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틈만 나면 140엔 ‘상승 전망’
부글부글 끓는 달러 가치 킹달러 재림?
이어지는 ‘아베노믹스’ 완화기조 지속
싼 일제 물건, 韓 무역엔 ‘안 좋은 일’

엔/달러 환율이 잠잠하던 시기를 지나 또다시 흥분상태다. 작년 150엔 초입까지 갔던 환율은 130엔대 밑으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140엔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엔/달러 환율이 잠잠하던 시기를 지나 또다시 흥분상태다. 작년 150엔 초입까지 갔던 환율은 130엔대 밑으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140엔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엔화는 언제까지 싼 화폐로 있을까. 엔/달러 환율이 잠잠하던 시기를 지나 또다시 흥분상태다. 작년 150엔 초입까지 갔던 환율은 130엔대 밑으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140엔을 넘어섰다.

태평양을 넘어온 강달러 영향도 있지만 일본 자체적인 양적완화 기조가 ‘초엔저’를 만들고 있다. 환율은 고열을 앓고 화폐 가치는 바닥을 치지만 일본은행은 금리를 인상할 마음이 당분간은 없어 보인다.

수출과 관광산업에서 얻는 수익이 아니고서야 일본의 더딘 성장에 달리 다른 처방도 없기 때문이다. ‘30년 엔화 약세 정책’에 대한 피해는 오히려 한국에 더 치명적으로 보인다. 값싼 일제 물건으로 경쟁력에서 뒤지기 때문이다. 관광객도 옆 나라 일본으로 몰리고 있다.

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40.28엔으로 전 거래일 대비 0.29엔(0.20%) 올랐다. 불과 5일 전 일본 금융당국의 구두 개입으로 139엔대로 겨우 뒷걸음쳤던 엔/달러 환율은 미국 금리 이슈에 속수무책이다.

5월 미국의 비농업 부문 고용자 수는 전월보다 33만9000명 증가하면서 시장 예상치(19만명)를 훨씬 웃돌았다. 이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명분을 부추기는 결정적 요인이다. 고용 호조는 서비스 물가 상승을 돋우기 때문이다.

5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40.28엔으로 전 거래일 대비 0.29엔(0.20%) 올랐다. 지난달 31일 일본 외환 당국이 구두 개입을 통해 140엔 선을 저지했지만 미국 고용 이슈가 엔/달러 환율을 끌어올렸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5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40.28엔으로 전 거래일 대비 0.29엔(0.20%) 올랐다. 지난달 31일 일본 외환 당국이 구두 개입을 통해 140엔 선을 저지했지만 미국 고용 이슈가 엔/달러 환율을 끌어올렸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작년 150엔을 넘어섰던 엔/달러 환율(2022년 10월 20일)은 올 초 연준의 금리 인하 및 동결 기대와 달러인덱스 하향 추세에 130엔선을 깨려는 시도도 했다.

그러나 3월 중하순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엔화 가치는 미 달러화 대비 두 달여간(3월 24일~5월 31일) 6.2% 하락했다. 이는 G10 통화 및 아시아 주요 통화와 비교해도 최대 수준이다.

국제금융센터 김선경 책임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G10 및 아시아 통화 중 달러화 대비 화폐가치 하락이 가장 컸던 화폐는 단연 엔화다. G10 통화 중 일본(-6.2%)>노르웨이(-5.5%)>스웨덴(-4.0%)>뉴질랜드(-2.9%)>호주(-2.1%) 순이다. 아시아 주요 통화 중에서도 일본(-6.2%)>말레이시아(-4.0%)>중국(-3.4%)>필리핀(-3.3%)>한국(-2.4%)>태국(-1.9%)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 금리 인상 반대로 가는 일본
美 은행 불안 진정 안전자산 선호↓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의 양적 완화 기조 고집 때문이다. 작년 3월부터 시작된 연준의 고강도 금리 인상에도 일본은 금리 인상을 한 차례도 단행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여타 나라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미국의 고금리(5.25%)와 일본의 저금리(-1.0%) 차이가 화폐 가치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사진)는 “긴축 전환 지연에 따른 인플레이션 2% 상회 위험보다 성급한 긴축의 위험이 더욱 크다”면서 양적완화 기조 유지를 시사했다. /EPA=연합뉴스
미국의 고금리(5.25%)와 일본의 저금리(-1.0%) 차이가 화폐 가치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사진)는 “긴축 전환 지연에 따른 인플레이션 2% 상회 위험보다 성급한 긴축의 위험이 더욱 크다”면서 양적완화 기조 유지를 시사했다. /EPA=연합뉴스

