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옛날얘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요
전설 따라 삼천리, 옛날 도시의 폐사지
가야,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옳다

'옛날얘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 왜 옛날 할머니들은 그런 말을 했을까?

TV도 오락도 없던 시절 옛날이야기의 화자는 할머니였다. 손자 손녀들이 이야기를 졸라대는 것이 성가셔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옛날얘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근거는 오리무중이다. 나는 옛날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남원이 더 마음에 들었을까? 남원에는 구석구석 옛날이야기, 그것도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소복하다

금오신화는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인인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단편 소설집이다. 다섯 편 가운데 [만복사저포기] 의 배경은 남원이다. 노총각 양생이 죽은 처녀의 혼령과 사랑을 나누었지만 죽은 처녀의 혼령임을 깨닫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소식을 끊었다니 어딘가 으스스하지만 더없이 애절한 사연이 아니던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절이었다는 만복사는 하필 정유재란 때 모두 불에 타버렸다. 석조물 이외에는 흔적만 남기고 모두 사라진 폐사지다.

금오신화의 배경이 된 남원의 만복사 /사진=박재희
금오신화의 배경이 된 남원의 만복사 /사진=박재희

머리 부문을 제외하고 수백 년 동안 모두 땅에 묻혀 있다가 겨우 모습을 드러낸 석인상, 고려 초기 양식이 드러나는 석조여래입상, 오층 석탑만을 남겨 두고 광활하기까지 한 빈 절터에서 오히려 수많은 이야기로 덮인 전설 따라 시간 여행이 좋았다.

유네스코 문화로 지정된 가야 고분군 가운데 유곡리 소재 고분, 제왕급 유물이 출토되었다. /사진=박재희
유네스코 문화로 지정된 가야 고분군 가운데 유곡리 소재 고분, 제왕급 유물이 출토되었다. /사진=박재희

<삼국사기>에 가야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김부식은 왜 가야를 지워버렸을까?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엄연히 4국이 존재했던 시대에서 유독 가야만 빠져버린 역사서가 전해지고 있으니 우리가 가야에 관하여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고려시대에 그것도 신라-통일신라의 정통성을 잇는 입장에서 기록을 편집한 역사서 <삼국사기>에 가야가 빠져있는 이유는 기록할 만한 전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나의 왕국이 아니라 연립하는 형태로 존재하던 가야는 이웃 나라들과 제법 자율적인 평화로운 교역 관계를 유지했다고 보여진다.

어딘가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닮았다. 잃어버린 역사, 지워진 역사 가야에 관심이 가던 터라 남원 여행 중 유곡리와 두락리의 가야 고분군을 찾았다.

김유신이 가야의 왕족이라는 것, 가야의 철기 제련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 하나의 통일 국가가 아니라 여러 왕조가 동시에 공존하는 형태를 위한 왕국이었고 백제와 신라에 차례로 흡수 멸망했다는 것 정도만 역사 기록 속에서 나타나는 단편적인 힌트다.

역사 덕후가 아니더라도 삼한시대부터 변한에 속했던 고대  왕국이 기원전 1세기부터 6세기까지 600년간 지속된 고대왕국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가야는 김해, 고령, 함안, 합천, 창녕, 고성 그리고 남원지역을 아우르는 왕국이었다. 최근 가야 고분군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니 가야가 궁금한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역사 여행지로 남원을 포함시켜도 좋겠다.

가야 연맹 중 가장 서북부 내륙에 위치했던 운봉고원에는 40기의 고분이 확인되고 땅에 파묻힌 것을 모두 합치면 80기가 넘을 것이라도 했다. 청동거울과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백제계 금동신발, 목걸이 유리구슬과 같이 당시로서는 국제적이고 자율적인 교섭을 증거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백두대간 호남정맥과 남강 수계를 따라 운봉고원에 자리 잡은 땅, 청동, 철기 문명국가에서 철기 제련에 필수적이었을 땅, 바람, 불을 품은 가야를 상상할 수 있다.

아직 발굴이 한창 진행 중이라 완성된 유적지에 비하면 정리되지 않은 점이 더 좋았다. 2000년, 짧게는 1400년 전의 역사가 그냥 묻히지 않고 슬금슬금 이야기를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힐링,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의 자유와 고요 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진 장소가 간절할 때가 많다. 나 홀로! 평화롭게 생각하고 산책하며 쉼으로 채울 곳을 찾았다.

남원 인터체인지를 지나 이백면 방향으로 25분, 9km쯤 거리에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운 비경과 함께 쉼을 선사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아담원(我談苑) : 자기 자신(아)과 대화를 나누는(담) 동산, 정원(원) 한자 풀이를 해보면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는 고요의 깊이에 어울리는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정원이 펼쳐있었다.

처음에는 사유지로 나무를 키우던 조경 농원이었다고 한다.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입장료 1만원을 내야하고 커피나 음료를 별도로 주문해야 하는 곳이라 쉼을 보내기 위한 비용은 적지 않은 편이지만 이미 입소문을 타고 '알만한 사람은 아는' 고즈넉한 여유를 찾는 사람들의 명소로 알려졌다.

아담원을 즐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나와 대화를 나누는 아담 코스, 두 번째는 자연과 예술이 연결되는 갤러리와 티 하우스에 조각공원까지, 자연과 예술장인이 협동으로 만들어 낸 세련된 루트였다.

마지막은 힐링 숲이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소나무 숲길은 일부 개방되어 있고 새롭게 한창 단장 중인 영역이 더 넓어 보인다. 아름드리나무들과 1000여 종의 꽃이 피어나 아름다웠던 여름이 지나 10월에는 단풍에 자리를 모두 양보했을 정원에서 나와 나누는 대화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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