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시위가 유독 많은 프랑스와 한국 다른 점은?
억눌리고 불만 쌓인 계층의 마지막 탈출구
왜곡·편향된 주장 펴는 수단이 되어선 곤란

1789년 프랑스혁명은 유럽의 절대왕정을 끝내고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혁명이란 일반적으로 기득권층과 지배계급을 단시일 내에 급진적으로 몰락시키고 교체한다. 혁명 전야에는 공통으로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와 개혁의 실패가 전조 증상으로 나타난다.

프랑스 혁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루이 16세는 순수했으나 소심했다. 사냥을 좋아했고 자물쇠 만드는 취미에 빠져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 우유부단해서 결단하지 못하고 일만 터지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프랑스는 크고 작은 데모가 유독 많은 국가로 역사학자들은 분석한다. /픽사베이
프랑스는 크고 작은 데모가 유독 많은 국가로 역사학자들은 분석한다. /픽사베이

재정파탄을 피하기 위해 세출 절감에 나섰으나 왕비 앙투아네트부터 반대했고, 귀족과 기득권층의 반발로 개혁은 실패로 돌아간다. “세금 내는 사람은 없고 세금 쓰는 귀족만 많다”고 시민들은 한탄했다.

농민은 각종 부담으로 등골이 빠지는데 귀족은 사냥을 즐기기 위해 영지에 비둘기와 토끼를 방사해 농작물에 막심한 손해를 끼쳤다. 불만과 억압이 극에 달해 폭발한 것이 불법 투옥의 상징, 바스티유 감옥 함락이다. 

온종일 사냥에 지쳐 고단하게 잠에 떨어졌던 왕은 새벽에 이 소식을 접했다. “반란인가”라고 묻자 그의 신하는 “혁명이다”라고 답했다. 민중을 억압한 데 대한 극심한 분노가 잔학한 보복으로 표출된다. 약 4만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특히 귀족 계급에서 희생자가 많았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오르면서 “짐은 죄 없이 죽는다”는 말을 남긴다. 신민을 보살펴야 할 왕이 그들의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삶의 실상에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마디였다. 그래서 그는 죽어야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도 프랑스 전역에는 데모 군중들이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최근 시위는 경찰이 북아프리카 출신 청년을 총을 쏴 죽인 데서 촉발됐다.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은 이슬람을 믿고 최하위 계층을 형성하며 도시 외곽에 따로 분리된 지역에 거주한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에 쉽게 동화하지 못한다.

또 얼마 전에는 국민연금 개혁에 반대, 파리 도심이 불타고 상점을 부수는 폭력적 시위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가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데모가 유독 많은 나라라고 분석한다. 데모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어떤가? 촛불 시위를 비롯해 근래에 데모가 많아졌다. 그런데 그 데모의 색깔이 프랑스와 결이 다르다. 매우 이념적이고 정파적인 색깔이 덧칠되어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두 진영이 정반대의 주장을 펴기도 한다.

정작 한계상황에 몰려서 생존을 위협받는 계층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처지를 비관하다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곤 한다. 그들은 삶의 불평등을 호소할 줄도, '최소한의 삶이라도 보장해 달라'는 외침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교육받고 조직화한 집단은 연봉이 1억 가까운 회사마저도 노동자 권익 어쩌고 하면서 걸핏하면 기세등등하게 거리로 나선다. 깃발을 흔들고 귀청이 멍멍하도록 구호를 외쳐댄다. 이것이 절박한 시위인가.

데모는 불공정하고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고 좀 더 평등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동기를 가질 때 호소력이 있다. 그와 반대로, 특정 집단이 파이를 더 먹겠다는 이기적 동기를 앞세우면 외면당한다.

한국은 지향하는 이념, 지역, 빈부의 정도에 따라 사회가 심각하게 양분돼 가고 있다. 심지어는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 없는 사실을 왜곡, 입맛에 안 맞는 정권을 흔들어 대는 도구로 삼기도 한다. 정상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다. 과격하고 소란스러운 시위를 같은 편이라고 눈감아주고, 거꾸로 단속하는 경찰을 응징하는 정권까지 등장했다.

한국인의 정서 ,역동성·끼·화끈함이 잘못 작동하면 서로를 짓밟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연합뉴스
한국인의 정서 ,역동성·끼·화끈함이 잘못 작동하면 서로를 짓밟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연합뉴스

이쯤 해서 한국 사회 저변에 깔린 정서를 한번 살펴보자. 역동성, 신명, 끼, 화끈함, 냄비근성이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이다. 이런 특성이 좋은 방향으로 작동하면 신바람이지만, 잘못 방향을 잡으면 서로를 짓밟고 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 

데모는 억눌리고 불만이 쌓인 계층이 찾는 마지막 탈출구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을 왜곡하고 편향된 주장을 전파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21세기에 철 지난 이념을 학습한 세력이 극렬한 시위를 조장하는 것 아닌가 의심받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은 닮았다. 잦은 시위 측면에서. 화끈한 국민성 때문인가. 정치·행정이 미숙하여 살기 불편한 나라여서인가. 외신이 보여주는 프랑스의 불타는 데모 현장, 어땠는가. 걸핏하면 벌어지는 정파적이고 이념적 색채를 띤 한국의 시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우리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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