미국의 고금리(5.25%)와 일본의 저금리(-1.0%) 차이가 화폐 가치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2023년 6월 5일 기준) 지난 4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부임 이후 피벗(정책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에다 총재는 4월 첫 금융정책결정회의 직후 “긴축 전환 지연에 따른 인플레이션 2% 상회 위험보다 성급한 긴축의 위험이 더욱 크다”고 했고 지난달 30일에는 “인내심을 갖고 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다”라고 말해 일본의 완화 기조가 전환될 것이라는 글로벌IB의 전망을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 수익률곡선제어(YCC) 조정 시작 예상 시기는 종전 4~6월에서 이제는 7~10월로 밀려났지만 기약을 할 수 없게 됐다.

두 번째로 엔화 가치가 하락하는 요인은 안전자산에 대한 매력 하락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시작한 미국 중소은행권 불안과 부채한도 협상 등에서 기인했던 금융 불안이 해소되면서 위험선호 심리가 회복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디폴트 우려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엔화라는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저하되면서 초 엔저 현상은 지속하고 있다.

저성장에 엔화 가치 일부러 떨어뜨려
단기적으로 엔저, 중장기적으로 엔고

일본의 완화 기조는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주도한 ‘아베노믹스’도 대표적인 완화정책으로 양적 완화, 재정지출 확대, 규제 완화가 핵심이었다. 세계 3대 투자 귀재로 알려진 짐 로저스를 비롯해 이 정책에 대한 비난은 당시 만만치 않았다. [관련 기사 : 일본 멸망 예언한 짐 로저스 “80년 만의 침체 도래, 시장 붕괴할 것”]

일본의 통화 풀기는 고질적인 장기침체(저성장) 때문이다. 이는 1980년대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한 통화 완화 직후 이어진 급격한 긴축에 따른 자산 가격 붕괴에 기인한다.

박대근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논문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와 한국경제’에서 “정부는 경기과열 징후에도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았고 이는 무자비한 거품 붕괴, 경기 후퇴를 불러왔다”며 “자산 가격 디플레이션은 장기 침체의 발단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연한 저성장은 인플레이션 지표 추이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최근까지도 0%선 위아래를 넘나들었다. 최근 20년간 일본이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했던 시기는 2020년 9월~2021년 2월과 2016년 상반기, 그리고 2000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1~2년간 한두 번 솟았던 플러스 기간을 제외하고 전부였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최근까지도 0%선 위아래를 넘나들었다. 최근 20년간 일본이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했던 시기는 2020년 9월~2021년 2월과 2016년 상반기, 그리고 2000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1~2년간 한두 번 솟았던 플러스 기간을 제외하고 전부였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최근까지도 0%선 위아래를 넘나들었다. 최근 20년간 일본이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했던 시기는 2020년 9월~2021년 2월과 2016년 상반기, 그리고 2000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1~2년간 한두 번 솟았던 플러스 기간을 제외하고 전부였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일본 금융당국의 본질적인 정책 목표는 저물가 탈출과 수출 증대, 그로 인한 일자리 창출이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은행 총재가 바뀌었지만 아베노믹스 기조를 이어 엔화 약세를 가져가고 있다. 이미 30년 동안 초저물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디플레이션 때문이다”라며 “기업 이익이 나지 않고 생산 능력이 떨어지면서 일자리 창출을 못 해 젊은이들이 갈 곳이 없게 됐다. 물가를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양적완화 기조를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나긴 물가 상승 정책의 약발이 듣고 있다. 일본의 인플레이션이 솟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하반기 마이너스 물가를 끝으로 물가는 플러스 전환했고 지난 1월 물가상승률은 4.3%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다시 3%대로 떨어졌고 4월 물가는 3.5%다.

그러나 일본 금융당국은 ‘지속 가능한 물가 상승률’을 위해 여전히 초 완화적 금융정책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싼 엔화로 수출 증대와 관광산업 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한국 그밖에 나라들이 물가를 떨어뜨리려는 노력과 상반된다.

