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행복은 복지와 부유함에 있지 않아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와 평등의식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는 안전망 갖춰
경쟁 내려놓고 공동체 의식 길러야

요즈음 한국의 거리는 며칠 건너 한 번씩 서부 활극을 보듯 섬뜩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칼을 든 청년이 '나 혼자 불행해지는 것이 싫어서 같이···' 하면서 난동을 벌이고, 범행 예고 글이 수시로 뜬다. 

보이지 않는 곳에 '나만 불행하다'고 절망하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자살률 압도적 세계 1위는 오래됐다. 이제 배고픈 사람은 없지만, 삶의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고 소외된 사람은 더 많아진 것이다. 일부 계층의 극렬한 저항과 막무가내식 반대의 뿌리도 결국은 이와 같은 선상에 있다.

북유럽의 행복은 삶의 작은 것들을 최대한 즐기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결혼 기피와 출산율 저하도 심각하다. 일자리는 감소하는데, '더 빨리, 좀 더'하면서 경쟁을 부추기는 모드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낙오된 자들의 절망감은 더 깊어질 것이다. 이대로 방치해두면 그 대가는 다름 아닌 우리가 치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삶의 만족도가 최고인 북유럽, 그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복지가 잘 돼 있고 부유해서가 아니다. 왜 그들은 행복해할까.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은 남녀 간의 일회성 만남과 그 엔딩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끼는 같은 제목의 소설에서 청춘 남녀의 사랑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노르웨이의 행복에 대한 세계인들의 환상을  자극, 인기를 누린 것이다. 

핀란드는 어떤가. 'Visit Finland'란 정부 관광 사이트는 직설적으로 핀란드의 행복을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해마다 핀란드는 세계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핀란드인들이 깨끗한 공기, 깨끗한 물, 숲속 산책과 같은 단순한 즐거움을 최대한 즐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핀란드의 행복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유형입니다. 그것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감사이자, 삶의 작은 것들을 멈추고 감탄하는 능력입니다. 

[중략]

핀란드에서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공공 서비스가 원활하게 지원되고, 범죄와 부패 수준이 낮으며, 정부와 국민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작동하는 사회이며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갑니다. 이는 여러분과 같은 방문객에게도 적용됩니다."

스웨덴식 삶과 행복의 핵심은 '라곰 라이프'이다. 

"스웨덴 사람에게 수입이 얼마냐고 묻지 마라. 자기 자랑을 하지 마라. 술집에서 다른 사람 술값을 계산하지 마라. ‘라곰(Lagom)’은 스웨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다. 바이킹 시대에 뿔 모양의 잔에 담긴 술을 나눠 마실 때 1인당 어느 정도 마셔야 할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딱 좋다’, ‘적당하다’, ‘알맞다’의 뜻이다. ‘케이크 몇 조각 먹을래? 라곰.’ ‘날씨가 라곰하네.’ ‘와인 라곰하게 마셔.’ 여기에 스웨덴 정신이 들어있다. 정도를 넘지 않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건물도 없고, 지나치게 과시하는 법도 없다." — 브론테 아우렐 <노스 리얼 스칸디나비아>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얀테의 법칙’도 한몫한다. 이 때문에 북유럽에서는 함부로 상대를 자극하는 일이 없다.

◦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를 비웃지 마라.

◦ 당신이 우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당신이 뭐든지 잘하고, 우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 당신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은 평등을 최우선시한다. 계층 차이가 심한 사회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모두가 공정한 경쟁의 장에 있어야 만족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빈부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끼리끼리 문화와 내로남불'이 은근히 성행한다. 

배려하는 문화, 내가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배려하는 문화, 내가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북유럽은 내가 넘어지더라도 국가가 나를 일어날 수 있도록 틀림없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또 그런 안전장치가 잘 마련돼 있다. 이런 안전망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두 번 실패하면 끝이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냥 거기서 끝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만이 도를 넘으면 폭발한다. 우리는 상호신뢰 부족으로 인해 불필요한 사회적 코스트가 많이 든다. 이해와 관용도 부족하다. 이런 사회가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이웃의 불행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가. 남의 실패가 나의 성공인가. 병든 사회이다. 타인의 불행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사회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북유럽의 가치를 배우고 실천할 때다. 극심한 '경쟁 모드'를 내려놓고, 좀 더 '느긋하고 관용하는' 모드로 바꾸고 공동체 의식을 길러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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