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매파적 발언에도 ‘약한 달러’
1260원대 환율 4거래일만 1290원
환율 오름세 초엔저에 대한 ‘반응’?
“강달러보단 엔 환율 방어 가능성”

달러화가 긴 시간 차지했던 왕좌에서 내려왔다. 지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보였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다시 매 가면(hawkish, 매파적)을 쓰고 나타났지만 달러 가치는 솟구치지 않았다. 작년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런데도 원/달러 환율은 상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초엔저를 잡기 위한 금융당국의 개입이라고 보는 해석이 나왔다. 기나긴 달러와의 전쟁을 마친 '원화 장군'이 이제는 엔화와 치열하게 전투 중인 셈이다.
22일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원/달러 환율 상승이 달러 강세 때문인지 원/엔 환율이 900원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의 개입인지 이달 외환보유고를 봐야 알겠지만 금융당국의 달러 매입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그러나 달러인덱스를 보면 강달러 국면은 아니다. 동시에 FOMC가 앞으로 추가로 금리를 더 높일지 안 높일지 불확실하지 않나. 강달러 요인보다는 외환시장 개입에 의한 상승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94.9원에 마감했다. 1295.20원까지도 터치했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6원 떨어진 1288.4원에 개장했지만 오후 12시를 기점으로 급등하더니 1290원 위로 가뿐히 올라섰다.
전날 밤(21일 현지 시각) 파월 의장이 ‘반기 통화정책 보고’ 자리에서 향후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강조한 데서 환율 급상승의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실제 파월 의장 발언이 공개되기 전인 21일 환율은 1290.0원에 마감했다. 그러나 정작 달러 가치는 유의미하게 상승하진 않았다.
이날 달러인덱스(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는 102.11을 나타내고 있다. (오후 3시 33분 기준) 전날 종가는 102.07이었다. 달러 가치가 상승하지 않는데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이에 김 교수는 “최근 무역수지가 개선되면서 자본유출 우려가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환율이 조금 더 올라가도 괜찮다고 본 것이다. 수입 물가 상승은 금리 동결로 막고 있다”라며 “환율을 1310~1320원으로 높여서 원/엔 환율을 950원 선으로 맞추면 초엔저도 방어하면서 물가도 안정시키고 자본유출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숨통 트이나 싶었더니 ‘초엔저’라는 山
日 완화 기조에 19일 한때 원/엔 800원대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 폭은 축소되고 있다. 지난 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15개월째 연속 적자다. 다행인 것은 올해 1월 125억 1000만 달러였던 적자 폭이 거의 100억 달러 이상 줄었다는 점이다.
무역수지 적자 개선과 함께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기대로 한국 경제에 숨통이 조금씩 트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엔저라는 산이 남았다. 지난 16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단기 금리를 -0.1%로 동결하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0% 정도로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원/엔 환율은 지난 19일 한 때 800원대에 진입(오전 8시 23분 재정환율 897.49원)했다. 이는 2015년 6월 25일 897.91원 이후 8년 만이다. 우에다 총재가 완화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밝힌 직후 원/엔 환율은 900원대 초반에서 움직이며 초엔저의 면모를 보였다.
달러화 대비 엔화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엔/달러 환율은 전날(141.27엔)보다 더 올라 장중 142.36엔을 찍었다.
엔화 가치의 하락은 한국의 수출과 경상수지에 영향을 준다. 값싼 엔화에 밀려 수출이 일본에 뒤질 수 있고 일본으로 여행객이 몰리면서 경상수지가 악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100엔당 1000원을 적정선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원/엔 환율은 전날부터 910원대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날 912.71원(오후 3시 50분 기준)에 거래되고 있다.
한은 5월 개입 외환보유고 57억 달러↓
이창용 “개입을 통해 쏠림 현상 조정”
김 교수는 지난 15일 있었던 FOMC 이후에도 시장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봤다. 16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9.0원 내린 1271.5원에 개장했고 한때 1269.6원까지도 하락했다. 당시 환율은 1270원 선에서 움직였다.
김 교수는 “FOMC 이후 환율이 크게 하락했는데 정부가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난달에도 개입해 환율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57억 달러 감소해 총 4209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3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지난달은 환율 급등으로 한국 경제 대한 우려가 있던 시기다. 특히 5월 16, 17일 원/달러 환율은 1340원 선을 훌쩍 넘겼다.

최근 한국은행도 시장 개입에 부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작년 9~10월 미국이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원화 가치가 낮아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어 개입을 통해 쏠림현상을 조정했다”라며 “이 쏠림현상 완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선 IMF나 미국 정부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으로 환율이 크게 오를 경우 개입해서 막을지는 쏠림 현상으로 인한 것인지,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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