오 원장은 “그러나 (완화 정책이) 큰 효과는 없다고 본다. 일본은 답이 없는 상태다. 재정 정책을 쓸 수가 없다”라면서 “일본 국가 부채 비율이 GDP 대비 260%에 육박한다. 결과적으로는 완화 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금융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에 “(양적완화로) 수출도 늘고 있고 디플레이션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전환됐다. 부동산 가격은 오르고 있고 기업도 돈을 벌면서 고용도 증가했다. 신기술 개발 투자 여력도 생겼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본다”라면서도 “본래는 기술 진보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정석이지만 단기적인 방법으로 환율을 통한 수출 증대를 꾀했다고 본다. 이는 일본이 자본유출 우려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값싼 일본 여행 얼마 안 남았다?‧‧‧“허약한 펀더멘탈 초엔저 지속”]

김 교수는 “다만 물가가 너무 오른다면 그때는 긴축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적자 때문에 금리를 크게 인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국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플러스 물가상승률에 글로벌 IB들은 단기적으로는 엔화 약세가 유지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엔화 강세 전환 전망이 우세하다고 내다봤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시부야 거리. /교도통신=연합뉴스
일본의 플러스 물가상승률에 글로벌 IB들은 단기적으로는 엔화 약세가 유지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엔화 강세 전환 전망이 우세하다고 내다봤다. 사진은 일본 도쿄의 시부야 거리. /교도통신=연합뉴스

일본의 플러스 물가상승률에 글로벌 IB들은 단기적으로는 엔화 약세가 유지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엔화 강세 전환 전망이 우세하다고 내다봤다. 바클레이즈는 “우에다 총재의 일련의 통화완화 유지 시사 발언에 비춰볼 때 일본은행의 조기 정책 조정 가능성은 낮다”고 했고 투자은행 제프리스그룹(Jeffries)은 “과거 엔/달러 환율이 움직일 때 변동 폭은 상당했으므로 단기간에 환율이 143엔까지 상승할 소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엔화 약세 추세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연준의 통화 긴축 사이클이 종료될 때 엔화 강세가 재개될 것으로 봤다. 여기에는 일본은행의 정책 조정도 전제조건으로 따라와야 한다.

‘안 팔리는 韓 물건’‧‧‧문제는 한국 무역 
일본과는 가격 경쟁 중국 시장은 ‘골골’

문제는 한국 무역이다. 사진은 서울 명동 /연합뉴스
문제는 한국 무역이다. 사진은 서울 명동 /연합뉴스

문제는 한국 무역이다. 초 엔저에 엔/달러 환율이 치솟는다 한들 일본은 자본유출 우려가 없다. 게다가 싼 엔화 값으로 수출과 관광산업 호황이 경제를 떠받드는 두 개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에 “엔저로 인해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수입 증가 가능성과 동시에 수출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면서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서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는 수혜를 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경계해야 하며, 부정적 영향을 받는 산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오정근 원장도 “30년간 일본 경제가 불황을 겪으면서 한국 무역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전기, 전자, 조선, 반도체까지 다 망했다”면서도 “지금도 많은 부분 경합 관계이기 때문에 수출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교수도 “엔/원화가 930~60원 오가는데 현재 너무 싸다. 일본 물건값이 싸지면서 더 많이 수입하게 됐고 (일본으로) 여행을 많이 가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 시장도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않으면서 한국 무역은 진퇴양난이다. 중국은 올 초 리오프닝 이후에도 소매 판매 위축, 산업경기 수축 등 경기회복이 기대만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국학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기 회복 둔화가 재고 소진 속도를 둔화시켜 한국 무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대중 수출 회복 정도의 폭은 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한국의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적자다. 작년 3월 이후 15개월 연속 적자다. 이는 외환위기(1995년 1월~1997년 5월, 29개월) 적자 이후 27년 만에 가장 긴 연속 무역 적자다. /최주연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한국의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적자다. 작년 3월 이후 15개월 연속 적자다. 이는 외환위기(1995년 1월~1997년 5월, 29개월) 적자 이후 27년 만에 가장 긴 연속 무역 적자다. /최주연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수출액은 522억4000만 달러로 전년동기대비 15.2% 감소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적자다. 작년 3월 이후 15개월 연속 적자다. 이는 외환위기(1995년 1월~1997년 5월, 29개월) 적자 이후 27년 만에 가장 긴 연속 무역 적자다. 수출은 8개월째 하락세며 특히 반도체 수출이 작년 동월에 비해 36.2%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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