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해맞이와 해넘이 해가 걸리는 시간을 따라
생명의 어머니 대지에 박힌 쇠말뚝을 뽑고
맨발로 걸으며 고요의 바람의소리를 들어요

울루루(Uluru)를 한 바퀴 도는 베이스 워크는 10.6km 길이로 3~5시간 정도 소요된다. /사진=박재희
울루루(Uluru)를 한 바퀴 도는 베이스 워크는 10.6km 길이로 3~5시간 정도 소요된다. /사진=박재희

울루루를 맞이하는 첫 번째 방식은 해맞이와 함께여야 한다. 새벽 4시에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울루루에서 해맞이를 보려는 사람들 사이에 서둘러 합류했다. 버스는 암흑의 검은 공간 속을 헤엄치듯 지났다. 별이 쏟아지는 검은 하늘을 뒤로한 거대한 바위의 윤곽이 보였다.

얼마나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렸을까.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와 어둠을 말아 올리며 서서히 거대한 바위가 해를 들어올렸다. 연보라, 분홍빛 물결이 먼저 생기고 노르스름한 빛이 떠올라 바위를 밝힌다. 고요한 힘으로 떠오르는 해를 비추는 바위산을 바라보며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마주하고 서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이 드러내는 울루루를 만나던 순간, 이사람들이 왜 울루루를 세상의 중심, 우주의 중심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순간이다. 설명할 수 없지만 알 수 있게 된 순간.

울루루 바위산 전체를 돌아 걷는 베이스 워크(Uluru base walk)는 10.6km 길이의 도보 트랙이다. 3시간에서 5시간이 걸리는 코스이기 때문에 40도가 넘는 낮시간을 피하기 위해 울루루의 일출을 본 후 곧바로 트래킹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매일 아침 8시에 지역 원주민이 울루루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기에 기왕이면 그 시간에 맞추고 싶었다. 

몇 시간 후면 모든 것을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워질 태양이 아직은 순한 아침이었다. 손끝까지 차가운 냉기에 떨며 새벽에 일어나 준비해 온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안내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커다란 표지판이 눈에 띈다. "제발 바위에 올라가지 마세요(Please don’t climb)” 원주민의 호소가 담긴 안내 표지를 읽고 있을 때였다. 

울루루 바위에 올라가지 말아달라는 원주민의 호소 안내문. 호주 정부가 등반을 돕기위해 쇠말뚝을 박아두었던 바위산 앞에 있다. /사진=박재희
울루루 바위에 올라가지 말아달라는 원주민의 호소 안내문. 호주 정부가 등반을 돕기위해 쇠말뚝을 박아두었던 바위산 앞에 있다. /사진=박재희

우리는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곳에 백인들은 쇠말뚝을 박았어.

언제 왔는지 슬픈 얼굴의 원주민 레인저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이었다. 그들이 생명을 낳는 어머니의 배꼽에 쇠말뚝을 박았노라고. 내가 그였다면 화가 났을 텐데,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호주 대륙에 들어와 ‘발견’한 땅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된 백인들로서는 울루루가 그저 경이로운 거대한 바위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이 신기하고 아름다운 바위를 오르고 정복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도 알겠다. 그렇다 해도 그러지 말았어야지.

그들은 이곳 원주민 아낭구(Anangu) 부족의 성소, 너무 성스러운 곳이라 주술사 이외에는 함부로 발을 디디지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바위 꼭대기까지 쇠말뚝을 박았다. 그짓을 바라봐야 했던 원주민의 심정은 어땠을까? 빼앗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힘없는 호소뿐이었다. “제발, 제발 울루루에 오르지 말아주세요.” 

낙타를 타고 해질녁 울루루를 바라보는 투어상품도 인기가 있다. /사진=박재희
낙타를 타고 해질녁 울루루를 바라보는 투어상품도 인기가 있다. /사진=박재희

수십년 동안 원주민의 호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만 2019년 바위산을 등반하던 10대 소녀가 목숨을 잃고 난 후 호주 정부는 ‘자연 보호와 안전’을 이유로 울루루를 다시 원주민에게 돌려주고 바위에 오르는 것을  금지했다. 쇠말뚝은 철거되었지만 성스러운 바위를 뚫었던 자리가 선명하다.

1982년부터 2019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사망한 사람이 자그마치 37명이라고 한다.  따져보면 매년 한 사람꼴로 울루루 등반의 댓가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울루루가 원주민에게 영혼의 고향임을 인정하고 등반을 금지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10년 전 여기에 왔던 내 친구가 자발적으로 등반을 포기했던 사연을 들려 줬었다. “일본놈들이 우리나라 영산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했다는 말이 떠오르더라. 원주민들은 자기 조상 대대로 생명이 태어나는 탯줄이 연결된 배꼽이라고 호소했는데 백인들은 거기에 쇠말뚝을 박았어. 나는 여기 관광객들이 더 싫었어. 어떻게 사람들이 그럴까? 올라가지 말아달라는 원주민들의 슬픈 호소를 보고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쇠말뚝을 짚으며 줄줄이 바위로 올라가냐고. 사람들 정말 극악스러워.” 

이제는 아예 누구도 올라갈 수 없게 영구 금지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바위에 한번쯤 오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아야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대신 울루루를 속속들이 걸어보기로 했다. 두 발로 걸어서 울루루를 만나고 보드라운 흙길에서는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문명의 지층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의 중심까지 맨발로 느끼며 걷는 것이 울루루를 만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신화와 전설이 가득한 울루루. 연못에는 울루루를 지키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 /사진=박재희
신화와 전설이 가득한 울루루. 연못에는 울루루를 지키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 /사진=박재희

바위산 곳곳에 파인 동굴, 수억년 동안 바람이 깎아낸 자리마다 원주민의 이야기가 담긴 것만 같다. 창조의 시간, 그들의 믿음과 종교, 삶의 방식 모두가 고요하게 그 땅에 스며있다. 울루루의 땅은 빛의 방향에 따라 피처럼 붉게 보일 때가 있었다.

신비한 빛깔과 모양에 홀려 흙과 돌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흙이나 돌을 옮기거나 가져가는 사람에게는 나쁜 일이 생긴다는 저주가 있지만 사람들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기념으로 몰래 흙과 돌을 가져간다. 재밌는 건 그렇게 돌과 흙을 가져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그것을 울루루로 다시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저주가 두려워 울루루로 돌아온 돌과 흙으로 작은 탑을 만들 정도라고 하니 몰래 흙을 가져가고 또 돌려보내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난다. 울루루 베이스 워크 주변에는 이따금씩 사진을 찍거나 바라보는 것조차 금하는 구역이 나타났다. 금단의 구역에서는 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된다. 고요의 바람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은 내가 울루루를 만난 가장 행복했던 방법이다. 

울루루의 바람과 햇살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베이스 워크. 사진=박재희
울루루의 바람과 햇살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베이스 워크. /사진=박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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