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통화로는 엔화 이미 넘어서
中 해외 무역 위안화 결제 40%
서방 러 제재→원유 결제 폭증
美와 틀어진 사우디 위안화 결제
글로벌 결제 통화는 갈 길 멀어

미‧중 대결이 지속되면서 성향이 맞는 국가끼리 한 팀이 됐고 ‘화폐 블록’이 나뉘었다. 최근에는 점유율 1등인 ‘킹달러’ 블록에서의 이탈 움직임도 관측된 반면 위안화 확장 움직임이 심상찮다. /연합뉴스
미‧중 대결이 지속되면서 성향이 맞는 국가끼리 한 팀이 됐고 ‘화폐 블록’이 나뉘었다. 최근에는 점유율 1등인 ‘킹달러’ 블록에서의 이탈 움직임도 관측된 반면 위안화 확장 움직임이 심상찮다. /연합뉴스

화폐 서열 전쟁이 한창이다. 미‧중 대결이 지속되면서 성향이 맞는 국가끼리 한 팀이 됐고 ‘화폐 블록’이 나뉘었다. 파워 게임 성적표는 화폐에 대한 세계 장악력(점유율)으로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땅따먹기와 다름없다. 최근에는 점유율 1등인 ‘킹달러’ 블록에서의 이탈 움직임도 관측된다.

무역 금융에서 위안화 확장 움직임이 심상찮다. 중국의 작년 해외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 금액은 전년에 비해 40% 가까이 급증했다. 중국이 러시아 및 중동지역 원유를 거래하면서 달러 아닌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역 결제통화로는 위안화가 엔화보다 우위에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지역 결제통화로서 중동지역의 원자재 거래와 아시아 지역 결제 등으로 위안화 수요는 점진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엔화는 넘어설 것이라 본다.”

28일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신흥경제부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이같이 말하며 지역 결제통화로서 위안화의 위상에 대해 전망했다. 지금도 위안화의 지역 결제 규모는 엔화의 4.4배에 이른다고 했다.

엔화 가치는 지역 결제통화 사용은커녕 작년 하반기 32년 만의 최저 수준에 도달하며 안전자산으로서의 체면도 지키지 못했다. 연준의 긴축에 따른 달러화 강세로 작년 10월 엔/달러 환율은 150엔에 육박(2022년 10월 20일 149.9엔)하는 등 약세를 지속했다.

최근 130엔 초반에 머무르며 안정을 되찾긴 했지만 지난 3월까지 20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지속하면서 이 같은 흐름이 오래 못 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한 해 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214조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중국은 올해 들어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요 IB는 중국의 성장률 전망을 가장 높게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통계국은 중국의 1분기 GDP가 작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치훈 부장 제공
중국은 올해 들어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요 IB는 중국의 성장률 전망을 가장 높게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통계국은 중국의 1분기 GDP가 작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치훈 부장 제공

반면 중국은 올해 들어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 통계국은 중국의 1분기 GDP가 작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연간 성장률 목표치인 5.0% 안팎에는 못 미치지만 로이터 통신의 예상치인 4.0%에 비해 높다.

‘팀 차이나’ 위안화와 CIPS로 밀고 당기고
위안화 확장‧‧‧중동‧러시아‧브라질‧프랑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가 사용하는 국제 금융 결제 플랫폼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와는 별개의 중국 위안화 결제 시스템(CIPS)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런민은행(PBOC) 본사.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가 사용하는 국제 금융 결제 플랫폼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와는 별개의 중국 위안화 결제 시스템(CIPS)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런민은행(PBOC) 본사. /연합뉴스

위안화도 코로나19 발발과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침체를 겪었다. 작년 하반기 달러 강세로 역외 위안/달러 환율은 7위안을 훌쩍 뛰어넘어 14년 만에 최고치(11월 3일 7.3000위안)를 기록했다. 27일 기준 위안/달러 종가는 6.9220위안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 위안화 가치 회복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가 사용하는 국제 금융 결제 플랫폼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와는 별개의 중국 위안화 결제 시스템(CIPS)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스위프트에서 쫓겨난 러시아가 CIPS를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이후로도 100개가 넘는 금융기관이 CIPS에 가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스위프트에서 퇴출당하면서 위안화 결제 수요가 증폭됐다. 이미 미국과 등진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 손을 잡으며 위안화 사용이 증가하고 있던 때였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는 대표적인 친미국가였다. 1970년대 ‘페트로 달러’(오일 머니) 체제가 구축된 결정적인 이유도 사우디에 있다. 그러던 사우디가 최근 미국과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면서 미국,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의 손길을 외면했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은 원유 증산 요청을 위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만나기 위해 사우디를 방문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앞서 미국은 셰일 오일 개발로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했고 철군을 감행했다.

작년 한 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됐다. 이들 국가의 무역 머니는 위안화였다. /로이터, AP=연합뉴스
작년 한 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됐다. 이들 국가의 무역 머니는 위안화였다. /로이터, AP=연합뉴스

이 가운데 작년 한 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됐다. 이들 국가의 무역 머니는 위안화였다. 먼저 러시아가 자국 원유의 위안화 결제에 작년 9월 합의했고 지난 3월 정상회담에서 결제 품목을 확대했다.

