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의 살다보면2]
엄마의 초상 때 손님 접대하던 처녀
알고 보니 큰동생의 여자친구였다
아버지 모시고 신혼살림 차린 그들
친정을 방문한 날 아버지의 모습이···

가족이란 힘들어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들고 외롭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족이란 힘들어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들고 외롭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함께 나누는 정은 사라지고 혼자 살아가는 삭막한 세상이지만 아직은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이웃이 더 많다. 오늘은 오랜 시간을 변함없이 우리 마음을 정으로 엮어 흔드는 막강 파워 여사님을 소개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엄마가 돌아가신 날 우리 집 주방에서다.

엄마는 32년 전 7월의 마지막 주에 위궤양 치료차 큰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위암 진단을 받았다. 며칠 후 수술실로 걸어 들어가 죽어서 나오셨다. 급작스러운 죽음에 온 가족은 허둥댔지만 아버지가 계셔서 기댈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삶과 죽음 앞에서의 의연함은 생과 사가 징검다리 건너듯 소소한 일이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여동생은 셋방을 전전하는 부모님에게 결혼자금 모은 돈으로 집을 사 드리고 시집을 갔다. 만평시장 입구에 있는 땅콩 같은 작은집은 부모님의 사랑이 켜켜이 스며있는 작은 궁전이었다. 아버지는 죽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엄마의 유언을 존중했다. 연일 여름 날씨가 최고점을 찍을 때였다.

아버지가 연령회(성당의 장례봉사회)를 맡고 계신 때라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동료들과 함께 작은 거실에서 입관 예절을 행하셨다. 성당의 교우들이 교대로 방문하며 3일 내내 연도를 드렸다. 죽을 때 종교가 있으면 낯선 길이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 평도 안 되는 좁은 집에서 상주 노릇을 할 때 첫날부터 작은 주방에서 수많은 손님을 접대하는 어린 처녀가 있었다. 동생의 여자친구였다. 우리는 이상한 자리에서 서먹한 인사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4대가 함께 살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 늘 손님이 북적거리는 집에서 살았다. 조부모의 초상도 집에서 치룬 경험자였다. 그녀의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이왕 결혼하려고 마음먹었으면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게 사랑이라고 하셨단다. 첫날 아버지를 뵌 순간 그녀의 할아버지 연세여서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손님은 많고 날은 덥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려 손은 주먹을 쥘 수 없을 만큼 퉁퉁 부었다. 그러나 3일 후 엄마의 시신이 냄새도 없이 가볍게 들려져 나가는 걸 보고 모두 기도의 힘이고 기적이라 했다. 지나고 보니 그땐 고지식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죽어서도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서는 먼 길이 두려운 길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준 아버지가 참 감사하다. 

엄마의 손길이 가득했던 집에 엄마가 안 계시니 적막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웠다. 장례를 치른 후 아버지는 걱정하지 말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후 서울서 직장에 다니던 큰동생이 내려왔다. 당신 걱정에 직장을 그만둔 걸 아신 아버지는 크게 나무라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생은 서둘러 상견례를 하고 급하게 결혼도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결혼시켜 미안해하는 아버지에게 사돈어른이 말씀하셨다.

“부모 생각하는 마음만 봐도 멋진 청년이지요. 그래서 지금 백수라도 걱정 안 합니다. 우리 사위 잘될 겁니다. 하하···”

그날의 표정과 말씀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어쩌면 동생은 상견례 때 해주신 아낌없는 격려와 믿음의 말씀이 멘토가 되어 불안한 미래를 헤쳐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 가족에게 설렘과 행복을 안겨주는 나팔수다. 문경에서  가족모임 /사진=송미옥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 가족에게 설렘과 행복을 안겨주는 나팔수다. 문경에서  가족모임 /사진=송미옥

아버지를 모시고 그들의 신혼이 시작되었다. 이 모든 일이 엄마가 돌아가신 후 몇 달 만에 이루어졌다. 다음 해 제대한 막냇동생까지 합류, 아버지가 다시 건강을 찾으시고, 조카가 하나둘 태어났다.

내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은 장례 봉사 가시거나 조용히 기도하시거나 책을 읽으시는 모습이 전부였다. 항상 단정하셔서 가까이하기엔 하늘같이 높은 어른이었는데 그녀가 오고 나서 아버지의 품위가 이상해졌다. 하루는 친정을 방문하니 아버지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고 계셨다. 뭐하냐고 물으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허허허, 오늘 내가 할 숙제란다.”

세상이 바뀐 것은 알지만 하늘 같은 내 아버지에게 이런 일을 시키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불렀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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