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산다는 것은 밥을 먹는다는 것
나이 들어서도 누군가가
꼬박꼬박 밥을 차려준다면···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다
남편이 떠나기 전 선물한 이 땅에 집을 지어 정착한 지 8년째다. 앞집에서 아침을 함께한 지도 5년이 지나간다. 앞집엔 나이 든 어르신 부부가 살고 계신다. 아침이면 밥 먹으러 오라는 신호가 온다. 눈 비비며 달려가도 남이 차려주는 밥상은 맛나다.

어느 날 식사 후 담소 중에 부모 이야기가 나왔다. 나이 들어도 엄마를 생각할 때는 모두 어린아이가 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두 분 중 남편은 9살에, 아내는 7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랑 산 이야기였다. 나도 동병상련이 되어 일찍 돌아가신 두 엄마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울고 웃었다.
기억 속 우리의 새엄마들은 모두 천사여서 더 눈물이 났다. 두 어른의 형제자매도 이른 나이에 모두 돌아가시어 그날 나는 졸지에 두 분의 막냇동생, 혹은 업둥이 자식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숟가락 한 개만 더 놓으면 함께하는 옛날 밥상의 과객이 되었다.
“얼마나 좋노. 영감 할망 둘이서 먹을 때보다 밥맛도 좋고 자네도 밥심이 있어야 힘을 쓴다.”
그러나 얻어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팔십을 향해가는 그들에게 너무 염치없는 짓이었다. 정성을 거절하기도 그렇고 미안해서 이런저런 핑계로 전화를 안 받으면 뭔 일 있냐며 직접 와서 데리고 갔다. 어느 날엔 비가 와서 못 간다고 하니 우산을 들고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고기 밥상이 잔칫집처럼 차려졌다.

“으, 고기 냄새. 난 나물 반찬 없으면 밥 안 먹을 거야.”
어린 시절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밥투정이었다. ‘이런 싸가지 없는 것이···’하고 정이 똑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쌩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눈물이 났지만 꾹 참았다.
아무리 수저만 얹으면 된다고 하지만 남자들은 밥상 차리는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 매끼 영감님 밥상도 챙기기 귀찮고 가끔 오는 자식도 신경 쓰이는 판에 딴 식구까지 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가끔은 몰라도 날마다는 아니다. 언니의 표정은 밝아도 아침마다 고집스러운 남편이 부르라고 하니 마지못해 전화하는 건지도 모른다. 버르장머리 없지만 잘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동생아~생채나물 무쳐 놨데이. 빨리 오그라.”

어제의 사건은 까먹은 건가, 다음날 아침 정확한 시간에 벨이 울렸다. 그분들은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다. 나는 엉엉 울면서 앞집으로 갔다. 하하하.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물 반찬이 밥상에 꼭 올라간다. 이제는 언니의 오지랖이 늦자식 둔 엄마 수준이다. 나의 아침은 물론 출근하는 날엔 도시락까지 챙긴다. 참말로 넘치는 복이다.
밥 잘하는 언니는 고속도로 휴게소 한식당에서 일도 한다. 나이가 많아 그만두려 해도 놀며 쉬며 하라며 회사가 붙잡는다. 그러니 여기서도 많은 여행객의 아침밥을 해 먹인다. 3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젠 이곳이 집보다 더 편하다.
얼마 전 일할 사람을 못 구해 입술이 당나발이 될 만큼 부르튼 힘든 언니를 보고 결심했다. 내가 노는 날 알바를 가서 언니를 돕겠다고. 언니는 그 일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며 내 말을 무시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졸랐더니 한 달만 해보라며 사무실에 소개해 주었다.

“내가 일주일 해봤는데 진짜 힘들데이. 돈 벌어 병원에 다 갖다줬다니깐.” 아랫마을 지인이 말했다.
“힘들게 일하지 말고 돈 많은 영감이나 하나 구해보소.” 윗마을 지인도 한마디 했다.
“해보고 힘들면 바로 돌아서 나와. 우리야 손에 익어서 하는 일이지만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해. 경험 삼아 한 시간만 해봐.” 언니가 애처롭게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첫 알바 나가는 날, 아침 밥상엔 찰밥에 나물 반찬이 세 가지나 올라왔다. 나를 바라보는 두 분의 모습은 전쟁터에 귀한 자식 내보내듯 얼마나 애틋하고 걱정이 많은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말로 복도 많다.
이른 아침, 휴게소 실외 가판대에 진열된 핫바가 먹음직스레 보였다. 4500원을 주고 샀다. 아침을 먹은지라 배가 불러 반 정도 먹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드디어 주방에 진입, 앞치마를 단단히 묶고 개수대에 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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