중국은 작년 12월 사우디 원유의 위안화 결제 합의도 끌어냈고 올해 3월에는 사우디 국영은행에 첫 위안화 대출도 시행했다. 작년 말 중국-아랍 위안화 원유 결제도 추진됐다. 이 밖에도 올 초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과도 위안화 사용을 발표했고 이달 정상회담을 통해 프랑스 은행의 CIPS 도입을 결정했다. 올해 합의를 제외한 작년 CIPS 이용 금액 규모만 96조7000억 위안(약 14조1000억 달러)으로 전년보다 21.48%가 급증했다.

149개국 중앙은행 외환보유액 변화 눈길
달러화 우하향 지속‧‧‧위안화 비중 2배↑

149개국 중앙은행 보유 외환의 통화별 구성을 보면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위안화 순(2022년 말)으로 위안화는 주요국 중 꼴찌다. 그러나 6년 전과 비교하면 각 화폐의 변화 추이를 발견할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 중 준비통화의 비중 변화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6년 말과 2022년 말 이 기간 유일하게 달러화 점유율만 줄었다. /최주연 기자
여성경제신문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 중 준비통화의 비중 변화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6년 말과 2022년 말 이 기간 유일하게 달러화 점유율만 줄었다. /최주연 기자

여성경제신문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 중 준비통화의 비중 변화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6년 말과 2022년 말 이 기간 유일하게 달러화 점유율만 줄었다. △달러화 65.75%→58.36% △유로화 19.14%→20.47% △엔화 3.95%→5.51% △파운드화 4.35%→4.95% △위안화 1.08%→2.69%로 나타났다.

달러화 점유율은 지속적인 우하향 추세다. 2001년 4분기 71.5%까지 올라섰던 달러화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65% 아래로 떨어졌고 2020년 4분기에는 60% 아래에서 올라올 줄 모른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외환거래 비중으로 볼 때 달러화가 여전히 88%로 점유율 1등을 달리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20년 전 1% 미만이었던 위안화가 7%에 달한다는 점이다. (2022년 기준)

작년 말부터 이달까지도 체결된 위안화 거래 계약으로 글로벌 무역에서 위안화 사용은 앞으로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가 85% 내외로 절대적인 가운데 유로화, 위안화, 엔화가 경쟁하고 있다. /이치훈 부장 제공
작년 말부터 이달까지도 체결된 위안화 거래 계약으로 글로벌 무역에서 위안화 사용은 앞으로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가 85% 내외로 절대적인 가운데 유로화, 위안화, 엔화가 경쟁하고 있다. /이치훈 부장 제공

작년 말부터 이달까지도 체결된 위안화 거래 계약으로 글로벌 무역에서 위안화 사용은 앞으로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위안화를 유로화와 견주는 시각도 있다.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위프트의 무역 금융 데이터에 따르면 위안화의 ‘시장 가치 기준 점유율’은 2022년 2월 2% 미만에서 1년 후 4.5%로 증가했다”며 “이러한 상승은 전체 6%를 차지하는 유로화와 긴밀한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됐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지난 2월 러시아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월간 거래량은 위안화가 역대 첫 1위를 차지했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에 따르면 2월 위안화 거래량은 1조4800억 루블(한화 약 24조2000억원)로 전달보다 37%가량 늘었으며 전체 러시아의 외환거래에서 40%를 차지하게 됐다. 1년 전 0.32% 비중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美 금리 인상‧달러 무기화→탈달러화
통제하는 중국 태생적인 한계 위안화

금융업계에서는 달러 자금의 조달 비용 상승이 ‘탈달러화’를 촉발했다고 보기도 한다. 연준이 2022년 이후 금리를 9차례 인상했지만 중국런민은행은 같은 기간 동안 대출 금리를 인하했다. 중국은행 인터내셔널의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 구안 타오는 “미국과 중국의 통화 정책의 차이가 관련이 있다”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상대적으로 위안화가 더 저렴해지면서 위안화로 이루어지는 무역 금융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달러의 무기화’ 전략에서 탈달러화 원인을 찾는 학자도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달러의 무기화’ 전략에서 탈달러화 원인을 찾는 학자도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달러의 무기화’ 전략에서 탈달러화 원인을 찾는 학자도 있다. 이번 러시아 은행에 대한 스위프트 결제망 배제가 대표적인 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런 제재는 달러 지배력에 대한 반발을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달러 무기화가 달러 패권의 약화 틈을 벌린 셈이다.

중국 런민은행은 2022년 초부터 위안화 국제화 전략을 구축했다. 중국 사회과학원 국제금융부 부국장 장밍은 최근 논문에서 “국경 간 상품 거래 결제에 위안화 사용을 늘리고 위안화 자산과 연계된 파생상품에 대한 글로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위안화의 세력 확장은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에 “위안화가 더 크게 확장하면 중국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제 금융 질서가 불안해지고 한국도 위안화 블록으로 편입되면서 중국 통화정책에 영향을 받게 된다”라며 “중국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 국채 매입을 통해 채권 가격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고 이는 금리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위안화 확장 속도가 빠르다지만 주요 글로벌 결제 통화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없다. 중국 런민은행이 2015년 8월 겪은 심각한 자본이탈을 겪은 이후 엄격한 자본 통제를 단행하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미국처럼 달러화가 해외로 나가서 미국 국채나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되게끔 순환하는 방식으로 달러화 활용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자본시장을 통제하면서 위안화의 순환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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