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해가 뜨면 깨고 배고프면 먹고
20년간 괴롭힌 어깨 통증과 이별
치앙마이 공항이 서울 강남의 고속버스 터미널보다 조금 크려나? 한국에서 여섯 시간을 남서쪽으로 날아간 후 도착해서 짐을 찾으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태국의 우버,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올드타운 숙소로 향했다. 세계 어디서든 스마트폰-앱 사용이 지원되는 편리를 누리며 150바트(1바트: 한국돈 37원)를 자동 결제하는 것으로 치앙마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숙소를 예약할 때 기준은 단순했다. 올드 타운에 머물며 어지간한 곳은 걸어 다닌다는 결심이었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그저 살아보며 머무는 개념이라 숙소는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했다. 비용만 따지면 하루 만원 남짓한 곳도 있겠지만 종일 집에만 있는 것처럼 종일 숙소에만 머물더라도 좋을 곳을 찾았다. 부대 시설, 공용공간을 꼼꼼히 살펴 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내가 머무는 동안 한낮 더위가 32도까지 오르는 날이 많았는데 그런 날은 아침 요가를 마치고 돌아와 종일 숙소에 있는 라이브러리와 수영장을 오가며 책을 읽고 낮잠을 잤다.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째르르착~ 칙칙칙.”
첫날 아침, 해가 뜰 무렵 새소리가 먼저 들렸다. 알람을 맞출 필요 없이 새소리에 잠은 깼지만 그대로 누워서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새소리를 들었다. 내 방은 서향이라 눈부시게 햇볕이 들이닥치는 일이 없이 편안하게 밝아왔다. 해가 뜨면 깨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동네에 뭐가 있는지 돌아보다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계획, 말하자면 ‘무계획을 계획으로 살아보기’이다.
요가 매트를 챙겨 동네 산책에 나섰다. 한국에서부터 ‘매일 요가’를 상상하며 치앙마이 한 달 살기의 상징같이 생각해 둔 ‘농부악 공원’이 숙소에서 도보 7분 거리에 있다. 농부악 공원까지 걷는데 길을 지나는 스쿠터 뒷자리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엄마 아빠의 차, 스쿠터에 실려 학교 가는 아이들의 표정은 한국이나 태국이나 같았다. 부루퉁 잠이 덜 깬 아이들 얼굴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렌지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탁발에 나서 걸었고 국수 간판을 내놓는 동네 식당은 아침 청소에 분주했다. 마음을 따스하게 채우던 첫 아침의 공기와 분위기, 오가는 사람들까지 마을 표정은 내가 머무는 내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단골 식당 미스 주(Miss Ju)가 주말에는 아침 청소 시간이 늦어졌고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았다는 정도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침 9시부터 10시 반까지 요가를 했고 숙소로 돌아와 아점을 먹었다. 어슬렁거리며 커피가 맛있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하릴없이 동네 시장을 돌아보기도 했다. 요가하며 만나 친구가 된 영국 처녀 리지와 과일 시장에 가서 배낭 가득 과일을 채워오기도 했다.
치앙마이에는 골목마다, 반 블럭만 돌아가도 사찰, 사원이 나타난다. 숙소 바로 옆 사찰은 마사지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 타이 마사지에 180밧(6700원가량)를 받았다. 첫날 만난 띡턱은 수줍은 표정으로 웃을 때마다 입을 가리는 예쁜 여인이었다. 내 어깨를 만지며 무슨 말을 하기에 휴대폰 번역기를 켰다.
"너무 굳어서 딱딱해요. 딱딱하면 숨을 못 쉬어요. 아파요."
마사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는데 안타까움이 가득한 그녀 눈빛에 뭉클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어깨는 긴장하며 살아온 내 굳은 시간의 증거다. 딱딱하면 숨을 못 쉰다는 말은 그 순간 왜 그렇게 영험한 의사의 진단처럼 들렸을까? 그 후로는 자주 어슬렁거리다 발이 닿는 곳이 사원이었고, 갈 때마다 띡턱이 달려와 저절로 내 전당이 되어주었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사원 마루 어딘가에서 대나무를 부딪는 소리를 섞어 들으며 띡턱에게 맡긴 채 누워 있는 한 시간은 치앙마이에서 누린 사치의 절정이다. 언제부터였지? 지난 20년간 통증의학과, 정형외과, 한방병원을 들락거리게 했던 어깨통증이 사라졌고 오른쪽으로 등을 돌리며 중간에 멈출 필요가 없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며 무작정 빈둥거릴 것. 족집게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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