녀를 둔 내국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30% 중반에 머물렀지만 2000년대 임금 비율이 10%대 중반으로 접어들자 홍콩 내국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50% 중반까지 올랐다.
내국인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더라도 외국인 도우미의 업무 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의 50% 이상이 업무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내·외국인 간 임금 차별이 인력 유치의 어려움과 서비스 질 저하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권정현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은 후발주자로서 이주 돌봄 노동자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서는 적어도 1등 국가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인 근로 조건, 임금 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의 국가는 이미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주요 공급 국가로부터 돌봄 인력을 들여오고 있다. 한국이 이 나라들과 비슷하거나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돌봄 인력을 공급받기는 어려우리라는 추측이다.
외국인 돌봄 인력이 내국인 인력과 같은 일을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적은 임금을 받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면 그들에게 양질의 돌봄 서비스 제공을 기대할 수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권 연구위원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런 관점에서만 접근하게 되면 서비스 질적 수준 유지에 어려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금 차별화는 현재 돌봄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는 내국인의 실업을 야기할 수도 있기에 신중해야 하는 문제다. 이에 관해 김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언어 등의 부분에서 비교적 어드밴티지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근로 계약 형태를 달리하는 것도 내국인 보호에 효과적이다. 홍콩의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전일제로만 계약할 수 있게끔 규정했다. 내국인 가사도우미는 시간제 근로자로 일하면서 외국인 도우미보다 높은 수입을 얻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임금 차별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총재는 "돌봄 서비스의 질을 어떻게 확보할 거냐, 부작용을 어떻게 막을 거냐, (돌봄 서비스직 종사자) 내국인은 어떻게 보호할 거냐, 다 맞는 지적이라고 보지만 이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라며 "그런 부작용들이 있을 수 있지만 다양한 서비스 퀄리티가 있고 그것을 (각각) 다른 가격에 지급(공급)할 수 있는 옵션을 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는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의 모두 연설과 2개 세션으로 진행됐다. 서 위원의 모두 연설은 '노동시장 구조 변화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했다. 세션2에서는 김지연 KDI 경제전망실 부연구위원이 '인구구조 변화와 중장년층 인력 활용'이라는 주제로, 한요셉 KDI 노동시장연구팀 팀장이 '인공지능 기술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진 토론에는 고영선 KDI 연구부원장이 사회를 맡았고 박윤수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오삼일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 팀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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